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카락 얘길 한참 해놓고 당신의 머리카락이 문득 궁금해서
이전 글에서 등장했던 머리카락들은 여전히 내 머리에 이어 매달려있다. 3n세의 봄, 나는 반반머리를 했던 흔적을 노랗게 머리 한 구석에 둔 채 퇴사를 했다. 퇴사라는 경제적 거지존이자, 머리카락이 그지같은 거지존에 자발적으로 들어서서, 어렸을 때는 엄마를 졸라 그렇게 숨기고 지우고자 했던 반곱슬 머리를 그대로 둔 채로 붕붕 뜨는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아 뻗치도록 양껏 내버려 두었다. 이 글들은 그 기간에 쓴 글들이다. 늘 쓰겠다고만 생각하다가,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지나치게 평범한 내가 할 수 있는 얘기가 별로 없어 체념도 했다가 주변 사람들을 둘러봤을 때 늘 가장 관종 같은 머리를 하거나 자주 헤어스타일을 바꾸고는 하는 것만이 어쩌면 가장 나다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다.
머리카락 얘길 처음 시작하면서는 머리카락을 둘러싼 사회의 각종 갈등과 전쟁과 뭐시기 등등에 초점을 맞춰 쓰려고 했다. 그래서 거창하게도 정수리 위가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우는 아레나라는 선언까지 하며 시작했다. 하지만 글을 쓰며 결국 이 글이 머리카락을 둘러싼 사랑의 기억, 마법과 같이 신기한 세상을 수리수리정수리로 감각하고 나 스스로를 만나는 이야기였음을 고백하게 된다. 살풀이하듯 머리카락을 핑계 삼아 이런저런 숨기고 싶었던 얘기까지 술술 풀어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12,000일이 넘도록 함께 해온 내 머리카락의 역사를 생각했을 때 이 글들은 아주 일부의 이야기들이다. 아직 쓰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 거지존을 거지 같지 않게 넘겨보기 위해 붙임머리를 했던 것이나, 앞선 글들에서 다루지 않은 다양한 헤어스타일이나, 반반머리를 하고서 괜히 눈치 보느라 외부 미팅용 가발을 장만한 것이나, 그 가발을 쓰면 대가리(머리보다는 대가리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가 유독 커 보여서 결국 한 번 쓰고 당근마켓에 팔아버린 것이나, 우리 집 삼냥이 중 첫째가 유독 내 머리카락을 뜯어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나, 미용실에 가면 왜 돈을 내고 흉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이나, 세상의 온도가 바뀌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이 늘 액상으로 쓰던 샴푸를 샴푸바로 바꾸게 한 이야기 등... 못다 한 이야기는 끝도 없다.
하지만 바통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넘기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머리카락의 안녕이 궁금해진다.
하고 싶은 헤어스타일을 하면서 살고 있나? 나이나 성별 등을 들어서 괜한 규격에 맞춘 모양으로 살고 있진 않나? 상실과 스트레스로 발생한 원형탈모가 있진 않나? 출산 이후 머리카락이 숭덩숭덩 빠지고 있지는 않나?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중하다가 스스로 죄다 머리카락을 뜯어내고 있진 않나? 매일 아침 피곤하면서도 왜인지 모를 의무감에 스스로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꾸미고 있진 않나? 돈벌이에 지친 머리가 하얗게 쇠고 있진 않나? 투병 때문에 언젠가를 기약하며 삭발을 하진 않았나?
머리카락에 대해 묻는, 이 모든 질문은 결국 당신의 안녕에 대한 것이다. 머리카락과 정수리, 손 끝과 발 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감각할 때마다 당신의 안녕이 없이는 내 안녕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어김없이 두피에 뾰루지가 올라온다. 인도 여행을 하며 통하지 않는 언어를 뚫고 교감을 나누던 소녀의 머리카락에서 튀어 오르던 벼룩이나 이가 나에게만 안 옮겨올 리가 없다. 지정 성별, 나이, 직책 등을 이유로 당신의 머리카락을 검열해야 하는 사회라면 나에게만 그 검열이 비껴갈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군지도 모를 당신의 머리카락이 안녕하길 바란다.
언젠가 당신의 머리카락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안녕에 대한 답이 오길 바라본다. 그 때면 나도 할 얘기가 더 쌓여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약하며 인사를 보낸다.
당신의 머리카락이 안녕하길, 당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건강하길.
표지 사진: Photo by Melissa Askew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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