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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Nov 26. 2023

사랑[爱] - 아가페(Agape)

창조주의 신성으로 가는 ‘키(Key)’


그리스도 보살의식 - 아가페(Agape)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지고지순한 무한 궁극적인 사랑을 서양에서는 ‘아가페(Agape)’ 라고 명칭한다. 에로스와 상관없이 모든 이기심을 없애고 이타심을 극대화 할수있는 숭고한 감정을 말한다. 자식에게 헌신하는 부모의 마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대표적으로 아가페적 사랑이다. 조국과 타인을 위한 의인 열사들의 희생 역시 숭고한 아가페 사랑의 발현이다. 기독교 에서는 가장 궁극적 아가페 사랑을 ‘그리스도( Christ)’ 의식이라 말하고 불교에선 ‘보살’ 이라는 단어를 쓴다.


* 인류를 위한 자신의 사명을 알고 피할수 있었음에도 십자가에 매달리는 길을 택한 예수의 숭고한 사랑이 곧 ‘그리스도(Christ)’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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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가페 적인 사랑을 통해 의식확장을 이루며 신에게 다가갈수 있는 통로를 발견할수 있다.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만이 신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설수 있는 특권이다. 지식의 영역이 아님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문이지만 입성에는 그만한 자격을 요한다.


순수한 ‘사랑 (아가페)’ 이 발견되는 시점과 동기는 제각각 이겠지만 의지를 통해 마음 먹는다고 얻을수 있는것이 아니다. 사랑은 지식으로 접근할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백과사전을 본다해서 사과맛을 아는것이 아니라 직접 사과를 먹어봐야만 맛을 안다. 생각과 이성의 영역이 아니기에 지식이 필요없고 상처를 치유하고 봉인된 문이 열릴때 한순간에 신성과도 직결될수 있는것이다. 에고의 이성이 감당하기 힘든 감성의 충만함과 뜨거운 눈물이 그 순간을 알려준다. ( 순간 접속이 지속을 의미 하는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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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욕 과시욕 지배욕


천국등의 보상을 바라고 겉으로 종교 봉사활동을 다녀도 ‘기만’ 이라는 죄악이 안되면 다행이다. 행동도 중요하지만 실제 ‘이웃사랑’ 이라는 마음을 지닌 상태인가 하는점이 중요하다. 자선행위 대부분도 베푸는 행위를 통해 얻게되는 ‘우월감’을 충족 시키기 위해서다. 받을 사람이 원하지 않는 이기적 친절과 사랑은 때론 주책이 된다. 평생 가난한 사람을 찾아다니며 봉사로 생을 바치고 인류가 성녀로 추앙하는 테레사 수녀도 죽을때 끝내 신성을 못 만난것을 한탄 했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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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들이 보상을 바라고 행하는 봉사활동은 대부분이 사랑의 감정이 아닌 자비를 베푸는 우월감과 내보이고 싶고 이력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과시욕’ 이다. 자기 기만에 가까우며 일반 사람들이 사랑한다고 하는 마음 대부분은 ‘지배욕’ ‘소유욕망’ 이다.



사랑을 말하고 희생의 숭고함을 가르치는 종교인들이 실제 스스로도 그러한지는 실전에서 닥쳐보면 알수있다. 반려동물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그 사랑은 ‘소유욕’ ‘지배욕구’ 일 경우가 대부분 이다. 살아있는 인형을 갖고싶은 심리다. 식량없는 무인도에 사랑한다는 애완견과 함께 갇힐경우 극단 예로 굶주림 앞에서 기꺼이 자기살을 때어주는 마음을 사랑 ‘아가페’ 라고 한다.


이성이 판단하기엔 미친짓 같지만 이성과 본능이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인과 열사들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충심이 아가페 적 위대한 사랑이다. 굶주림 앞에서 반려견을 잡아먹어야 하는것은 동물적 본능인 것인데 평상시에는 사랑으로 두리뭉실 위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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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라고 말하는 판도라의 상자안에는 온갖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있다. ‘소유욕’ ‘지배욕’ 을 사람들은 성욕과 함께 사랑이라는 한 카테고리로 묶는다. 성욕과 함께 질투와 증오등도 함께 담겨져 있기에 사랑과 증오가 하나로 뭉쳐있는 상태를 ‘애증’ 이라고 한다.


소유욕과 과시욕 지배욕망을 사랑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대다수 에고들에게 순수한 아가페적 사랑을 경험하게 만드는 특정 시기가 있다.


호르몬의 강제적 명령 ‘사랑하라’


동물들에게 발정기와 짝짓기 시즌이란 시간대가 주어지듯 인간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물불 안가리는 시기가 있는데 짝짓기에 올인하라고 호르몬이 명령하는 청춘이 바로 그러하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감정이 ‘사랑’임을 주장하는 시기가 청춘이고 나이 들어보면 실제가 그러하다.


식욕처럼 육체적 호르몬이 주도하는 본능적 생리현상이 성욕이다. 제1의 본능인 성적 호르몬이 마법을 부리는 청춘 시기엔 성욕 소유욕과 사랑의 감정등이 동시에 절정에 오르기 때문에 그 어떤것보다 짝을 맺는것이 최우선 순위가 된다. 육체도 성인이 되고 이성에게 잘 보이려 사냥능력을 키우고 외모를 가꾼다. 짝을 맺기위해 연애하고 경쟁 하는 로멘스가 이루어지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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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눈만 마주쳐도 자연스럽게 사랑이 발생하는 시기이므로 때를 놏치면 무조건 후회한다. 온 세상이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합창을 해주고 행복한 바보로 만드는 사랑의 사기술은 마음 먹는다고 되는것이 아니다. 호르몬이 마법을 부려야만 가능하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디즈니 같은 마법이 실제 일어난다. 호르몬이 부리는 마법은 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문이 닫히면 이성이 사랑을 계산하에 주도하려 든다. 첫사랑을 철없던 시절의 불장난으로 여기고 대부분 청춘을 후회하지만 그 불같은 감정이 사라짐을 대부분은 평생 아쉬워 하게된다. 감정이 소중할뿐 사람은 잊혀질수도 있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관계들은 호르몬의 마법이 지나고 나야 아가페인지 소유욕인지 과시욕인지 실체가 판가름 난다.


누구나 사랑을 원하지만 현대 사회는 수많은 제약이 사랑이 맺어지는것을 가로막는다. 연애란것이 서로간 마음과 조건등이 맞았을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경우 집착으로 변질되기 쉽고 더 나아갈시 스토킹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범죄가 되기도 한다.


해피엔딩이 보장되지 않는 불확실성에 뛰어들려면 호르몬이 눈멀고 귀멀게 만드는 사랑의 마법을 부릴때가 아니면 안된다. 길은 떠나봐야 아는것이고 결과를 미리 안다고 시도조차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이 그런것이다. 어떻게 될지 결과를 몰라야만 성립되는 마술이다. 사랑엔 특정한 정답이 없다. 불확실성이 두려워 감정을 무시한채 안전함 만을 선택하려 한다면 마법의 기회 역시 사라진다. ‘사랑을 주면 나도 줄수는 있다’ 고르고 받으려고만 하다 막차 떠나고 수백만명이 솔로로 늙어가는 현 시대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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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에 청춘의 감성은 눈물 흘리며 순수함을 찬양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이성적 관점에선 철없는 청소년 동반 자살 사건으로 사회 뉴스를 보듯 짤막하게 처리된다. 같은 현상임에도 그 나이때 느끼는 사랑이란 공감적 ‘감성’이 빠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대상’이 아닌 ‘공간’이다.


짝짓기 나이엔 대상이 없어도 마음속에 사랑의 공간이 본능적으로 만들어진다. 공간이 생길땐 길가다 보면 사랑이 여기저기 아무데서나 막 튀어 나오기 마련이다. 이미 사랑은 마음속에 들어와 있고 대상을 찾아 다니기 때문이다.그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만들어논 사랑의 공간안에 연이 닿는 그 사람이 들어오게 되는것이다.


큐피트의 화살처럼 호르몬이 부리는 마법을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다고 표현한다. 같은 사람이라 해도 때를 놏치고 나이를 먹은후 만난다면 조건을 우선 따져본다. 호르몬의 마법이 작동하지 않아서 이다.


한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이란 개념 자체를 알수가 없다. 알면서 빠져드는 정신나간 짓이라 판단한다. 소유욕 만을 사랑이라 생각하는 자들은 사랑이 욕망을 충족시킬 수단일 뿐이다. 아가페적 사랑을 모르는 그들에겐 신성도 마찬가지다. 머리로 아무리 손익을 계산해봐도 신성을 접할수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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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회적 결실 ‘가족(Family)’


한 종이 멸종되지 않고 연속성을 지니기 위해선 자신의 분신을 남겨야만 한다. 죽음과 탄생의 균형이 종의번성과 소멸을 좌우한다. 모든 생물체는 때가되면 자손을 남기라는 본능적 프로그램을 따르게 되는데 이성을 지닌 인간은 ‘사랑(Love)’ 과 ’결혼‘이라고 하는 감정과 제도를 별도로 추가한다.


남녀간 사랑에 성욕이라는 양념을 첨가하면 더욱 끈끈한 애정관계가 이루어지는것이 일반현상이다. 음양이 만나 생명을 잉태시키기 위한 성욕구에 있어 동물들과 인간이 다른점은 윤리라는 룰을 지킬줄 아는 종이라는 점이다.


사회적 합의인 결혼 제도가 그 예이다. 사랑의 결실을 맺었음을 공표함으로써 서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선언이고 외부에선 둘 사이를 침범하지 않고 지켜준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두 가문의 자녀둘이 만나 하나의 새로운 공식 가정이 만들어짐에 당사자 뿐만이 아닌 두 가문이 친척으로 얽히게 되고 양쪽 모두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책임감이 부여된다.


‘집착’은 사랑이 변질돼 유아적 소유욕망 이 된 상태를 말한다. 맺어지지 못하고 지나간 사랑을 건드리지 않고 추억으로 없는듯 묻어 두어야 하는 경우도 대부분이 각자 지켜야할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꺼내드는 순간 치정에 얽힌 카르마의 수렁속에 빠져들기에 무심한듯 봐주는것이 자신과 상대를 위하는 진정한 사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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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남여관계는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순결한 청춘 남여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통해 하나가 됨이 가장 교과서 적이고 이상적 조화다. 호르몬의 광기가 멈추고 연인이 가족이라는 안정된 사랑의 모습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자식을 통해 부모자식간 사랑도 알게된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란 말이 있다. 사랑이 결실을 맺는 교과서 적인 형태가 가족이지만 현대는 사회적 요구의 다양성이 늘어가고 변수(조건과 거래)가 많아짐에 정상적 가족의 관계맺기가 힘들어진다. (예전처럼 혼전순결 이야기하면 돌 맞을것 같은 시대다.) 사랑해서 결혼했다 해도 그만큼 인내해야할 것들이 많음을 뜻한다. 사랑마저 없으면 더욱 삭막한 가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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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조건이 앞장서 맺어짐에 가족간에도 사랑의 형성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사회적 시스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올바른 인간 문명의 진화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의식, 육체, 사회가 하나로 한방향을 지향해야만 전 인종의 업그래이드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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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본질’ 신성의 통로.


신과 소통할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사랑’ 에서 출발한다. 남여관계 뿐만이 아닌 좀더 포괄적인 의미로 부모 자식간 형제간 더 나아가 의식 확장에 따라 모든 만물을 사랑할수 있다.


남여간에는 보다 직선적으로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이라고 하는 감정이 대상에 집중된다. 남여간 사랑에 정답을 찾아 이리저리 고민하고 방황해도 정답이란 없다. 형태가 어떠하건 사랑에 빠진것 자체가 정답이다. 너도나도 정답이 뭐냐고 되묻고 찾아 헤매는 그것 자체로 정답이다. 아무리 정답이라고 글로 읽고 주문외듯 순서를 외운들 해보지 않은자는 고난과 지옥속을 기꺼이 스스로 희생해 걸어 들어가는 사랑의 위대함을 절대 알수가 없다.


수십년 종교 생활을 한들 직접 나눔을 실천하고 사랑을 행해보지 않으면 신성 역시 알수가 없다. 단, 한발자국  나가보지 않고 모르는데 그리움이 생길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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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사랑 ’아가페‘


사랑이 위대 하다고 시대를 넘어 온갖 찬양을 하는 이유는 불가능이 없게끔 인간을 이타적 광기로 몰아 숭고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내놓게 된다.


영화보면 대신 총알에 (달달한 OST 배경깔고 슬로우 모션으로 두번 반복해 ) 뛰어들어 막아주는 사람은 항상 연인이다. 죽음앞에서도 아이만은 살려달라 부모들은 외친다. 제3자 입장에선 손해만 나고 전혀 이해가지 않는 미친 행동도 사랑을 위해선 꺼리낌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청춘 남여간 불꽃같은 사랑은 기한이 정해져 있다. 가족으로 하나가 되면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란 고리가 더해지게 되는데 요리 청소 집꾸미기등 모든 생활 살림이 혼자만을 위힌것이 아니게 된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행동들이 가족을 위한 이타적 행위로 생활화 되면 그 안에서 행복감을 누릴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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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사랑이라 해도 표현되는 방식은 남과여가 특성이 다르다. 똑같은 자식 사랑에도 남성은 부성애 여성은 모성애로 구분되듯 난세나 전시엔 남성은 군인 의병등 가정을 지키는 활동을 하고 여성은 간호사처럼 약자에 대한 보살핌으로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는것이 적합하다. 여성이 약하다 해도 자식을 지키기 위한 엄마의 모성애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상상을 넘어선 강한 힘을 발휘한다. 남성과 같이 싸우는 잔다르크나 유관순 논개 같은 여전사 스타일의 경우는 시대가 그러해서 열사가 되는 경우로 극히 예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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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정하는 가족의 형태


평시에 대부분 남성은 가족을 위해 일터에서 일개미처럼 일을 하며 여성은 살림을 꾸려 가정의 내실을 다지는 형태였지만 현대는 남여 평등 사상에 여성들도 사회적 활동을 한다. 남성들보다 여성에게 훨씬 유리한 섬세한 분야들이 많다.


과거의 분업 형태에서 어떤 형태로 음양 조화를 이뤄갈지 최종 결과는 아직 미지수다. 보수 남성들의 반발이 있고 보다 많은 권리를 쟁취하려는 여권신장 운동이 계속되는 중인데 진화의 과정이라 본다. 생물체 중에는 벌들처럼 모계위주 사회를 이루는 종들도 많다.


어떤 사회 방식을 택하건 무엇이 옳고 그른것의 구분은 구성원들의 성향에 따라 갈린다. 공산주의건 자본주의건 선악의 문제가 아닌 구성원 대다수의 성향 문제다. 다수가 원하는 행복의 조건에 따라 사회적 옳고 그름이 갈리며 대의적 도의 기준에서 바라보는 죄와 선악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종의 진화에는 개개인 별종들의 출현이 아닌 옳고 그름을 규정하는 사회 전체 시스템의 진보가 따라줘야 하는 것이다.


요즘 시대는 맞벌이가 대세인데 여성들이 모성애 대신 사회적 자아성취를 선택하는 경우가 흔하다. 결혼도 안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아가페적 사랑을 경험할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셈이다.


사랑이 줄어들수록 성욕만이 남게된다. 사랑과 성욕은 나눌수도 있고 하나로 묶을수도 있다. 사랑이 성욕을 포용할때 가장 안정적인 남여 사랑의 형태가 된다. 남여간 사랑의 감정은 인간을 가장 성스럽게 만들어 주지만 성욕 이라고 하는 마가 앞장서 작동될때 남여간 관계에서도 많은 치정 문제들이 양산된다. 정신적 사랑이란 것도 길을 잘못들면 스토커처럼 죄악이 되어 버린다. 집착은 카르마의 원료가 된다.


‘(Agape) 사랑’은 성욕을 포용하지만 ‘(Eros) 성욕’ 이 ‘(Agape)사랑’ 을 포용하는것은 아니다.


신성한 사랑의 감정이 신에게 다가갈수 있는 ‘키(Key)’가 될수도 있지만 동시에 본능적 쾌락만을 추구하게 되면 신성과는 반대로 욕망의 길을 가게된다. 사랑을 지배욕 소유욕 과시욕망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위험한 칼장난을 즐기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수도 있는것이 사랑이다. 질투와 배신감의 고통은 영혼을 파괴할수도 있다. 유유상종이라 함은 상대탓을 하기 앞서 스스로를 돌아보란 뜻도 된다.


사랑이 아무리 고귀하다 한들 행동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안기며 윤리까지 져버리면 악으로도 변질된다. 로멘티스트 괴테가 비록 천재적 감성을 지닌 시인 예술가로 추앙받지만 사회적으론 희대의 난봉꾼일 뿐이다. 사랑의 위대함을 논할 ’군자‘ 가 되려면 정상적 사랑의 생활화를 먼저 익혀야 할것이다.


자신을 희생하고 돌볼 가족이 마땅히 없다면 화단에 물을주던지 굶주린 길양이 먹이라도 내어주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을때 우주만물 모든것이 실제로는 ‘사랑’ 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기득권의 거짓에 맞서 피흘리며 저항하고 싸웠던 청년열사 예수의 행적이 괴테와 같은 로멘스는 아닐지라도 궁극적 사랑의 화신 ‘그리스도’ 라고 명칭함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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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자신이 불행 하다는건 에고의 착각일뿐 모든 존재는 우주안에서 모두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 그것을 거부하고 아니라고 착각하고 있다는것, 단지, 우주 자체가 사랑으로 이루어졌음을 깨닫는가 아닌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https://brunch.co.kr/@yemaya/109


말기암 상태로 시골에서 죽음으로 내리 향하던 시기, 극한의 고통속에서 만났던 가이드와의 기록을 첨부한다. 끔찍한 말기의 고통을 진통제도 없이 버티던 날들의 기록들이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신의 저주같은 극한의 고통과 죽음앞에서야 그 사랑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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