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반가운 수신인께 보내는 웰컴 레터
안녕하세요. 에세이레터 <나의 갭이어 일기>의 발신인, 문프랜입니다.
본격적으로 편지를 부치기 전에 먼저 웰컴 레터를 보냅니다. 보통 책 앞장을 보면 프롤로그 혹은 여는 말이 적혀 있듯이, 이 시리즈가 무엇이고 저는 누구인지 먼저 소개하고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에세이레터 <나의 갭이어 일기>는 2022년 가을부터 2023년 여름까지 일기장과 블로그에 써 온 백수 생활 기록을 다시 엮은 글입니다.
2년 전 이맘때, 저는 번아웃을 겪고 퇴사와 갭이어를 결정했습니다. 휴직도 이직도 아니고 아무 계획 없이 그냥 무작정 쉬어 보겠다면서요. 지금까지의 삶 중에서 나름대로 가장 과감한 선택지를 주워 들고서도 사실은 불안했습니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나에 대한 실망과 의심이었어요.
성급한 선택을 내렸다가 후회하게 될까?
나를 위한 선택이 맞나? 이거 그만두면 뭐 먹고 살지?
고작 4년 일한 것 가지고 이러는 걸까?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것 같지?
남들은 다 하는 걸 견뎌내지 못하는 나약한 내가 실망스러웠고, 고작 생채기 조금 난 것 가지고 호들갑 떨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때 제게 위안이 되었던 건 ‘나만 이런 게 아니야’를 확인할 때였어요. 주변의 따뜻한 사람들을 통해서, 책 속 사례를 통해서, 인터넷으로 번아웃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러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고 그 해결책으로 갭이어를 선택하는 것을 보며 비로소 안도와 용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나만 이런 게 아니야,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어,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하고요.
그래서 번아웃을 겪고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 또 있다면 나도 그랬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왜 갭이어를 시작했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위해, 미래에 또 갭이어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 나를 위해.
<나의 갭이어 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라고 생각하셨다면 사실 맞습니다. 수입 없이 퇴직금만 착실히 까먹으며 몇 달을 지냈거든요.
하지만 내가 나를 백수라고 부르기는 어쩐지 부끄럽고 망설여졌습니다. 그래서 제 사정을 잘 모르는 누군가가 '무슨 일 하세요?' 물어보면 한동안은 "그냥... 잠깐 쉬고 있어요" 하고 뭉뚱그리곤 했어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스스로 결정한 공백기인데도 '백수'라는 말로 표현하면 어딘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었달까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갭이어'라는 낯설고 거창한 말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갭이어라는 개념에는 휴식뿐만 아니라 나를 새롭게 탐색하는 과정까지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그동안 열심히 일하느라 수고한 나뿐만 아니라, 인생의 한 시기를 할애해 가며 충분히 잘 쉰 다음 방향을 다시 찾아보겠다는 또 다른 나도 보듬어 주기로 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 공백이 내게 꼭 필요한 쉼이라면 숨기거나 얼버무리지 않고 자세히 기록해 보기로요!
<나의 갭이어 일기>는 시간순으로 연재됩니다. 4년 차 직장인이던 문프랜은 어쩌다 갭이어를 결심하게 되었고, 일하지 않는 긴 하루 동안 대체 무엇을 하며 보냈으며 갭이어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는지. 약 1년에 걸친 시간을 천천히 되돌아보려고 해요.
총 20편의 편지는 아래와 같이 크게 세 가지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갭이어를 시작하기 전 퇴사와 나에 대한 고민들
1화. 갭이어를 갖기로 결심한 날
2화. 왜 하필 갭이어여야 했냐면
3화.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다
잘 비워내고 회복하며 좋아하는 것으로만 채운 일상
6화. 갭이어 생활자의 하루 루틴
7화. 갭이어 생활자의 지갑
8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10화. 갭이어가 알려 준 뜨개의 세계
11화. 내게 맞는 여행을 찾는 기쁨
12화. 나를 기특하게 생각하기, 오직 나만의 기준으로
13화. 내가 아는 네 모습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
14화. 끝까지 비워야 채울 수 있다
갭이어에서 프리랜서로 넘어가는 길목에서의 생각들
15화. 세상에 얼마나 많은 길이 있는지
16화. 내 그릇의 크기와 모양과 재질
17화.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18화. 나의 첫 프리랜싱
19화. 갭이어, 후회하지 않나요?
20화. 갭이어 파트 1을 마치며
마음에 와닿는 제목이 있나요? 관심 있는 이야기를 먼저 눌러보셔도 좋지만 1화부터 순서대로 읽는다면 더욱 좋을 거예요.
또한, 이런 분들께 이 편지들이 특히 의미 있게 읽힐 것 같습니다.
퇴사해도 될까? 갭이어를 가져도 될까? 고민하고 있는 분
번아웃을 겪었거나 겪어내고 있는 분
일 안 하면 뭐하고 지내요? 일하지 않는 일상이 궁금한 분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다양한 삶의 사례를 통한 공감, 위로가 필요한 분
조직에서 벗어나 프리랜서로 전향하려고 하는 분
사실 <나의 갭이어 일기>는 무료 메일링 구독 서비스로서 2023년 11월부터 2024년 4월까지 한 차례 연재를 진행했던 글입니다. 하지만 20화로 예정했던 연재를 마치고 나니, 기존 구독자분들 220명의 메일함에만 이 이야기가 머무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전보다 갭이어라는 말이 흔해졌다고는 하지만 휴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눈초리는 여전히 차갑습니다. 고등학교를 나와 바로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졸업도 하기 전에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해야 하고, 취직하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해야 하고... 사회가 정해놓은 단 하나의 선택지는 늘 개개인의 특성과 가치관보다 앞서곤 합니다. 그래서 지금 잠시 쉬겠다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하죠.
'너 그래가지고 나중에 취업/결혼/육아는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남들도 다 힘든데 그냥 참고 사는 거야.' '이러면 남들보다 뒤처지는 거야.'
심지어 이런 말은 꼭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남들처럼 살아야 하는 이유가 고작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많이들 그렇게 하니까'라면. 그렇다면 그렇게 살지 않는 사례를,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사례를 내 곁에 더 많이 가져다 둔다면 어떨까.
일부러 더 크게 말하고 자주 꺼낸다면, 그렇게 선택지가 다양해진다면.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단 하나의 선택지만 강요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선택할 수 있는 보기는 많아질 테고 그중 나에게 가장 편안한 것을 스스로 고를 수 있으니까요.
이 편지를 통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퇴사하세요' '갭이어 무조건 가지세요'가 아닙니다. 어떤 삶이 옳다 그르다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에요. 저는 이런 사람이라서 이런 선택을 했다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다만 지금처럼 너무도 경직된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이야기조차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아주 작은 사례 하나라도 더하려는 마음입니다. 여기, 이렇게 다른 선택지도 있다고 말하고 싶어 편지를 씁니다.
그래서 기존에 보냈던 글을 모아 이렇게 브런치북으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실시간으로 편지를 보냈을 때는 그 주의 날씨나 새해, 명절 같은 이야기들이 편지 앞머리에 자연스레 담겨 있었지만, 이 브런치북 버전은 언제 읽어도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그런 부분을 덜어냈습니다. 그 외의 본문 내용은 모두 동일하니 편하게 읽어 주세요.
참고로, 각 편지는 짧은 '에세이' 한 편과 그에 관한 수다를 담은 '레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존에는 사용하던 뉴스레터 서비스의 기능 덕분에 편지 내에서 'OO(구독자 이름)님'이라고 이름을 부를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으니 읽어주시는 분들을 '구독자님'이라고 통칭할 예정이에요.
마지막으로, 편지를 읽어주시는 구독자님들과 더 가까이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구독자 익명 방명록을 소개합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오시면 누구나 익명으로 포스트잇에 글을 남길 수 있는데요.
https://padlet.com/lolxxhug/mygapyeardiary
이 방명록에는 편지를 읽고 느낀 점, 요즘 하고 있는 고민, 문득 떠오른 질문 등 무엇이든 익명으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앞서 연재를 진행했던 20주 동안 차곡차곡 쌓인 다른 구독자들의 발자취도 보실 수 있으니 천천히 구경해 보세요.
모든 편지 말미에는 추신으로 갭이어와 관련해 생각해 볼만한 질문을 하나씩 달아두었습니다. 말씀드렸듯 이 이야기는 제 개인적인, '나'의 갭이어 일기이니 '여러분'의 갭이어 일기는 어떤지 나름대로 생각하고 정의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추신에 대한 답장을 쓰고 싶다면 각 화의 브런치 댓글 혹은 위의 익명 방명록 중 편하신 방법으로 제게 전해주세요.
그럼, 길었던 웰컴 레터를 이만 마무리하고
그동안 쌓인 편지 스무 통을 함께 부칩니다.
느릿하고 즐겁게 읽어주세요.
낯설지만 반가운 마음을 담아,
프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