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Home을 떠나 다시 한국 Home으로

미국 귀향 열다섯 번째 날(Oct. 4th)

by Clifton Parker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10월까지는 최근의 귀향이야기를 먼저 쓰고 11월부터 2022년의 미국이야기를 마저 이어 쓰려합니다.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올 나의 "미국 집""에서 계속


미국에서 2년간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2년을 보낸 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잠시 돌아왔습니다.
"뉴욕 Home"에서 18일간 머물면서,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그날그날의 일들을 한 장의 슬라이드로 정리하곤 했습니다. 이 글은 아래 슬라이드에 담긴 것을 풀어쓴 것입니다.


'Home'이라는 단어는 'House'와는 달리 단순히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나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Home이라고 하면 함께 지냈던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담긴 곳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Home을 말할 때는 지역이 어디냐, 건물이 누구의 것이냐는 것보다는 누구와 함께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때때로 Home은 심지어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자체를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관점에서 나에게 있어서 미국 집이라면 내가 살았던, 이제는 썰렁해진 그 House는 아닌 것 같다. 나를 반겨주는 DyAnn과 Judy가 있는 곳, Owen과 Jean이 사는 곳, Mark와 Sarah가 Gavin, Grant를 키우고 있는 그 동네가 나의 미국 집이다. 그게 어디든 그들이 있는 곳이 바로 나의 US Home이다.

언제든 내가 찾아갈 수 있는 곳.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그리운 곳. 그 사람들이 바로 나의 집이다.


마지막날 이야기

나는 오늘 나의 미국 집을 떠난다. 언제나처럼 아직 Jean과 Owen이 일어나지 않은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마지막 아침 커피를 내려마시고 노트북은 켜지 않고 집 밖으로 나와 산책을 했다. 한참을 빙빙 돌다가 집으로 들어와 모든 것을 다시 하나하나씩 살펴보았다. 이번 여행이 긴 휴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지내보니 너무 짧았다. 지금 떠나면 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집을 돌아보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

(사진) 미국 귀향 마지막 이야기 - 마지막날 아침, 모두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 10월 초 뉴욕은 이미 꽤나 춥다. 나는 우리가 함께 TV를 보던 Living room에 혼자 한동안 서 있었다. 벽에는 Owen과 Jean의 가족의 역사가 걸려있다. 딸과 아들의 어릴 때 사진, 그들의 결혼사진과 최근 손자들 사진까지 이제는 익숙하다. 책장엔 Owen이 손자들과 가끔 한다는 게임과 Jean이 읽다 놔둔 책들... 가만히 보닌 그동안 몰랐었는데 커튼이 고리가 빠졌는지 좀 삐딱해 보인다. 다행히 내 키가 닿는 위치여서 조금 손을 봐서 제대로 해둔다. 키가 작은 Jean은 하기가 어려웠겠다.

세은이가 나왔던 신문을 나 보고 보란 듯이 꺼내 놓은 Owen의 방, 세탁실을 겸한 Jean의 방도 다시 가본다. 함께 목공을 했던 지하실, 쓰레기를 모아놓은 차고, 함께 고친 도어록 등등, 집을 떠나기 전에 모든 것을 눈에 담는다.

토요일이니 Owen & Jean은 친구들 모임이 있지만 오늘은 특별히 뒷마당 deck에 다 같이 모여 앉았다. Jean이 걸어둔 새 모이통에는 Robin, Cardinal, 딱따구리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모이를 먹고 있다. 2주 전 내가 선물로 가져온 풍경(風磬, Windchime)을 그 옆에 달려있다. 새들 구경하시면서 내 생각도 하시라고 내가 달았다.

Jean은 나에게 뉴욕시티에 있는 911 기념관 머그컵을 하나 선물로 주었다. 그들의 큰 딸 Clare는 911을 운 좋게 비켜간 사람 중 하나여서 이 컵은 큰 의미가 있는 물건이다. 정말 이걸 내가 가져가도 되는 걸까?

여전히 완료되지 않은 Owen의 점심 식당 리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Monte Carlo 식으로 주사위를 던져 결정하는 것을 좋아하던 Owen인데, 못다 한 식당 방문은 '다음 기회에'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꼭 다음에 같이 하기로.


나는 너무 할 말이 많아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외국에서 온 영어 서툰 이민자를 가족처럼 받아준 데에 대한 고마움, 헤어져 있던 2년 동안의 그리움 그리고 나이 많은 그들이 머지않아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두려움. 내 영어 실력으로는 그 모두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다 간신히 울먹거리며 한국말인지 영어인지도 모를 말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Jean은 2년 전에 나를 보내던 그 모습 그대로 웃어주었다.

"Come visit us again. You are so special to us as well."

차에 짐을 싣고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나는 그들을 꼭 안아주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히 잘 있으라고... 꼭 다시 만나러 오겠다고. 그렇게 나는 미국 집을 떠났다.

(사진) Own이 만든 식당 목록. 주사위를 던져가며 하나씩 지워나갔지만 다 채우지 못했다. 남은 것은 다음번에 '집'에 오면 마저 하기로 했다.

- Owen & Jean과 헤어지고 바로 Mark & Sarah의 집으로 향했다. 지난주 야구장에서 Sarah가 귀띔해 준 꼬맹이들이 좋아하는 한국 간식을 어제 잔뜩 사서 도착하자마자 박스채로 주었다. 한국 아저씨의 마지막 선물에 Grant는 인사도 잊은 채 바나나 우유를 냉장고에 집어넣기 바쁘다.

Mark네는 사실 오늘 선약이 있었지만 나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옷도 다 차려입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2주간 너무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는데 Sarah가 작은 에코백 하나를 건네준다. 그 안엔 아내가 좋아할 만한 미용 용품과 뉴욕 기념품이 들어있다. 심지어 그 에코백도 그냥 가방이 아니고 사라토가 경마장 가방이다. 이 선물뿐 아니라 Sarah가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세심하고, 그 마음 씀씀이가 무척이나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나에게 친절한 걸까?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걸까? 이제 떠나야 해서 되갚을 수도 없는 Mark & Sarah의 호의. 아내와 세은이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약속하고 소중히 받았다.

그리고 나는 약간 뻔뻔하게도 Gavin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네가 나중에 커서 진짜 양키스가 되면 너무 유명해져서 우리가 만날 수 없을지도 몰라. 지금 아저씨한테 미리 사인볼 하나를 줄 수 있니? 잘 간직할게."

Gavin의 약간 쭈뼛대지만 으쓱한 표정과 Mark의 엉뚱하면서 유쾌한 표정이 오버랩된다. 생전 처음 해보는 사인볼에 아이들은 좀 당황하긴 했지만 진짜 선수들처럼 사인을 해서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아저씨는 너희가 아무리 유명해져도 이 공을 절대 팔지 않을 거란다."

어느덧 비행기 시간이 되어 우리는 집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헤어져야 했다. 그리고 차에 탄 내가 사라질 때까지 집 앞에서 손을 흔들며 바라봐 주는 모습은 2년 전과 똑같았다. 그들과의 추억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항상 같을 것이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익숙했지만 모두를 두고 나 혼자 떠나는 것은 낯설고 외로웠다. 이젠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 그들을 한동안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한없이 우울해졌다.

(사진) 미국 집 거실 모습. 우리 셋은 밤마다 이곳에서 함께 TV를 봤다. Jean은 Owen이 신발을 신고 소파에 눕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 공항에 도착해 모두에게 문자를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집을 떠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일정이다.

긴 비행시간 내내 생각나는 내 마음속 두 개의 집. 이번 귀향을 통해 그리움을 해소한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진한 향의 그리움으로 덧 씌워진 듯하여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한국 집의 첫날 이야기

미국을 떠난 비행기는 인천 공항에 무사히 착륙하여 나의 '귀향'은 마무리가 되었다. 도착해 보니 새벽 4시 30분이다. 서울로 가는 버스조차 없는 시간이라 1시간 넘게 기다리며 Jean에게 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무사 귀환을 알렸다. 즉시 온 답장에 순간 울컥했다. "잘 가서 다행이구나. 피곤하고 슬퍼 보이네. 보고 싶다."

(왼쪽) 한국 도착후 내가 받아온 선물에 놀라는 아내와 세은이 (오른쪽) 세은이가 보냈던 선물 목록. 정말 별것 아닌 평범한 과자들이다.

- 집에 돌아와 아내와 세은이에게 미국에서 온 선물을 잔뜩 풀어놓았다. 대부분 선물 받은 것이고 내가 산건 거의 없다. 세은이가 먹고 싶다는 과자 리스트는 전부 DyAnn이 선물한 것이고 아내의 미용세트는 Sarah가 보낸 것이니까. 아침 일찍 일어난 세은이와 아내에게 이 선물에 얽힌 사연들과 미국 이웃들의 소식을 전해주니, 그들의 친절함과 따뜻한 마음에 놀라고 모두가 안녕함에 감사해했다. 다음엔 다 같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한국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


- 나는 2년 전 미국을 떠나 한국에 있는 동안 그들과 멀어지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우리 가족의 생활을 담은 한 장의 PPT와 함께 이메일을 주고받아 왔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것도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브런치 첫 글을 다시 읽어보며 내 마음이, 그들의 마음 역시 2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에 뿌듯하고 놀랍기도 하다.

다음 기회는 또 언제일까? 그리운 나의 집으로 되돌아갈 그날. 그날을 기다리며 나의 오늘을 잘 준비하며 지내야겠다. 다음에 갔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나의 귀향 여향 PPT를 완성해서 그들에게 보냈다. 늘 그랬던 것처럼...그렇게 나는 한국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마음의 일부를 미국 집에 남겨둔 채.


그 후의 이야기

미국에 다녀온 후 며칠간 Owen과 Jean으로부터 짧은 이메일 몇 통을 받았다. 집에서 함께 지내며 있었던 작은 일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나에게 알려주었다.

너무나 애틋한 그들. 나의 US mom & dad, Jean & Owen.

(왼쪽) 다람쥐가 갉아멱은 화분속 양배추. 줄기부분만 남아있다. (오른쪽) 또 다시 생긴 다람쥐 구멍

I opened the front door today to check my seasonal plant arrangement next to the door and the damn chipmunks have eaten my cabbage.

I went to the side of the house to see how my new grass was doing and look what I found.....

(아침에 앞문 열고 나가서 화분을 보니까 이 망할 다람쥐가 내 양배추를 다 뜯어먹었어. 그리고 집 옆쪽으로 가서 우리가 잔디 씨 뿌렸던 곳을 봤더니만....)

(사진) Jean이 보내준 커튼 사진

Did you fix my curtain in the TV room??? if so, HOW?

I knew it must be you re. the curtains (I told Judy that too)

I still do not understand what you did... the small hole that the hook goes into, was broken.... Did you take all the hooks off and move the broken ring?????

THANK you for fixing the curtains

Every evening that I sat watching TV I would see that broken ring and vow to fix it "tomorrow"

We miss you

(네가 TV룸에 커튼 고쳐놓고 갔니? 어떻게 했어? 틀림없이 네가 했겠지? Judy한테도 얘기했어. 어떻게 했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그거 고리 꽂는 구멍이 부러졌었는데... 전부 다 빼서 한쪽으로 옮긴 거니? 고쳐줘서 고맙구나. 매일 밤 TV 보면서 "내일은 고쳐야지'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보고 싶구나.)


Say hello to your wife and daughter.

I expect your daughter was pleased or at least satisfied with you having fulfilled her request list.

We miss your presence, your helpfulness and your companionship.

Perhaps one day we will get to benefit from all of that again.

(아내와 아이에게 안부 전해주렴. 네가 선물 목록을 다 채웠으니 아마도 아이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만족정도는 하겠지. 우리는 너의 존재가, 우리와 함께 하고 도와주려 했던 너의 마음이 매우 그립구나. 언젠가 우리가 다시 한번 그런 행운이 있다면 좋겠다.)


내가 미국에 가기 전, 아내는 Trader Joe's에서 파는 미니 토트백을 사다 달라고 했었다. 한국엔 매장이 없는 Trader Joe's의 가방은 한국 여성들에게는 '나 미국에 좀 살아봤어'라는 일종의 전리품 같은 것이다. 그러니 미국 생활까지 했던 아내니까, 고작 $5도 안 하는 신상 쇼핑백을 선물로 사다 달라고 하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름 튼튼하게 잘 만들어서 미국 내에서도 인기가 있다. 또한 이건 단순한 마트 쇼핑백이 아니고 Trader Joe's에 다닐 정도라는 지위의 상징, Symbol of status 이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와서 보니 아내가 원하는 미니백은 봄에만 판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심 포기하고 그저 사람들과의 대화 주제로 얘기하고 다녔다. 한국에는 매장이 없는 미국 마트의 쇼핑백이 한국에서 인기라는 얘기는 미국 사람들에겐 뭔가 믿기 어려운 신기한 일이니까.

내가 귀향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하러 찾아갔을 때, Sarah는 동네 Trader Joe's에서 핼러윈 특별판 미니 토트백을 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매장에 풀리면 사서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아내의 소원은 이렇게 까지 할 정도로 간절한 것은 아니지만 Sarah의 세심함은 우리의 예상을 항상 뛰어넘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호의를 소중하게 받겠다고 했다. 나는 그저 옆집에 2년간 살았던 사람일 뿐인데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동안 한국에서 이사 다니면서 이런 인연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심지어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이웃과 이렇게 지낸다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

(사진) Sarah가 우편으로 서울까지 보내준 Trader Joe's의 미니 토트백. 한국엔 없는 것이고 미국에서도 핼러윈에만 특별히 파는 것이다.

Are you home? We had such a great time with you last week and we miss you already.

Sarah got you 4 Trader Joe’s Halloween bags today.

If you send me your address, we will ship them to you (see photo).

Talk to you soon

(잘 갔어? 지난주 함께해서 너무 즐거웠어. 벌써 보고 싶다. Sarah가 전에 얘기했던 핼러윈 Trader Joe's 백을 오늘 사 왔어. 주소 보내주면 택배로 보내줄게. 또 얘기해)


보름쯤 지나 소포를 받은 아내는 "이건 쓸 수 없는 거야. 아까워서 쓸 수 없어"라며 집에 고이 모셔두었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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