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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Feb 28. 2017

월간 김창우 : 2017년 2월

Turning 40


어려서부터 부산 국제시장과 깡통시장에서 해외 선진 문물을 접하며 자란 영향으로, 난 나이도 항상 만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친구들이 올해 42살의 중후한 삶을 살고 있을 때도, 난 39살로 살았다. 그런데 지난 2월 6일, 나도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40이 되었다.


Finally I'm turning 40!



예쁜 말 고운 말


두 개의 식물을 조건이 같은 환경에 두고, 한쪽 식물에게는 긍정적인 말을 끊임없이 들려주고 다른 쪽 식물에게는 부정적인 말을 되풀이해서 들려주면, 좋은 말을 들은 식물의 성장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글을 자주 접했다.


그래서 지우의 방학을 맞이하여 실험을 했다. 지우 학교는 이런 걸 방학숙제로 내준다.


플라스틱 컵 두 개에 밥을 넣고, 한쪽에는 살리는 말, 다른 쪽에는 죽이는 말을 써붙였다. 아이들이 귀여운 밥풀때기를 보고 "사랑해, 고마워, 넌 착해, 잘했어, 잘 자~" "나빠, 바보야, 멍청이, 죽어~"를 번갈아 외치는 모습들도 귀여웠다. 아직까지 아기들이라 더 섬뜩한 말들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에게 나쁜 말을 시켰으면, 아마 밥풀때기들이 단체로 수분을 쫙 짜내 물을 만든 후, 물에 빠져 자살했을 듯. 차라리 흥부 뺨에 붙은 밥풀 신세로 사는 게 낫지.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그 결과는... 둘 다 썩었다. 심지어 살리는 말이 더 심하게 썩었다.



이 실험을 통해, '우리의 삶은 Oooops의 연속'이라는 것을 깨달았길.



빔프로젝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 출발은 프로젝터였다.

내가 프로젝터를 오래전부터 꿈꿔 왔던 것은 이전 글에서도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갖고 싶었던 것은 프로젝터였다. 약수동에서는 1톤은 됨직한 무거운 Goldstar 17인치 볼록 TV를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대세였던 32인치 완평 TV를 매장 진열제품으로 싸게 하나 살까 고민도 했지만, 집 평수에 비해 사이즈가 너무 컸다. 우리 집의 얼반·모던·심플컨셉엔 프로젝터가 딱이었다. 프로젝터는 바로 옆의 TV 마케팅팀에서 취급하는 품목이라, 나랑 같이 매일 야근을 하던 박정미에게 물어보니, 당시엔 제일 싼 모델이 400만 원 정도 했다. 비록 야마하 디지털 피아노 6개월 할부가 끝났지만, 구매의사결정 장애가 있는 내가 400만 원짜리를 살 파이팅은 없었다. - 2004년 "서울생활 #10" 글 중에서 -


이제 때가 되었다. 프로젝터 하나 사자. 그래서 LG 다니는 친구에게 빔프로젝터를 문의했더니, 쿨하게 프로젝터를 하나 보내줬다. LG 빔프로젝터 PH550. 같이 자취할 때 유일하게 과외로 돈을 벌던 내가 밥 값을 더 내긴 했는데, 훗날 이렇게 크게 돌아오다니. 고맙다, 주노야.


이제 스크린만 하나 사면 된다. 근데 스크린은 어디 팔지? 몇몇 가전 매장에 들렀는데 없었다. 인터넷으로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단 벽에 대고 쏘아보니 제법 볼만했다. 그때 장인어른이 창고에서 뭔가를 뒤적뒤적 찾으시더니 천체망원경 같이 생긴 물건을 가지고 나오셨다. 그것이 가로본능 세로본능 변신하더니 주르륵 펴지며 스크린이 되었다. 와우. 장인어른이 30년 전쯤 독일에서 가족들이 찍은 슬라이드 사진을 보기 위해서 사셨다는데, 30년간 여러 나라를 이동하며 잘도 버티다가 이제야 햇빛을 보게 되었구나. 나이를 보여주듯 녹이 많이 슬어 스크린을 꺼낼 때 발정 난 고양이처럼 끼이이익 소리가 났고, 스크린도 조금 누렇게 변색되기도 했지만, 내 눈엔 메가박스 부티크 M 화질 이상이었다.


그렇게 LG 빔프로젝터와 30년 된 스크린 조합으로 나의 영화 생활은 시작되었다.




우연


거의 하루에 한 편씩 영화를 보는 생활 중, '사우스포'를 본 직후였다. '사우스포'에서 제이크 질렌할의 와이프로 나온 레이첼 맥아담스의 영화를 하나 더 볼 것인지, 아니만 이미 다운받아 놓은 '어바웃 타임'을 볼 것인지 고민을 했다. 사실 '어바웃 타임'은 전문가의 추천으로 다운을 받아놨지만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레이첼 맥아담스가 나온 영화 중 수작으로 꼽히는 '모스트 원티드 맨'이나 '굿모닝 에브리원'을 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서 새 영화를 다운받기 전, '어바웃 타임' 파일 재생 시 코덱 문제는 없는지, 자막은 잘 뜨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잠시 영화를 틀었는데, 초반 30초 만에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잠시 레이첼 맥아담스를 잊고 '어바웃 타임'을 보기 시작했다.


10분쯤 흘렀나.


나보다 더 민간인처럼 생긴 남자 주인공 도널 글리슨이 친구와 암흑 레스토랑에 가서 블라인드 미팅을 했다. 그곳에서 여자 주인공을 암흑속에서 만났다. 오직 귀로만 들리는 여자 주인공의 목소리는 감미로웠고, 둘은 대화가 잘 통해 밖에서 만나기로 하고 글리슨이 먼저 나가서 여자 주인공을 기다렸다. 저 계단으로 여자 주인공이 올라오겠지. 관상에서 수양대군 이정재의 등장 씬만큼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암흑 레스토랑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온 여자 주인공은, 놀랍게도 레이첼 맥아담스였다. 소름.


지난 주말, 와이프의 대학원 졸업식이 있었다. 고려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그런데 그 날 동아리 후배가 결혼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후배들의 결혼식은 꼭 참석하고 싶은데, 하필이면 와이프 졸업식과 겹쳐 버렸다. 후배에게 못 가봐서 미안할 거 같다는 말을 하기 전, 장소가 어디인지부터 물어봤다. "결혼식은 고려대학이요" 소름.


지금까지 이런 우연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오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 내게도 행운들이 조금씩 찾아오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 이제 좀 찾아오자. 나도 이제 행운권 당첨도 되는 삶을 살아 보자.


Marshall 스피커를 입양한 후, 일할 때 음악을 틀어 놓고 있다. 난 Pop, Rock, Hip-Hop, R&B, Metal 등 모든 장르에서 주변인으로 머물고 있지만, 그나마 Jazz가 듣기 편하다. 과거 내게 Jazz의 참 맛을 알게 해주었던 Al Jarreau의 음악들을 지난달부터 다시 듣기 시작했다. 특히 Al Jarreau 아저씨의 Your song은 마치 퇴근길 강변북로에서 들으라고 만든 노래처럼, 집에 가는 길에 잘 어울렸다. 한국에 한 번만 더 오시면 무조건 갈 텐데. Your song을 직접 라이브를 들을 수 있다면, 마이크 타이슨이 미트 잡아 주는 것 정도의 전율이 흐리리라.


그러던 중 타임라인에서 Al Jarreau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R.I.P Al Jarreau.


우연은 좋은 걸로만 오는 걸로.


https://www.youtube.com/watch?v=OH7xg5Eoi2E



졸업


둘째 지아 태어날 때 내가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둘째의 4번째 생일날 와이프가 대학원을 졸업했다. 나야 설렁설렁 다녀서 즐겁기만 했는데, 와이프는 둘째 임신한 상태로 다니기 시작해서 회사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중간에 여러 번 휴학까지 했다. 그래도 고군분투하여 4년 만에 우수한 학점으로 졸업을 했다.


둘이 석사 학위를 받는데 벤츠 한 대 살 수 있는 돈을 썼구나. 하와이도 10번은 다녀올 수 있는 금액이다. 배워서 남 주냐는 말은 별로 와 닿지 않는다. 우리도 지금은 모르겠다. 괜히 쓸데없이 가방끈만 늘려놨는지. 그래도 언젠가는 밤마다 치열하게 대학원 다닌 보람이 있겠지. 적어도 우리 딸들이라도 인정해주겠지.




턱걸이


2월의 목표는 턱걸이 15개였다.


이번 달도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밖에 체육관을 가지 못했다. 그래도 컨디션이 나쁘진 않았다. 영화를 보며 틈틈이 푸시업을 했다. 물론 Turning 40이 된 사람들은 근육 손실의 속도가 상당하여 딱 3일만 안 해도 밋밋한 몸뚱아리로 포맷된다. 그리고 무리를 해서도 안된다. Turning 40들의 몸은 얇고 힘없는 모발처럼 위태위태하다. 평소보다 의욕적으로 5~10개 더 하면 다음날 꼭 탈이 난다. 그렇게 2월 한 달, 4번의 체육관 운동과 적당량의 푸시업을 하며 겨우 현상유지는 한 것 같았다.


그리고 2월의 마지막 날, 체육관을 다시 찾았다.

심호흡을 가다듬고 턱걸이 시작!


1..2..3..4..5..6..7..8..9...(헉헉)...10...(으으으)....11.....(ㅆㅂ)......12


억지로 12개!


중간에 팔도 제대로 안 펴고 막판에 모양 빠지게 개구리처럼 폴짝대긴 했지만,

난 스스로에게 후하니까 12개 성공했다고 치자.


어쨌든 미션 실패!


3월 목표는 다시 턱걸이 15개로. 그리고 가능하면 모양 안 빠지는 15개로.


처음에는 여유있게


막판엔 추하게


첫날부터 수요일 휴일을 안겨주는 3 월아,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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