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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Nov 15. 2023

욕망[欲望] - 원초적 본능


욕망은 죄인가?


욕망[欲望]: (Desire)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람, 또는 그런 마음.


에고는 본능적 욕망앞에 맥없이 끌려 다니는 허약한 존재이다. '욕망' 은 대다수 에고들을 한없이 비웃을 자격을 갖춘 에고들의 막강한 주인이자 절대적 신과같다. 욕망의 노예인 인간이 육체 기한을 채우고 죽는것은 당연한 일이고 에고는 자신이 기한내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릇된 욕망에 쉽게 끌려 다닌다.


욕망은 원초적 생존욕구이자 모든 경험을 가능하도록 이끄는 원동력 이다. 식욕이 생존본능 이듯 성욕은 종족 보존의 본능이다. 욕망이 있기에 인간은 보다 나은 생활과 보다 나은 존재로서 진보가 가능하다.


부에대한 욕심이 없다한들 가난으로 생존권까지 위협 당해선 안된다는 것에서 물질적 욕망을 아예 떨쳐낼수는 없다. 부자가 되고싶은 욕망은 죄가 아니다. 남만큼 잘 살겠다는 욕망이 어찌 죄가 되겠는가, 방법론에서 그릇된 행실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원한을 사게됨이 죄가 되는것이다.


사랑은 죄가 아니지만 불륜과 치정이 만들어 내는 사건들은 피해자가 존재함에 죄가 된다. 승부욕 에너지를 발산함에 있어 ‘스포츠(Sports)’는 죄가 되지 않지만 반칙과 실제 사회생활속 폭력을 즐김은 죄가 된다. 같은 폭력적 대립과 전쟁 또한 침략과 방어는 죄가 되거나 정의가 되거나 이다. ‘의리’와 ‘신의’ 도 ‘악’ 을 도울땐 죄가 된다.


https://brunch.co.kr/@yemaya/1196


욕망이 통제를 벗어날때


욕망이 생존본능을 넘어 통제를 잃게되면 탐욕으로 진화해 ‘죄악’ 으로도 이끌게 된다. 대표적 항목이 [재물욕, 권력욕, 성욕]이다.


탐욕이 사리판단 능력과 양심을 가리면 죄악으로 빠지기 쉽고 그에 상응한 카르마의 댓가를 치루어야만 한다. 이 세가지 동물적 ‘욕망(마)’ 을 정복하고 죄악으로 빠지지 않게끔 다루는 법이 인간이 배워야할 영성교육의 핵심이라 할수도 있다. 수행이 깊어져도 맞닿뜨리면 거의 어김없이 카르마의 올가미에 고꾸라지게 만드는 강적들이다.


재물욕 권력욕은 생각만 으로도 억제가 가능하지만 [식욕]과 [성욕] 만큼은 육체 자율적 요구인지라 의지로 통제가 안된다. 식욕이 죄가 되는 경우는 드물어도 성욕은 타인과 연계됨으로 죄악과 카르마의 올가미에 걸려들기가 가장 쉽다. 수행자라 해도 동물적 존재로 추락 시킴 또한 너무나도 쉬운것이 성욕이다. 호르몬의 거센 폭력적 요구를 나약한 마음은 거부하기 힘들다.


욕망은 한계가 없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한다. 한개를 가지면 두개가 갖고싶고 점점 더 큰것을 원하게 된다. 욕망의 크기만큼 빈곤도 따라붙는다. 붓다가 해탈과 영적 깨달음에 한눈 팔지않고 매진할수 있었던 이유는 출발선 자체가 세상의 모든 권력과 부귀의 정점에서 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왕자 출신으로 세속적으로는 더이상 오를곳도 가져야할 것도 없기에 욕망이 오로지 영적으로 향하게 된다.


티벳불교의 창시자 파드마 삼바바 역시 같은 경우다. 알려진 기록에 따르면 왕실 연못 연꽃에서 태어나 갓난 아이때부터 왕이될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왕이 삼바바를 붙잡기 위해 5백명을 부인으로 선물했지만 성인이 되자  ‘나를 놓아주지 않음 자살할것이다’  구도를 위해 궁을 나왔다 한다. 그리고 무덤가에서 발가벗고 시체를 파먹으며 살았다고 한다.


태생적 부귀함의 절정에 선 왕자출신, 붓다와 달리 일반 중생들이 세속적 욕망을 버린다는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비는 베풀수 있을만한 자만이 행할수 있다. 빈곤에서 출발할수록 마음은 버릴것 보다는 얻어야 할것이 많아지기에 붓다의 빈소유를 주장하면서도 결국, 일반적 에고는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게 된다.


* 왕자출신의 붓다가 주장한 무소유와 자비를 가난한 동양인들이 더 자발적으로 따르고 마굿간에서 태어난 서민층 예수를 권력을 지닌 부유한 계층과 서양의 부국들에서 더 따르는것도 아이러니다.


https://brunch.co.kr/@yemaya/1923


욕망 자체가 죄가 될수는 없다. 탐욕에 빠져 벌리는 그릇된 행위들이 죄가 되기도 하는것이다. ‘이긴자’ 라 함은 ‘탐욕’ 이라고 하는 자신의 ‘마’ 와 싸워 승리한 자를 말한다. 영적으로 벌리는 전쟁이 그러하다.


https://brunch.co.kr/@yemaya/1375


인간 에고에게 있어서 욕망은 이브가 먹은 선악과의 유혹같은 것이다. 신이 부여한 ‘욕망’ 자체를 죄악으로 몰아세워 모든 인간종 자체를 태생적 죄인으로 만든것이 서양종교의 기본 논리다.


성욕 자체가 죄악이라면 생명탄생의 축복은 모순이 된다. 남자없이 순결한 처녀몸에서 홀로 잉태됐다는 예수는 선악과를 먹은것이 여자들의 태생적 죄라 말하지 않는다. 목사들이 하는말이다. 끝없는 모순을 강요 당하는것에 지친 현대 (지성)인들은 기성 종교가 말하는 그 정도 단순한 모순됨 정도는 쉽게 간파할만큼 지능의 진보를 이루었다.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지 못한 모든 인류가 죄인이라고 회개하라 외치고 욕망을 품는 자체로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듬에 따라 수많은 모순적 비극들이 발생한것이 서양의 종교사이다. (죄를 짓고 주말마다 셀프회계를 통해 자신들이 면죄부를 준다는 논리로 사업을 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욕망을 없애는것이 아니라 도리에 맞게끔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하는것이다. 그것이 올바른 영성공부다.


 ‘갖고싶다, 하고싶다’  에고가 지닌 욕망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에고의 성장방향이 갈라지게 된다. 동물과 인간을 나누는 쉬운 구분방법은 '본능적 욕망에 끌려 다니는 노예‘ 인가, 욕망을 ’마음이 주인으로서 다룰수 있는가' 이다.


그것이 ‘무엇이다’ 란 것을 알기위한 간접체험이 고등 생물체들이 활용하는 교육 방식이다. 악함을 꼭 당사자가 되서 먹어봐야만 이해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액션 영화를 보고 슈팅게임을 즐긴다해서 일반 성인이 현실에서 같은 폭력 범죄를 저지르진 않는다.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수 있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접근을 막기위해 성인 등급이 필요한것처럼 모든 욕망에는 죄악이 되지 않기위한 절제력과 통제할수 있는 지성이 필요하다. ‘카르마(Karma)’ 의 원리를 깨닫고 옳고 그름 선악과 사리분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해야 한다.


세속적 욕망을 구분한다.


달콤한 현대의 음식들을 지나치게 탐식하면 결국은 비만과 성인병을 유발한다. 적절한 식생활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듯 다른 욕망들도 마찬가지다. 변질돼 죄악으로 빠지지 않도록 절제력을 배워야 한다.


음주 운전이 잘못되고 위험하다고 해서 술을 금지하고 자동차 운전을 금하게 할수는 없다. 술이 위험한것도 아니고 운전하는것이 잘못된것도 아니다. 단지 사람이 그것을 잘못 혼합해 사용할뿐이다.


음주와 운전을 구분할줄 아는 사람이 두 가지를 모두 즐기며 실생활을 윤택하게 살아갈수 있다. 음주를 할때는 운전을 삼가고 운전을 할때는 음주를 삼가는 것이다. 음주도 하고싶고 운전도 괜찮다는 오만이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키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렇다면 무엇을 금해야 하는지 구분할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삶을 살아갈수 있다.


https://brunch.co.kr/@yemaya/785

https://brunch.co.kr/@yemaya/1074


욕망을 존중하되 짐승의 자녀임을 인정하지 말라. 쓸데없이 본능적 욕망과 싸우지 말고 욕망을 도리에 맞게 길들이고 순종 시키라. 욕망의 노예에서 빠져나와 올바른 도구로서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라.


https://brunch.co.kr/@yemaya/1898​​​


 ‘욕망’ 이라는 에고의 마음은 마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욕망의 충족을 위해 뛰어든 모든 일에는 어김없이 ‘마’가 끼어든다. 욕망과 ‘마’ 를 제어할수 없을때 정상적 판단은 마비되고 욕심이 양심을 가림에 쉽게 함정에 빠지게 된다.


https://brunch.co.kr/@yemaya/1954​​


 [돈과 권력 그리고 성욕]의 유혹에서 육체를 지닌 에고는 결코 자유롭지 않다. 사제나 승려라 해도 승복 걸치고 근엄을 훈련하지만 속 마음은 일반 세속 중생들 사회와 다를바가 없다. 돼지목에 진주목걸이 건다해서 사람이 되지 않는다. 원숭이가 바나나를 탐하듯 자격이 부족한 자들이 잘못된 길로 신성을 탐함에 현세대 인류 전체가 자멸의 길로 향한다.


인간이 도를 닦는다 함은 에고의 동물적 욕망을 인간답게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것이다. 중생들이 욕망의 휘둘림 앞에 갈대 같은 존재라면 신성인은 욕망을 도리에 맞게 다스릴줄 아는 존재이다.


중생은 본능적 욕망을 자신만을 위하고 오로지 타인을 이기려 드는 무기로만 알고 사용 하지만 군자는 욕망을 자신과 타인을 이롭게 함으로써 기쁨을 서로 나누는 용도로 사용하는 방법을 안다 (남여 관계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욕망은 채움만큼 타인의 질타를 받지만 올바른 욕망은 만인에게 응원을 받는다. 욕망을 그릇되게 사용할땐 '악'이 되지만 올바르게 사용할때 많은 이들과 함께 기쁨과 즐거움을 공유할수 있다. 스티브 잡스의 욕망이 스마트폰을 탄생시킴으로 전 인류가 혜택을 보고 있다.


신성을 빙자한 이성의 사악함과 감성의 무지함이 국가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나라간 전쟁으로 인류를 자멸시키는 말세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올바른 사리판단과 냉철한 지성이 굳건해야만 마귀들이 날뛰는 욕망의 광풍에 휩쓸리지 않을수 있다.


https://brunch.co.kr/@yemaya/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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