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테스트로 알아보는 화내는 방식
피부과 마취크림 사건
오늘은 그녀가 피부과 시술을 예약한 날이다. 그녀는 최근 거울을 보던 중 없던 점이 턱 부위에 생긴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나이 40을 훌쩍 넘어선 그녀에게 없던 점이, 그것도 얼굴에 생겼다는 것은 나이 먹는 티가 더 나게 생겼다는 위기감에 서둘러 예약 버튼을 누른 것이었다.
피부과에 도착해서 접수를 한 후 잠시 라운지에 앉았다. 그녀의 손목에 차고 있는 스마트 워치가 간결하게 진동을 몇 번 울려왔다.
'심장 박동 수가 빨라졌습니다. 심호흡을 하세요.'
스마트 워치의 AI가 음성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AI가 보내오는 음성 메시지는 전파와 골전도를 이용해서 청각에 전달되기 때문에 이어폰 등을 착용하지 않아도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 헬스케어 기능이 장착된 스마트 워치는 이용자의 심박수, 땀분비, 혈중 알코올농도, 각종 호르몬 수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여 골전도를 이용한 음성 메시지로 이용자에게 안내한다. 예를 들어, 이용자의 혈중 알코올농도가 올라가면 운전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다.
병원에 올라오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층을 착각하는 바람에 한 층을 걸어 올라왔어야 했다. 귀신같이 신체적 변화를 알아챈 스마트 워치 AI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었다.
"고객님, 시술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잠시의 기다림 끝에 병원 직원이 다가와 그녀의 차례가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병원 안내 직원의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따라 접수 데스크 뒤쪽 복도로 들어섰다. '시술실 4'라고 쓰인 방 앞에 안내 직원이 멈춰 섰다.
"안으로 들어가 앉아 계시면 바로 시술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안내 직원의 친절함에 감사를 표한 후 그녀는 시술실 안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치과의자처럼 생겼는데 등받이는 아직 꼿꼿하게 세워져 있어 앉기 불편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각종 의료 기기들과 시술 도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면에 큰 스크린에 그녀의 이름과 오늘 시술을 받을 부위에 대한 설명 등이 자세한 정보로 표시되고 있었다. 예약할 때 사진과 함께 입력한 내용을 접수 데스크에서 한 번 더 확인한 후 서버에 올리면 의료진이 이 확인할 수 있도록 갖춰진 첨단 시스템이다. 오늘 시술을 담당하게 될 의료진의 사진과 함께 프로필이 스크린 오른쪽 하단에 표시되고 있었다.
'지이이잉~'
시술실의 자동문이 열리면서 마스크를 쓴 여성 의료진 한 명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장 OO 님, 맞으시지요? 오늘 점 제거하시는 시술 진행할 예정인데요, 레이저로 할 예정이라서 미리 마취크림을 좀 발라드릴게요. 마취크림 바르시고 마취될 동안 잠깐 기다리셨다가 시술 들어가겠습니다."
"네."
그녀가 앉은 의자의 등받이가 뒤로 젖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굴 부위를 향해 조명도 들어왔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스크린 옆에 붙어있는 무선 인터폰이었다.
"시술실 4입니다. 어? 진아쌤? 어, 왜? 아니야. 괜찮아. 말해. 응. 하하하 그래서?"
그 여성 간호사는 마스크를 쓴 얼굴 옆으로 수화기를 어깨에 걸친 채 동료 간호사와 수다에 빠졌다. 그러면서도 손은 분주하게 시술에 필요한 도구들을 준비하고, 스크린에 필요한 사항들을 입력하는 등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고객을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사적인 통화를 하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는 일단 아무 말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레벨 1 분노가 감지되었습니다. 편한 마음을 가지세요.'
스마트 워치가 그녀에게 알림을 보내왔다. 다행히도 때마침 간호사도 전화를 끊으려 하고 있었다.
"응, 알았어. 끊어. 지금 환자분 계셔. 이따가 다시 얘기해. 응."
어지간히 떠든 것 같은데 다시 얘기하자면서 전화를 끊은 간호사는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간호사의 손에는 마취크림통이 들려 있었다.
"마취크림 발라드리겠습니다."
간호사는 흰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마취크림을 한 움큼 퍼올려 그녀의 이마 한가운데 턱 하고 크림 뭉터기를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이마부터 펴 바르기 시작했다.
'레벨 3 분노가 감지되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그녀는 스마트 워치의 조언을 무시하고 이내 간호사의 마취크림 도장공사를 멈춰 세웠다.
"잠시만요."
"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저는 턱 부위에 생긴 점 때문에 시술받으러 온 건데, 왜 이마에 마취크림을 바르는 거죠?"
마스크 너머로 당황한 간호사의 표정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간호사는 이내 스크린 쪽으로 가서 이것저것 눌러 그녀의 접수 데이터를 확인했다.
"네, 턱 쪽이시네요. 다시 발라 드릴게요."
간호사는 이렇게 말하며, 페이퍼 타월 몇 개를 뽑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요새 회사에서 힘들게 하는 정 상무랑 박 과장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피부가 안 좋아졌는데, 점까지 생겨서 속상했던 그녀였다. 울고 싶었는데 뺨 때려주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불성실하고 불손한 간호사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고객을 앞에 두고 사적인 수다나 떨고 한 것도 모자라서 이런 실수를 했으면 제일 먼저 죄송하다는 말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레벨 6 분노가 감지되었습니다. 신경 안정을 위한 약물 투여가 필요합니다.'
언성이 높아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상담실장이라는 여자가 그녀가 있는 시술실로 들어왔다.
"고객님, 우선 저희 직원이 실수를 한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일단 어떤 부분의 보상을 원하시는지 저한테 말씀하시면 제가..."
"뭐야? 누가 보상해 달라고 이러는 줄 알아? 내가 언제 당신한테 뭐 해달라고 그랬어? 어??!!! 내가 거지야?"
그녀는 이성을 잃었다. 언성은 전보다 더 높아졌고 이제는 말끝도 짧아졌다.
'레벨 10 분노가 감지되었습니다. 뇌출혈의 위험이 증가합니다. 심호흡을 하세요.'
그때 스마트 워치 AI가 경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러면서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헐크로 변한 후였다. 그녀는 스마트 워치를 풀어 내팽개쳤다. 그러자 귀에서 들려오던 클래식 음악 소리도 사라졌다. 그리고 한 마리의 사자가 표효하듯 외쳤다.
"원장 나오라 그래!!!!!!!!!!!!"
분노 표출 유형 분류
사람은 다양한 감정에 의해 생각과 행동이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사람마다 분노를 느끼는 요인과 그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 제각기 다르다. 이렇게 제각기 다른 분노 표출 방식을 유형화하는 시도를 해보고자 한다.
■ 주요 설정과 고지사항
1. 성격유형검사(MBTI)와 유사한 형태로 분노 표출 유형을 분류하고자 하였으나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본 분류 유형은 어떠한 과학적 활용가치도 없다.
2. 화가 나는 것을 표현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분노', '스트레스' 등의 표현을 혼용하였다.
3. 본 주제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결론이 다를 수 있다. 이 글은 전적으로 필자의 주관적 관점에서 기술해 본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 기술해보고 싶은 사람은 자신만의 관점으로 시도해 보기 바란다.
4. 이 글의 내용은 법률적, 학술적 검토를 거치지 않았고 정답이 아니다. 또한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웃고 넘어가 주시길 바란다.
분노의 유형을 분류해 보기 전에 사람들은 화가 난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분노와 관련된 용어를 먼저 알아보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
·급발진 : 액셀을 밟지 않았는데도 기계 오작동으로 자동차가 급격하게 고출력으로 발진하는 현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사람이 갑자기 분노를 표출하는 모양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발작버튼 : 특정 주제 또는 상황이 주어졌을 때 참지 못하고 급격한 분노를 표출하게 되는 사람마다의 고유한 심리적 영역을 일컫는 것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분노를 상대방에게 원인과 책임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
·극대노 : 당시 농구감독 허재를 소재로 분노의 정도에 따라 소노, 중도, 대노, 극대노로 표현한 인터넷 게시물이 인기를 얻은 것에서 유래하였다.
·분조장 : 분노조절장애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정식 용어는 '간헐적 폭발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이다. 이성적으로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 폭력적 행동에까지 이르는 일종의 충동조절장애로 정신과적 질환이다.
·킹받다 : 아주 화가 나는 정도는 아니지만 은근히 신경을 긁고 짜증을 유발하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표현이다. 2018년부터 침착맨 방송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빡치다 : 어원은 바가지에서 시작된 것으로 머리통을 의미하는 '박'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이것이 경음화되어 '빡'으로 발음되기 시작했고 일상에서 '빡치다', '빡돌다' 등으로 사용되었다. 분노의 정도를 나타내는 표현과 결합하여 '깊은 빡침', '딥빡'과 같은 용어들도 파생되었다.
·열받다 : 열(熱)이 날 정도로 화가 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분노의 감정이 차오르면 체온도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의학계에는 심인성 발열(psychogenic fever)이라는 현상이 일찌감치 보고된 바 있다.
·뚜껑 열리다 : 화가 난다는 것을 주전자나 냄비 등이 끓어 올라 증기로 인해 뚜껑이 열리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영어의 표현에도 화가 난 것을 'hit the ceiling'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나면 천장을 칠 정도로 무언가가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
·눈이 돌아가다 : 화가 나서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눈이 뒤집힌다'라는 유사한 표현도 있다.
·거품을 물다 : 화가 나서 이성을 잃어버리고 발작에 가까운 표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뇌전증(간질) 발작 증상 중 하나가 입에서 거품이 나온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악다구니 : 사전적으로는 사납게 성을 내며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말한다.
·야마 돌다 : 일본어에서 유래한 어휘로 알려져 있지만, 문제는 일본어 '야마(やま)'에 머리라는 뜻이 없다. 하지만 한국의 일상에서는 머리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화가 많이 나서 머리에 피가 돈다는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노발대발 : 怒發大發. 몹시 노하여 펄펄 뛰며 성을 낸다는 한자성어이다.
위와 같이 화가 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들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공통점들이 있는 것 같다.
1.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움직임을 가진 것들이 많다.
2. '치다', '돌다', '받다' 등과 같이 동적인 표현과 함께 결합하기도 한다.
3. 신체 부위 중 '머리'와 연관된 것들이 많다
어떤 이유에서 저렇게나 많고 다양한 '분노'에 관한 언어 표현들이 생겨나게 되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각종 자료를 탐색해 보았지만 분노에 관한 언어 표현들이 다양하게 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한 것은 없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인간은 화가 나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회질서가 갖춰진 현대로 올 수록 그러한 분노 감정의 표현이 행동에서 언어 위주로 바뀌게 되면서 표현의 다양성도 많아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사람의 성격을 16개의 유형으로 분류한 MBTI처럼, 사람이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에 따라 총 4개의 영역에서 각 2개씩의 유형 분류 체계를 도입하였다. 각 영역에서 유형을 구분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통해 자신이 어느 유형에 해당하는지를 알 수 있다. 체크리스트에는 O/X 유형의 문항 6개가 있고 선택형 문항 1개가 포함되어 있다. 문항 1부터 6까지는 자신에 해당하는 내용이면 O로 표시하면 된다. 짙은 색으로 막혀있는 부분에는 표시하지 않는다. 선택형 질문에서는 주어진 보기에서 하나를 고르면 된다.
외향형(Extrovert) vs 내향형(Introvert)
이 분류 영역은 자신의 감정이 향하는 방향에 따른 것이다. 안쪽을 향하는 사람이 있고 바깥쪽을 향하는 사람이 있다. MBTI에도 있는 유형 구분이지만, 화를 표출하는 방식에도 사람의 내외향적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외향형은 화를 겉으로 표출하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소하려는 경향이 강한 사람이지만 내향형은 화를 안으로 삭이고 쌓아두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을 탓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감정형(Sense) vs 이성형(Reason)
화가 나는 상황에서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구분하는 영역이다. 감정형은 화가 나면 화가 난 자신의 감정에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 소진될 때까지 표현을 멈추지 않는다. 감정을 표현하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는 것을 우선하기도 한다. 반면, 이성형은 실질주의자이다. 화를 내고 감정을 표출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에너지를 집중한다.
망각형(Let go) vs 축적형(Pile up)
망각형은 대체로 감정을 외적으로 표출하는 유형의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자신의 감정이 해소가 된 후에는 쉽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감정을 표출하는 단계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상처 준 주변 사람들과 달리 막상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전형적으로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음주 폭행, 스토커 등의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성향이며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반면, 사회화가 잘 된 사람들은 사소한 일로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대체로 몇 번은 넘기며 참는 편이지만 반복되면 폭발한다. 이런 타입의 사람들은 반복되는 스트레스가 계속 누적되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된다. 번아웃증후군에 빠지거나 우울증이 올 수도 있으므로 적절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스트레스 유발 환경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회피형(Avoidance) vs 직면형(Confront)
회피형과 직면형을 구분하는 영역은 분노의 표출 이후 어떻게 냉각시키느냐의 영역이다. 사람마다 화를 푸는 데에는 방법이 다른데, 회피형의 경우는 일단 그 상황을 가급적 빨리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이 누그러질 때까지 시간과 거리를 두는 방식이다. 반면, 직면형의 사람들은 오래도록 시간을 두는 회피형의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데이트 폭력을 행하는 유형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하자면, 직면형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불편한 감정이 자신에게 머물러 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방법으로라도 그것을 해소하고 싶어 한다.
콤보 조합 (외향/망각형 vs 내향/축적형)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조합은 외향형&망각형 조합과 내향형&축적형 조합니다. 서로 상반된 성향과 행동패턴을 보인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외향/망각형은 분노 상황이 발생되는 시점에 표출의 정도가 최고점을 찍은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망각라인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버럭'하고 화를 뿜어낸 다음 자신 안에 감정을 담아놓지 않고 풀어버린다.
반면, 내향/축적형은 분보 발생 순간에 일순간 표출 수준이 위로 오르지만 전반적으로 외향/망각형의 최고점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그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망각라인 아래로 내려가기도 하지만 자려고 누웠다가 발생 순간에 미처 못했던 말들이 떠오르며 이불킥을 하고 만다. 밤새 뒤척이며 화나게 한 상대의 속마음은 무엇이었을지, 과거에 그 사람이 했던 말과 행동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끊임없이 경우의 수를 맞춰본다.
화내는 모습을 보면 인성이 보인다
사람은 사회화가 진행됨에 따라 화를 내는 방법과 정도가 상대에 따라 달라지게 되었다. 쉽게 말해, 화내는 상대가 자신과 어떤 관계이냐에 따라 언행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사람의 됨됨이가 들여다 보인다.
친밀한 관계 (가족, 친구, 연인)
가까울수록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 많이 참는 사람이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전형적으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비겁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익숙하고 편해지면 본모습이 나온다는 것은 그동안 가식적인 모습으로 대해왔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회적 관계 (직장, 거래처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업무 관계나 거래 관계에 있는 상대에게는 좀처럼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직장 상사나 '갑' 거래처 관계자가 불합리한 언행을 해도 속으로 참기만 한다. 하지만, 독자분들 중에 이런 성향이 있으시다면, 격과 예를 갖추어서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정도의 용기는 발휘해 보시길 바란다. 업무적 관계에서 정당한 커뮤니케이션을 시비나 항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정신이상자일 뿐이다.
불특정 관계 (서비스 이용, 불특정인)
음식점이나 서비스업을 이용할 때 종사자들에게 화를 내고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절대 그런 사람과는 가까이 지내지 말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갑질을 일삼는 사람이며 비열함이 내재되어 있다. 대중교통에서나 길거리에서, 운전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화를 내고 위협하는 사람이 있다. 아직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사람일수록 그러한 행동을 일삼는다.
정 상무는 또다시 그녀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자네가 만든 이번 마케팅 기획안은 아무래도 무언가 빈약해. 무언가 독창성이랄까 임팩트랄까 그런 게 없어."
"상무님, 선배님이 요새 힘든 일이 많아서 집중하기 어려우신 것 같아요. 제가 대신 마무리해서 다시 보고드릴게요."
불여시 같은 박 과장이 끼어들어 콧소리를 내며 정 상무 앞에서 알랑거렸다. 그런 박 과장의 꼬락서니를 보고 그녀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레벨 3 분노가 감지되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상무님,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정 상무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박 과장을 향해 눈웃음을 치며 나머지 말을 이어갔다.
"됐고! 박 과장이 그럼 잘 마무리해 봐. 이번 주 목요일까지 가능하겠지?"
"네. 그럼요, 상무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는 정 상무의 집무실에서 나와 문을 닫고는 박 과장을 향해 눈을 흘기며 물었다. 도대체 왜 끼어든 것이냐고.
"아니, 저는 선배님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도와드리려고..."
"누가 도와 달라고 했어?"
'레벨 4 분노가 감지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멋쩍은 표정을 짓던 박 과장의 얼굴이 갑자기 싸늘하게 변하며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댔다.
"그러게 처음부터 잘하셨으면 되잖아요."
'레벨 6 분노가 감지되었습니다. 신경 안정을 위한 약물 투여가 필요합니다.'
불과 지난주 월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그녀는 아직도 그날 박 과장이 쌩하고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갈 때의 괘씸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박지현'
박 과장과 같은 이름이었다. 오늘 그녀에게 마취크림 테러를 한 불손하기 짝이 없는 간호사의 한쪽 가슴에 달린 명찰은 그녀에게 지난주 월요일에 회사에서의 기억을 고스란히 불러왔다. 불여시 같은 박 과장의 기억이 말이다.
'레벨 6 분노가 감지되었습니다. 신경 안정을 위한 약물 투여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계속 스마트 워치는 알림을 보내오고 있었다. 상담실장이라는 여자가 그녀 앞에서 말을 하고 있을 때에도 계속해서 알림은 울려댔다.
'레벨 7 분노가 감지되었습니다. 화를 낸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레벨 8 분노가 감지되었습니다. 급격한 분노 상승은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레벨 10 분노가 감지되었습니다. 뇌출혈의 위험이 증가합니다. 심호흡을 하세요.'
그렇게 계속 분노 레벨은 높아져만 갔다. 갑자기 박 과장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본 것이 그녀의 분노를 이렇게 급격하게 끌어올린 이유일까. 하지만, 그녀는 이미 그런 것들을 생각할 상태가 아니었다.
"원장 나오라 그래!!!!!!!!!!!!"
필자는 AETI 검사 결과는 외향(E), 이성(R), 축적(P), 회피(A) 즉, ERPA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웬만하면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이지만 배가 고프면 예민하게 군다. 직장에서는 기분 나쁘면 티가 나는 편이고 돌직구도 날리는 편이다. 음식점이나 서비스업을 이용할 때에는 최대한 공손하려고 노력한다. 대중교통이나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 때문에 화가 나는 상황이 되면 상황을 회피한다. 운전할 때 화가 나면 차 안에서 혼자 욕을 한다.
이미 지난 일에 화를 품고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화를 내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정적 감정이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면 몸도 마음도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였는가보다. 'Oasis'는 '화난 모습으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라고 얘기해 주기 위해 그렇게 노래를 했는가 보다.
참고자료
- 브런치스토리 : 분노와 분노 표현에 대한 심리학 연구 개관(요약) by 심리탐험가 김홍채
- 브런치스토리 : 분노의 세 가지 종류 by Nam
- 브런치스토리 : 인내, 참기만 해도 절반은 성공한다 by 글장이
- 브런치스토리 : 분노와 지속의 상관관계 by 오렌지망고
- 브런치스토리 : 내 인생의 분노와 울분에 대하여.. by 나무노트
- 브런치스토리 : 11. 분노 버튼 by 오리진
- 브런치스토리 : 분노 바이러스 by 교관
- 브런치스토리 : 6. 분노는 결국 자신을 향합니다. by 하루한끼
- 브런치스토리 : 운동과 단상(斷想) 20.분노 사회 by Life of Pi
- 브런치스토리 : 분노 by SCY
- 나무위키 : 간헐적 폭발 장애, 분노, 열받다, 빡, 야마
- T스토리 : [유형 테스트] 빡BTI, 삶에 지친 당신의 분노 표출 유형은?! by 산키스트
- T스토리 : 4가지 분노유형과 해결방법 by 봉리브르
- 네이버블로그 : 분노 표출 유형 테스트 4가지 유형 분석 (분노 무감각증 유형, 분노 저장고 유형, 삼진아웃 유형, 급발진 유형) 심리테스트 by 모세스
- 네이버블로그 : 분노는 한 종류가 아니다? 다양한 분노의 종류 by 데일리
- 힐팁 : 주체할 수 없는 ‘분노조절장애’ 발생 원인 & 개선 방법 by 최성민 기자
- 청소년지원단 : 분노조절장애 by 김지윤 레이디경향 기자
- Simcong : 분노 표출 유형 테스트
- Poomang : 분노 유형 테스트
- FT스포츠 : ‘미니 하빕’이라고 불리는 꼬마는 누구? by 이상민
- 코메디닷컴 : “배 고프면 화난다”는 건 과연 사실일까? (연구) by 김영섭 기자
- 동아사이언스 : [강석기의 과학카페] 스트레스를 받으면 열나는 이유
- 한국심리상담센터 : 분노에 대한 이해--분노란 무엇인가? by 강용 대표
Main Photo : Charles Lamb from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