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 크기에 대하여
구구절절한 연애편지를 쓰다 밤을 새운 적이 있다.
그 사람 앞에만 서면 뇌가 표백된 것처럼 도무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이유 없이 말이 어렵고 풍경이 낯설고 시간이 휘었다. 정지되거나 영원해지는 시간이 많아서 마치 다른 세계에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나를 좋아하는 걸까? 물증은 없고 심증만 가득한 상태. 어쩌면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밤새 퀴즈를 푼다. 이렇게 하면 좋아하지 않을까? 저렇게 하면 관심을 주지 않을까?
마음의 크기가 이마에 새겨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은 약 38%입니다. 그러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그걸 모르니 혼자만 짐작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내 마음의 크기는 자꾸만 커졌다. 그렇게 서랍 속에는 보내지 못한 마음의 조각들이 떨어져 나와 쌓여만 갔다.
사랑하는 동안에도 상대가 날 정말 사랑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이렇게 잘 해주는 데 왜 돌아오는 건 겨우 이런 거지? 사랑하면 왜 연락이 없지? 사랑한다면서 왜? 사랑으로 채우고 싶던 마음이 질문으로 채워지자 점점 외로움과 미움으로 변해가곤 했다.
이 모든 건 크기의 장난이다.
그 사람의 생의 크기에 어떻게든 나의 삶을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 커져 버린 심장 한쪽을 욱여넣고 좀 더 품어주길 바라는 욕심. 애석하게도 가지고 있는 사랑의 부피, 넓이, 양은 각각 달라서, 사랑의 시소는 언제나 한쪽으로 기운다. 상대에게 아무리 평균을 맞춰 달라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는 가득 찬 것도 누군가에게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농담같은 일들이 발생한다.
코끼리는 하루 400kg이 넘는 양을 먹고 1번에 약 5.7l의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몸집이 큰 것들은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한다. 그 크기만큼 무언가를 채워야 하니까. 하지만 그건 코끼리니까 가능한 말이다. 토끼나 사슴은 그렇게 큰 양은 필요 없다. 다 제 양만큼 먹고 제 양만큼 에너지를 낸다. 크기의 다름은 부족과 같은 말이 아니다. 오히려 작은 것들이 에너지를 한곳에 모을 때 훨씬 더 강렬하다.
밀도 있는 것들은 크기가 작다. 진하고 선명하다.
그러니 오해하지마라.
타고난 크기는 다르지만 우리는 사랑이다.
크기가 농간을 부리더라도 어차피 우리는 사랑이다.
그렇게 서로의 틈새를 서성이고 있는 동안에도 분명, 사랑을 하고 있다.
@클레멘타인
ㅋ. 크기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