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킥이요 이름은 판이라고.
'와~~ 엄청 친절하시다'
새벽 6시 초보반 수영 선생님은 진짜 친절하세요.
항상 존댓말을 써주시고
설명도 자세하게 잘해주세요.
새벽 6시 수업을 들었던 첫날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몰라요.
수영을 배워보니
수영의 4가지 영법을 무 자르듯이 뚝뚝 끊어서 한 개씩 배우는 게 아니라
자유형 하면서 배영을 배우고
배영을 배우면서 평형도 하고 뭐 이렇더라고요.
어느 날부터인가 자유형 발차기를 하면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신나는 건 팔동작을 배우고 난 이후였어요.
팔동작을 하니깐 쭉쭉 나가더라고요.
오와~ 이것은 신세계.
자유형은 팔로 추진력을 얻어서 나가는 거였구나.
(사실 이게... 굉장히 주관적인 느낌으로 쭉쭉입니다.
왜냐하면 안 나가다가 앞으로 조금 나아가는 기분이 들어서 저에게만 쭉쭉이지
다른 분들이 보기에는 그냥 천천히 움직이는 정도였을 거예요.ㅎㅎ)
하지만 제 발차기가 문제가 있는 건지
발차기로만 가면 자꾸 남들보다 쳐지는데
팔을 휘저으면서 가면 그래도 갈 만했습니다.
물도 조금 덜 먹는 것 같았고요.
뭔가 수영이 조금씩 되는 거 같은데?
이런 느낌을 받을 즈음에
또다시 좌절을 하게 됩니다.
4개월 정도 되니깐
다른 분들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사실 눈이 나쁘니깐 얼굴로 알아본다기보다는
일단 수영복 색으로 알아보고 그다음에 얼굴을 보고
매치했던 것 같아요.
분명 저보다 늦게 시작한 것 같은데
하나둘씩 킥판을 떼고 자유형을 하더라고요.
널찍한 판때기 그게 뭐라고.
네. 그게 저한테는
생존 필수품 같은 거였어요.
킥판이 없으면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킥판을 놓지를 못하겠는 거예요.
물공포증 때문인 건가...ㅠ
나는 왜 안 될까.
자기 계발 책들을 보면
왜 안될까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될까를 고민하라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될지 생각해 봐도
그냥 킥판을 떼고 자유형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번은 큰 용기를 내어서 킥판을 떼고 자유형을 하다가
물을 한 사발 들이켰습니다.
한 사발이 면 좋게요.
한 번 물을 왕창 마시니깐 더 겁이 나서
끝에 까지 가는데
두어 번 더 들이켰습니다.
켁켁켁.
그러는 와중에 배영을 알려주시더군요.
자유형 할 때 마시는 물의 양은
배영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습니다.
꼬록 꼬로로로로록
웩.
음파음파고 뭐고
얼마나 긴장했던지 몸이 막대기 같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발차기를 해도
눈에 보이는 천장의 모습이 똑같더군요.
그러다가 천장이 좀 달리지는 것 같으면
쿵.
배영을 하면 앞으로 가야 하는데
뭐가 문제인 건지
꽃게도 아닌 것이
자꾸 옆으로 가서
옆레일을 침범했습니다.
결국 옆 레일 사람이 들고 있는 킥판이나 머리에 부딪히곤 했습니다.
산 넘어 산이구나...
레일 끝에 머리도 여러 번 부딪혔어요.
쿵.
아픈데 아프다고 말하거나 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느려서 뒷사람이 제 바로 뒤에서 서서 기다리고 있거든요.
"앞으로 가셔도 돼요."
양보하겠다는데
한사코 사양하세요.
수영장에서는 양보를 해주고 싶어도 쉽지가 않더라고요.
배영을 배우기 시작하니깐
다리만 아픈 게 아니라
이제는 목까지 아파옵니다.
락스물 안 먹겠다고
배영 할 때 목에 너무 힘을 줘서 그런가 봐요.
주 5일 수영하면
실력이 쑥쑥 늘어날까 싶었는데
실력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맴도는 것 같았습니다.
운동 실력도
어학 실력처럼 계단식 상승을 하는 건가요.
정말 그런 건가요.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사람이 없었어요.
아....... 진짜 아침마다 수영을 가는 건 너무 극기구나...
이런 제 마음을 아셨는지
친절한 수영선생님께서 수업이 끝날 때 말씀해 주셨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 됩니다. 다 할 수 있어요."
네, 그럼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할까요?
저 네 달째 자유형도 못하고 이러고 있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