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궁 고생기 10 - 혼돈의 19박 20일

병원 생활을 마무리하며

by 해성
수액은 수갑이고 병원 자체가 감옥이었다

뭔가 평소 같지 않은 증상이 나타나거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특히 여자라면 더. 나는 원래 내가 통증을 잘 참아서 모두가 이러고 사는 줄 알았다. 물론 모든 의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 본 산부인과만 5곳이 넘었고, 제대로 진단한 곳은 별로 없었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버티라 했는데,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에서 정말 좋은 교수님을 만나 수술하고 현재 회복 중이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그저 너무 성가시고 괴로웠던 기억을 한 번 꺼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정리하는 동안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 I. 첫 진단, 첫 수술 https://brunch.co.kr/@veilstella/3

# II. 심각해지는 증상들 https://brunch.co.kr/@veilstella/4

# III. 4박5일 숙소 입성 https://brunch.co.kr/@veilstella/5

# IV. 4시간의 여정 https://brunch.co.kr/@veilstella/6

# V. 수술 후 D+1, D+2 https://brunch.co.kr/@veilstella/7

# VI. 7박 8일의 끝자락 https://brunch.co.kr/@veilstella/8

# VII. 새로운 숙소 https://brunch.co.kr/@veilstella/9

# VIII. 다시 찾은 병원 https://brunch.co.kr/@veilstella/10

# IX. 38.8℃ https://brunch.co.kr/@veilstella/11


# X. 혼돈의 19박 20일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것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25년의 첫날, 서러움에 종일 눈물이 계속 나왔다가 말았다가 감정이 길을 잃고 날뛰었다. 차라리 엉엉 울고 싶은데, 어디 가서 울 곳도 없고, 답답함은 계속 쌓여갔다.


병원의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4시 반에서 5시쯤 채혈을 하고 혈압과 체온을 재며 시작했다. 수액을 계속 맞고 있어야 했고, 시간마다 항생제, 진통/해열제가 번갈아 가며 수액 걸이에 걸렸다. 더 이상 열이 나진 않았지만 당장은 수액 덕분이라는 말에 도대체 나는 언제쯤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점점 더 괴로웠다.


처음 입원했을 때의 병실은 남향이었는데, 새로 입원한 병실은 북향이라 일단 너무 추웠다. 문제는 혼자 추웠다는 것이다. 확실히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던 탓인지 밤만 되면 식은땀을 쏟아냈고, 추웠다 덥기를 반복하며 지쳐갔다. 일어나 걷기도 쉽지 않은 상태라 많이 걷지도 못하고 침대에서 이불을 끌어안은 채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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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흔한 비유지만 수액은 수갑이고 병원 자체가 감옥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없던 병도 더 걸릴 것 같은 기분. 회진 때 들은 내용은 다른 검사 결과 이상은 없었고, 염증 수치가 원인인 거 같아 수치 내려가는 것을 봐야겠다고 하셨다. 실제 통증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쉽게 퇴원 결정을 하진 못하셨던 거 같다. 나중에 기록지를 보니 응급실에서 잰 CRP(염증 수치) 가 5.25였다. 참고 범위는 보통 0.00~0.49mg/dL이고, 10 이상이면 중증으로 본다는데, 나는 그 중간 수치였다. 이미 수술로 인해 신체가 많이 약화하여 작은 공격에도 쉽게 무너졌나 보다. 나의 몸은 이미 개복치가 되어 있었나.


3인실에 둘이 있던 병실에 새로운 환자분이 오시면서 정신적인 고통은 더해졌다. 코골이는 기본, 밤에 소리를 치셔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나도 아프니 견뎌낼 만한 마음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대로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만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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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입원 3일째, 10시가 넘어 잘 준비를 다 하고 누워있는데 교수님이 회진을 오셨다. 퇴원 일정을 여쭤보고 싶어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오셔서 커튼 너머로 OOO님 부르시는데 '네!' 하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수치는 3점대로 떨어졌고, 열이 더 안 나니 내일 결과 보고 퇴원하면 될 것 같다 하시면서 내일 갈래요? 하시길래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첫 대답 소리를 보니 많이 좋아진 것 같다며 가도 될 것 같다고 퇴원하자 하셨다. 정말 애타게 기다리던 말이었다.


너무 추워 잠이 오질 않아 자정이 넘어 병동을 배회하고 있으니 간호사쌤이 퇴원 처방이 나왔다고 이야기해 줬다. 아 정말 날이 밝으면 이 공간을 떠날 수 있구나. 피검사가 남아있긴 했지만, 갈 수 있다는 희망 속에 다시 병실로 돌아와 누웠다. 역시나 추워 잠은 거의 잘 수 없었다.


다음 날 새벽 피검사를 하고 아침을 먹은 후 짐을 싸기 시작했다. 여전히 항생제와 진통제는 맞아야 해서 수액 걸이가 끊임없이 걸리적거리긴 했지만, 이것도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견딜 만했다. 총 19박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짐은 확실히 처음보다 많이 줄어있었다. 밤새 식은땀을 흘리며 자도 주사 때문에 샤워를 할 수가 없어 물티슈를 대량으로 써댄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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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다 싸고 나니 생각보다 일찍 퇴원 처리가 끝났다. 엄마가 짐을 들어주러 오시기로 되어있었지만 단 1분이라도 병원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혼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겠다고 하고 병원을 나섰다. 더 이상 환자인 것이 싫어 환자용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굳이 오래 걸리는 일반 엘리베이터를 택해 1층으로 내려갔다. 천천히 캐리어를 끌고 병원 문을 열고 나서니 그제야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무거운 건 도저히 들을 수가 없어 택시 기사님의 도움을 받아 캐리어를 싣고 내리고,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양손이 자유로워졌음에 행복해하며 도착하자마자 샤워부터 했다.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우니 정말 편안했고, 집에 돌아온 안도감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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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계속 못 잔 탓에 겨울잠 자듯 한 번 깨지도 않고 잘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중간중간 뒤척이고 꿈자리도 엄청나게 사나웠다. 조금씩 천천히 괜찮아지겠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푹 쉬자고 다짐하며 혼돈의 19박 20일의 입원 생활을 끝냈다.




- 다음은 에필로그와 이후의 기록을 남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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