치명적 본능 ‘에로스(Eros)’
음과 양 남녀
모든 우주 만물은 ‘음[陰]’과 ‘양[陽]’으로 나누어진다. 인간에게 있어서 음양은 남여로 구분하며 올바른 남여관계를 정립함은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음양관계의 근본을 이해함이 된다.
‘도[道]’를 공부함에 있어서 인간 음양의 이해를 못한채 (그들이 가볍게 여기는 남여관계 에서) ‘색마[色魔]’ 의 함정에 걸려 죄악과 치정 카르마의 줄기에 얽매이는 무수히 많은 사례들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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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유혹하는 온갖 ‘마’ 중에서도 ‘색마’ 의 주인 에로스는 창조주에 버금가는 가장 강력한 존재다. 젊음이 가진 ‘성욕’ 은 ‘식욕’ 과 마찬가지로 의지와 무관하다. 식욕처럼 육체적 호르몬이 주도하는 본능적 생리현상이 성욕이다.육체를 지닌 한 그 누구도 색마의 올가미에서 벗어날수 없고 윤리를 벗어나 동물적 존재로 추락시킬 함정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음양의 작용은 태극을 그리듯 단순 명료하다. 자석의 +- 처럼 양극단 다른 성질끼리 밀고 당기고 얽히고 설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인간들이 기술적으론 생명공학을 이용해 새로운 품종을 교배해 만들고 생명의 복제까지 가능해 졌지만 인간 세상사를 보면 단순한 법칙에도 온통 난잡함에 고통속에서 수많은 죄악들로 물들어 간다. 종족보존의 기본인 성욕을 순리적으로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욕의 쾌락적 기능에만 치중한다면 오로지 본능에 따라 번식을 하려는 동물들의 의식과 다를바가 없다.
성욕은 본능의 영역이라 사랑 없이도 존재하며 때론 폭력을 동반 하기도 한다. 동물들은 오로지 종족을 유지하라는 호르몬의 명령에 따라 본능에만 충실한다.
성욕은 하늘과 땅이 생명을 복제하기 위해 마련한 ‘양념의 유혹’ 같은것으로 축복이 되기도 하고 동물적 영역으로 추락 시키는 죄악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어린아이의 자유의지를 시험케 한다.
많은 생물체들이 성욕 없이도 때가되면 의지와 상관없이 번식을 하는데 한번에 수만개 알을 낳는 물고기류도 그렇고 식물들은 단순하게 꽃씨를 날려 종을 유지시킨다.
반면, 고통과 죽음의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목숨걸고 번식하는 종도 있다. 곤충계의 최강자 사마귀 같은 종은 암컷이 교미중 영양보충을 위해 수컷을 머리부터 잡아먹게 되는데 수컷 입장에선 머리가 먹히면서도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동물의 왕 사자는 수컷의 성기에 바늘같은 침이 돋아있어 암컷이 거부하게 되는데 수컷이 암컷의 목을물고 완전히 제압한 상태에서만이 관계가 가능해진다. 싸움에서 진 암컷은 거부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힘있는 사자만이 후손을 남기게 되는 자연의 법칙 이다.
종족보존의 목적과 상관없이 성을 쾌락으로 즐기는 종족은 인간이 거의 유일하다. 동물과 지성인의 가장 큰 갈림길과 영성의 지능레벨 측정 대부분은 식욕과 함께 ‘성욕(음양)’을 어떻게 도리에 맞게 다룰수 있는가 시험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간종 전체가 진화를 위해선 통과해야만 하는 가장 큰 시험대가 성욕이고 그만큼 함정도 많다. 과시욕 지배욕과 더불어 가학성 까지 온갖 종류의 폭력과 죄악이 성욕과 결합해 인간을 타락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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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성욕은 젊은층의 호르몬 작용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지만 초고령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노인들도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건들이 늘어간다. 호르몬이 난동을 부리는 청춘시기를 지난 노년의 성욕은 육체적 충동이 아닌 정신적인 요인이 더 좌우한다.
노인이 되어감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몸이 말을 듣지 않음에 약물을 이용해서 라도 억지로 성욕을 계속 충족시키고 싶은것이 대부분 노년의 마음이다. 호르몬이 명령하는 본능적 성욕은 멈춘 상태에서 젊음에 대한 심적 갈망이 표출된 형태다. 일반적으로 노년의 육체에게 상대는 성욕을 느끼지 않는다. 노구가 일방적으로 이성의 젊은 육체를 탐하게 되면 (능력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남들에겐 추태로 보이게 되고 상대가 대부분 거부함에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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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와 아가페
인간이 가진 사랑과 성욕에 대한 구분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아가페’와 ‘에로스’ 별도의 신으로 구분한다. 서양식 사고 논리에선 대부분 사람들이 ‘에로스(Eros)’의 반대가 아가페(Agape)’ 라고 생각한다. 육체적 사랑, 정신적 사랑, ‘성욕’ 과 ‘사랑’ 간의 심오한 관계를 확실하게 정의할수 없음에 철학적 논리로 구분 하려는 것이다.
생명을 양육함에 있어서 단순 식량이냐 가족 개념이냐 가축과 반려동물과의 상관 관계를 철학적으로 규정 하려는것과 비슷한 문제다. 단순하게 구분한다면 인간과 친하게 함께 지내면 반려동물이고 아니면 식량이다. 사랑과 성욕도 신성에겐 같은 문제다.
사랑(Love)’ 이라는 한 단어의 테두리에 가장 동물적 본능인 ‘성욕 (Eros)’과 ‘신성한 의식(Agape)’ 을 ‘ 함께 묶어 버린것에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맏기면서 먹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오로지 인간에게만 주어진 매우 풀기 복잡한 방정식이 성욕과 사랑이다.
성욕(Eros)과 사랑(Agape)은 하나로도 존재하며 제각각 으로도 기능을 수행한다. 충족감에 있어서 하나됨을 마음은 가장 이상적 결합으로 느낀다.
‘성욕 [性欲]’ 은 생명체 본연의 종족 유지본능으로 성질은 단순하나 식욕처럼 단순히 먹고 싸는 문제만이 아니다. 인간 에고에겐 해소방법에 있어 동물들과는 달리 윤리적 규제를 벗어날시 수많은 카르마가 파생돼 따라붙는다. 조금만 정도에서 벗어나면 온갖 잡스런 치정에 휘말리고 ’애증[爱憎]‘에 얽힌 전쟁이 벌어진다. ‘질투[嫉妒]’를 지닌 에고의 기본 성질이 그러하다.
결합됨에 있어 둘 사이에도 심적 교합이 이루어져야 하고 사회적으로 걸림돌이 없어야 성욕이 죄악이라는 늪에 빠지지 않는다. 합의된 둘 관계뿐만 아니라 원한과 증오라는 카르마가 주변에서 발생될 소지를 만들지 않는것이 이상적 성인의 남여 관계다.
욕망은 인과관계를 따져 카르마가 생성되는지 아닌지를 명확히 구분할수 있어야 한다. 재물을 탐함과 색탐 만큼은 타인과 연계되는 만큼 윤리가 규제하지 않으면 카르마를 만들고 죄악과도 직결된다. 신성으로 향하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게 되는 매트릭스의 원초적 기준이 동물적 본능의 처리 방법에 의해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가 규정하는 성욕의 죄악
인간종의 진화엔 의식 육체 사회가 함께 한 방향으로 따라줘야만 한다. 옳고 그름이 집단의식에 의해 결정되고 윤리 또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기준점이 변한다.
과거 남성위주 사회에서는 성욕은 전적으로 남성들만의 전유물 이었고 여성들은 성욕을 가지는것 자체로도 죄가 되었다. 남성들은 성욕을 해소함에 있어 마음껏 바람피고 첩을 들여도 법률과 제도가 도리어 여인네들의 투기와 질투를 죄악으로 규정했다. 조선사회 역시 능욕을 당하면 도리어 피해자인 여성에게 자살을 강요했고 강제로 관계를 맺고 과부를 납치해도 범죄가 아닌 관습으로 취급했다. 당시엔 그런 남성위주의 성적 폭력들이 사회적 약속아래 용인되어 사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역사적으로 피해자 였던 여성들의 억눌렸던 일방적 희생과 한들이 지금의 말세기에 터져 나오는 중이다.
동양권과 아랍권 국가들 대부분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정신적 사랑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부모가 정해준 상대와 짝을맺게 만들어 가문의 대를 잇는 기능적 역활에만 충실했다. 관습과 제도적 법을 통해 이혼이나 치정문제들을 금했기에 이혼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강제규율로 성욕에 따른 사회적 혼란은 적었으나 여성들에게만 일방적 희생을 강요했던 야만적 문명이었다.
아직도 여성을 단순히 남성의 보조 생물체로 성욕해소와 자손번식의 도구로써 보는 관습은 존재하며 우리나라 역시 남존여비 사상에서 근래들어 여권신장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경우에 해당한다.
다시 보수적 질서를 잡는다며 남성들이 과거방식을 지지하고 탈레반의 집권을 환영하는것은 문명을 거꾸로 되돌리고자 하는 퇴행적 바램인데 애초 문제의 발단을 인정하지 않고 잘못을 반복하려는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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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 <성욕>
성욕은 절대 열려서는 안될 판도라의 상자처럼 수천년간 신성을 추구하던 동서양 종교가 가장 두려워하고 싸워왔던 최대의 정적이다. 본능과 욕망 자체를 죄로 규정하는 ‘원죄론’ 이 서양 종교 기본 논리다. 성욕 자체를 죄악시 하며 폭력적으로 금욕을 강요했고 사회적으론 겉으론 없는척 숨겨두고 ‘논하지 않음’을 미덕으로 삼았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인간이 그 욕망을 제어하고 통제할수 없음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자인하기 때문이다.
생물적 본능인 ‘수면욕’이나 ‘식탐’ 이 죄악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간이 지닌 동물적 본능중에서 대다수 인간들을 ‘죄악’ 에 빠지게 만드는 것은 ‘성욕’ 이다. 색마가 인간을 카르마 줄기로 옭아맴이 어린아이 팔목 비틀기보다도 쉽다. 부와 권력 물질에 대한 탐욕을 일으키는 원동력과도 연관되어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 종들과 다른 점은 위 아래로 그 한계가 미지수란 점이다. 자유의지를 지님에 끝을 보려할때 어디가 끝일지 알수가 없다. 근대들어 라즈니쉬를 비롯, 동물처럼 살자며 프리섹스 신봉하는 사이비 단체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더니 현재는 사회 전체가 성적 난잡함과 범죄가 극에 달한 상태다. 성욕이 이끄는 마귀들의 윤리파괴가 (친자식마저 살해하고 성폭행 하는 부모들이 매일같이 뉴스에 등장한다 ) 더이상 추락할데가 없는 막장 끝자락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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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무지한 남성들이 연출된 성인물들의 환상을 실제도 그럴것이라 착각해 성범죄들을 대수롭지 않은것처럼 여기곤 하는데 타인에 대한 폭력과 종속적으로 지배하는 착취 형태는 ‘강력범죄’ 형사 사건이다. 성적 폭력은 단순 강도 상해에 더해 인격말살로 정신적 살인이라 할만큼 중범죄다. 선을 향한 진화론 관점에서 종의 집단의식이 악(짐승)쪽으로 추락하는 현상이다. 힘이 주도하는 폭력적 범죄를 관습으로 인정하는 사회는 야만 사회다.
반려동물들을 얌전히 만들겠다는 취지로 거세를 하는것이 인간이다. 단순히 인간의 편의를 위한것이다. 성욕을 죄악으로 규정해 싸우는 종교 단체에서 아예 식물들 교배시키듯 개개인 선택을 무시하고 짝을 정해주고 단체 결혼을 시키는 예도 있다. 교리에 순종하는 노예가 됨이 죄악은 아닐지라도 사랑에 대한 선택권을 반납하고 시험 자체를 포기한것이다.
일본에서는 성욕이 없는 식물남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고도 한다. 마땅한 답을 찾지못함에 진화론적 관점에선 발전이 아닌 퇴행인 셈이다. 제각각 다른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 그 또한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다.
성욕을 그대로 발산하고 드러냄에 따른 사회적 범죄들과 부작용 들은 아직 인간이 성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미성숙한 동물 종‘ 으로 말세의 진화 시점에서 낙제를 의미한다.
에로스를 ‘짖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신’ 이라 하는데 성욕을 어쩌지 못하고 스스로 짐승임을 자인하며 추락하는 인간을 보면 왜 그러한지를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