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아직 나는 젊단 말이다
회사는 3층이다. 걸어서 올라가도 되련만 현생에 찌들어 버린 직장인은 계단을 잠깐이라도 활용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하아, 안온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걷는 것보다 조금 더 빨리 도착한다는 점에서 살짝 속상하긴 하지만 괜찮다. 나는 이미 약간 지각이니까. 엘리베이터는 교통 약자는 물론 나같이 게으른 자에게도 은혜를 베푸는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이다.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노엘베 빌라에 4층 살게 된 이후로부터 쒸익쒸익 거리며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내릴 때마다 나의 엘베 예찬은 더해졌다. 그뿐인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거나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중 사람들은 상당히 지루해하고 때로는 공포까지 느끼는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 보통 엘베 안팎에는 거울이 있다. 우리 회사 엘베에도 거울이 있었고, 눈이 따가울 정도의 백색광도 갖추고 있는데 출근 전 스스로의 옷매무새나 화장, 얼굴을 살피며 출근하기 좋다. 매일 아침 사회화된 자아를 꺼내기 직전 마음을 무장하는 나만의 시간.
이렇게 엘베를 사랑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엘리베이터는 내게 피하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최소 우리 회사 엘베는.
심상한 날이었다. 대충 씻고 헐레벌떡 1층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는 숨을 돌리며 3층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거울을 통해 무언가 머리에서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두피에 붙어 있다 유분을 잃고 퍼석거리는 주제에 끝내 샴푸질에서 살아 남곤 하는 비듬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 희고도 투명하며 영롱하게 빛나는 것. 눈꽃 같지만 이 계절에 내 머리 위에 절대 있을 수 없는 눈꽃은 아닌 것이 분명한 그것.
흰머리...?
출근 중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사무실로 향하는 3층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정수리 부근이 거울에 좀 더 잘 보이도록 살짝 고개는 숙이되 눈은 위로 치켜떠서 그 반짝이는 것을 노려봤다. 나와 큰 거울과 정수리 위 직각으로 떨어지는 백색광이 있는 그곳에서.
ㅋ... 맞네... 흰머리...
이런 추측은 왜 항상 들어맞을까. 주식은 맨날 반대로 가는데. 다시 한번 같은 자세로, 단 눈알은 굴리고 조금 더 맹렬한 기세로 손 끝으로 가르마를 바꿔가며 숨은 흰머리가 더 있는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ㅋ....... 많네... 흰머리...
정신 건강을 위해 인생 모토 내로남불을 부르짖으며 같은 흰머리도 내 두피에서 나면 잠깐의 새치라고 하고 싶지만 이럴 때는 자기 객관화가 빠를수록 좋다. 흰머리다. 그 수가 스스로가 새치는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ㅋ... 왜지? 유전은 아니다. 엄마랑 아빠도 그들 나이 50이 넘어서야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탓일까. 까이꺼 대애충 살아도 될 거 뭐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지나치게 애쓰며 살아와서 멜라닌 생성에 쓰여야 할 에너지가 제대로 쓰이지 않게 된 걸까. 근로계약서 상에 적힌 근무 시간에는 결재하고 회의한다고 정신없고, 남들이 다 퇴근하는 시간에 저녁 먹고 앉아 내 일을 시작하며 일상을 보내는 인생 이모작의 나날들이 길어지면서 머리카락이 2배의 속도로 빨리 늙은 것은 아닐까. 머리카락은 희게 변해서 빠르게 티 나지만 피부도 2배로 빨리 늙고 있는데 내가 못 알아챈 것은 아닐까. 노화다... 노화가 찾아왔다... 안돼... 아직 나는 젊단 말이다...
무루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읽으면서도 제목이 내 마음을 잘 대변한다고 생각했고, 백발을 안 쪽으로 정갈하게 말아낸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을 보면서도 저렇게 늙어야지 생각했던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노화는 당연한 것이라고 내 삶의 일부로 껴안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은 아니다. 너무 빠르다. 내가 생각한 건 먼 훗날의 이야기지 지금이 아니라고!!!!!!!!!!
터덜터덜 사무실로 들어섰다. 내 흰머리의 원흉(으로 추정되는) 이 회사... 원망과 살기를 가득 담아서 사무실 구석구석을 쓱 한 번씩 쏘아본다. 한 번 흰머리가 나면 다시 그 모공에서 검은 머리가 나는 것은 어렵다고 들었었다. '그래. 그럼 이제 앞으로는 흰머리가 나지 않는 방향으로 일하자. 최대한 흰머리를 예방할 수 있는 속도와 정도로 일하자! 내 젊음을 갈아 넣지 말자!' 결심을 굳히려는 순간 쎄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아니, 근데 이렇게 노화가 빨리 시작되서야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나마 에너지가 남아있고 태울 젊음이 남아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태워 화폐화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_ㅠ 물 들어올 때 최대한 노 저어서 한껏 땡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_ㅠ'
3n살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온 흰머리는 갑자기 노화와 노인이 된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을 채근했다. 100세까지 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때까지 혀에 어떻게 풀칠하나 싶으면 깜깜한데, 우리나라는 노인 복지도 잘 안되어 있는데, 우리 집 고양이들 모래가 담겨 있던 상자를 바깥 전봇대 앞에 내놓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파지 줍는 노인 분들이 연로하고 잔뜩 무거운 몸을 하고선 리어카를 끌며 상자와 함께 사라지는데. 나중에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현재 시점 비혼주의자인 나의 정수리에 드리운 노화의 흰 그림자는 이런저런 심난함을 잔뜩 안겨주었다. 흰머리는 전조일 뿐이다. 그 이전에도 노화의 전조는 있었다. 자고 일어나서 생긴 얼굴의 베개 자국은 이전만큼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근육을 비틀어 키보드와 마우스, 트랙패드에 오래 올려두고 두드려댄 손가락들이 이젠 조금만 사용해도 아프다. 다만 머리카락이 좀 더 충격적인 까닭은 다시 돌려낼 수 없고 너무 한눈에 드러나서일지 모른다.
심난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심난하다. 이것도 일종의 에이지즘(ageism)이겠지 생각하면서도 미래를 생각하면, 할머니가 된 나를 상상하면, 사실 안 해본 것들이라서 두려움이 앞선다.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하면 대부분이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오른다. 우주여행을 떠나는 것만큼 늙는 것이란 사실은 결심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다른 세계이겠지. 하지만 굳이 미리 생각하지 않아도 늙는다.
해야 할 것은 걱정이 아니라 흰머리가 보내는 늙음의 신호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늙어 가는 몸을 보면서 으레 그런 것이라며 마음과 태도도 같이 늙어갈 것인지, 이전보다 눈빛과 태도가 더 단단히 펄떡이는 어른이 될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늙고 있구나를 눈치챈 김에 마음이나 태도도 늙어있지는 않은지 들여다본다. '이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이제 안돼.' '한 살~열 살만 어렸어도.' 같은 말들을 입술에 붙이고 살고 있진 않은지 돌아본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것이 많은데 모든 것을 다 경험한 것처럼 타인의 삶을 재단하고 있진 않은지도 돌아본다. 이전만큼의 속도나 성과가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지금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나에게는 좋은 레퍼런스가 있다. 엄마도 내가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에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고, 중학생일 때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고등학교 때는 호스피스 자격과 평생교육사 자격을 땄다. 엄마뿐일까? 일본의 마사코 와카미야도 60세가 넘어 배운 코딩으로 80대에 앱 개발을 하고 있다.
늙음을 껴안되 늙는 게 당연하다고 해서 늙음에 휩쓸리지는 않겠다.
노인이 된 내 삶을 둘러싼 걱정거리에 대해서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한다. 돈을 많이 벌고, 주식과 코인이 떡상하는 것도 꿈꾸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러 보험을 들어두면 단단할까? 집을 사면 나을까? 주식과 코인이 대폭락 한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당장 보험금을 많이 내기엔 지금도 빠듯하고, 집 값은 영끌해도 손 끝에 잡히지 않는데 장밋빛 미래만 그릴 수는 없다. (내 코코아 주식과 각종 코인은 언제 다시 내 평단까지 올라올까.) 아직 청년기에 속해있지만 정부와 사회가 노인을 위한 정책들을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어 돌봄이 혈연이나 가족관계에서만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인식의 씨앗을 내 안에 뿌리고 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을 방문하는 왕진, 치매어르신과 보호자의 쉼터 서로돌봄카페, 케어비앤비나 데이케어센터 사업에 관심을 갖고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길 바라며 매달 조금의 힘을 보탠다. 30년 뒤, 흰머리 몇 터럭으로 속상할 때가 훌쩍 지나버렸을 때의 내가 조금 더 고립되지 않고 사회의 안전망 속에서 서로를 돌보고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흰머리를 서러워하며 그 존재를 지우려 하기보다는 흰머리를 서러운 노인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연결의 끈으로 삼아봐야지. 흰머리가 정말 서러운 날에는, 까짓 거 뭐 또 전체 탈색을 하면 그만이다. 백금발은 힙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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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사진: Photo by Clément Faliz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