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체험의 순간들

정신에서 감각으로

by 방향

먹고 마시는 얘기를 했으면, 응당 보고 듣는 얘기도 해야 마땅하다. 우리가 보고 들음으로써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주로 의존하는 감각이 시각이고, 그다음이 청각이란 점을 생각하면 더욱. 심지어 맛과 냄새가 큰 지분을 차지하는 미식의 영역에서조차도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보고 듣는 것, 사람은 그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날씨가 좋아서 맑은 하늘이나 가을밤에 들려오는 벌레소리에도 우리는 감각을 오롯이 수용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세상을 인식하는 것도 일종의 예술 감상이 된다. 감상자 입장에서 사실 창작자야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예술은 미식과 마찬가지로 잘 즐기기 위해서 정신적 준비를 어느 정도 요구한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감각이 선행되며, 정신적 감상의 층위가 없더라도 모르면 모르는 대로 즐길 수 있다. 그럼에도, 문화 예술에 대해 글을 하나 더 얹는 이유란? 내게 있어 예술은 딱히 그 방향성을 규정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나는 우선적으로 문학을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시각에 의존하지만, 상황에 따라 선 청각으로도, 촉각으로 다가오는 매체. 언어를 매개로 하기에 발달단계와 무관하게 그에 맞는 문학적 체험이 삶에 밀착한다는 점에서 취향 크레바스에서 꼭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주제였다.


내 몇 안 되는 선명한 어릴 적의 기억 중 하나는 길에서 간판을 읽는 장면들이다. 어린 시절에 겪을 수 있는 문학적 체험? 내게는 유아용 동화책, 집에 놓인 물건에 쓰인 글자들, 또는 길거리에서 본 간판들 정도가 떠오른다. 이런 문학적 체험은 아이가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며 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희한하게도 내 뇌리에 깊게 새겨진 인상적인 그림책이나 동화는 딱히 없다. 오히려 어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걷던 길 위에서 본 간판의 글자들이 미지로의 모험이었다. 아는 말들은 그저 인식하고 넘어갈 뿐이지만, 낯선 조합들은 언제나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런 체험도 문학적 탐험이고, 도전이다.


문학적 체험이라고 하면, 다들 소설이나 시를 읽으면서 느끼는 공감각을 주로 떠올린다. 물론 맞는 말이다. 가장 원초적인 체험이자, 그만큼 강력한 경험을 선사해 준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강렬한 장면 속 묘사를 읽고 그 장면 속 냄새나 날씨 등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장렬한 에픽 판타지 속의 전투씬을 읽는다 치면, 전장의 날씨나 병장기의 쇠 냄새 따위를 실제로 맡고 있는 그런 경험. 개인적으로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이 여럿 있다. 학창 시절 대여점 판타지부터 시작해서, J.R.R. 톨킨의 중간계까지 덕질하던 판타지 덕후였던 나에게 전민희 작가의 룬의 아이들 - 윈터러 속 몇몇 장면은 특히 각별하다. 중학생의 감수성이란.


하지만 이런 것이 전부는 아니다. 끝내주는 감각체험이 주는 다양한 정신적 작용과 이를 표현하고자 할 때 떠오르는 표현들 또한 문학적 체험이리라. 이러한 문학적 경험들을 떠올리자니, 어릴 때 있었던 희한한 일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학급 문집에 어린이를 위한 <난중일기>를 읽었던 일에 대해 쓴 것을 언젠가 본 적이 있다. 그 당시에 나는 한 어른의 질문에 "어려운 것"을 읽는 것이 좋다는 당돌한 말을 했다고 쓰여있었다. "어려운 것"에 도전하는 행위에 관심이 있었다니? 단순히 무모했던 것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이어지는 내 성향의 싹이었던 걸까. 어려서부터 지적 허영심이 그득그득하다.


흥미로운 것은 대학 시절을 보내던 내 지론과 맞닿아있는 지점이 있다는 부분이다. 당시의 나는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쉽게 이해되는 것을 공부한다는 것은 내가 a priori 알고 있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려운 것에 도전해서 그걸 이해하는 과정이 없으면 배움도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저런 문집을 발굴해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이건 대학 시절 이후의 일이다.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이 두 생각을 연결 지을 생각은 결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또한 중요한 문학적 체험이다.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 모델로써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글을 남겼더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편해지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분명히 체력이 떨어져서 인내심이 같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직업적인 작업을 할 때는 여전히 어려운 주제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반동으로 문화예술을 즐길 때 힘을 좀 빼게 되는 것 같다. 반대로 그래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렇게나 읽던 어릴 땐 강렬한 감각을 문학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는데, 성인이 된 후로는 그러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말이다. 문화예술적 체험의 다양성을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향유해 봐야겠다.



언제 기회가 되면, 낯선 외국에서 문화 예술을 즐기기 위해 했던 노력에 대해서 써봐야겠어요.


dfsdsf.jpg 이 글을 읽고 Gemini가 생성한 이미지



다음편으로 2부 취향 크레바스는 마무리 됩니다. 예상보다 오래 걸렸지만, 드디어 3부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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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목록:


<내 삶 마주하기> 읽기 가이드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1 :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의 두려움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2 : 방향의 의미

1부 방향 매니페스토 - 3 : 나를 위한 글쓰기


2부 취향 크레바스 - 1 : 쌈띵 온 열 마인드?

2부 취향 크레바스 - 2 : 너 자신을 알라, 그 첫걸음

2부 취향 크레바스 - 3 : 입맛의 미학 (1)

2부 취향 크레바스 - 4 : 입맛의 미학 (2)

2부 취향 크레바스 - 5 : 입맛의 미학 (3)

2부 취향 크레바스 - 6 : 입맛의 미학 (4)

2부 취향 크레바스 - 7 : Chasm, Sarcasm, and Enthusiasm

2부 취향 크레바스 - 8 : 전복적인 전복의 맛

2부 취향 크레바스 - 9 : 나의 문화 예술 답사기

2부 취향 크레바스 - ?? : 내 마음이라는 설원


4부 돌아가는 펭귄 드럼 - ?? : 삶을 위한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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