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을싫어한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좋아하진 않는다. 팥을 먹을 때 입에 남는 껍질 식감이 싫기 때문이다. 붕어빵을 사면 팥이 들어가지 않은 꼬리를 떼어먹거나 아예땅콩빵이나 계란빵을 산다. 마흔을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붕어빵은 매력적인 간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딸이 먹고 싶다고 하면 퇴근길에 여기저기를 헤매며붕어빵을사다 주곤 한다. 좋아하지도 않는 붕어빵을들고 집으로 향하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학교 때 친구들과 시장에 놀러 가면 횡단보도 옆 노상에서 땅콩빵과 붕어빵(당시는 국화빵)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주변 친구들이 용돈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보니 붕어빵은 그림의 떡이었다.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아는 사람이사서 먹고 한 개를 건네주기 바랐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참 거지같이 보낸 시간인데,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통통한 몸에 유난히 동그랗던 얼굴과 눈, 묵직하게 다문 입으로 말없이 만들다가 망가진 땅콩빵과 붕어빵을 건네준 아주머니 덕분이다.
퇴근길 두 딸에게 상납한 붕어빵 세 마리(이천 원)
다른 한 명은 도연이다. 도연이는 국민학교 동창인데, 통통한 몸에 유난히 동그랗던 얼굴과 눈, 묵직하게 다문 입으로 말수가 적은 순박한 아이였다.하지만, 조용한 도연이가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다. 도연이 닮은 아줌마를 봤다고누가 물었는데, 도연이가 잔뜩 화를 내고 교실을 뛰쳐나갔다. 진위를 알 순 없었지만, 그 후로 다시는 비슷한 질문을 하는 일은 없었다. 노점에서 빵을 굽는 아주머니에게도 물을 필요가 없었다. 둘은 유난히 동그란 얼굴과 꾹 다문 입이 붕어빵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우리 부모들은 대부분 공사 현장 잡부이거나 시장에서 채소나 생선을 내다 팔았는데, 도연이는 그게 싫었던 것 같다.
시간이 조금 지난 고등학교 때, 친구 몇 명과 군고구마를 팔았던 적이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붕어빵 노점이 사라진 장소에서 장사를 했는데, 유동인구가 적어서 겨울 한 철만 장사하고 접었다. 결국 주유소에서 열심히 번 돈으로 샀던 드럼통과 재료들은 벼룩시장에 되팔았다. 반대편 버스 정거장 앞 어묵집은 늘 북적였는데, 우리 자리는 장사하기에 적절하지않았던 것 같다. 그 후로도 여러 노점이 들어섰지만, 꾸준하게장사하는 노점은 없었다.
며칠 전 붕어빵이 3개에 2,000원이나 된다는 뉴스를 접했다. 서민 간식이 너무 비싼 게 아니냐며 기자가 푸념 섞인 글을 썼다. 사실 나도 떡볶이나 짜장면, 새우깡이나 브라보콘 가격이 터무니없이 오를 때마다 라테는 얼마였는데를 읊조리는 꼰대이다. 하지만 붕어빵만은 가격이 올라도 대수롭지 않다. 심지어는 더 올랐으면 한다. 한 개에 천 원이든 이천 원이든 상관없다. 추운 겨울 노상에서 꾹 다문 입으로 건네주던 망가진 붕어빵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많이 쌀쌀한데, 붕어빵이 보일 때마다 도연이와 붕어빵 같았던 아주머니가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