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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히르 Mar 29. 2017

#08, 아름다워라, 미나미아와선라인(南阿波サンライン)

태양이 뜨는 길, 태양의 길을 따라 (for #24)

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맑음


- 31.4km - (ふれあいの宿) 遊遊NASA / 유유나사 후레아이노나도


태평양을 품다


밤새 뒤척이며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일기예보에선 오늘도 역시 맑을 거랜다.


55번 국도가 어지간히 싫었을까. 혼자라서 기세좋게 미나미아와선라인으로 들어선다. 南阿波サンライン(sun line)이라니, 도쿠시마 남쪽의 태양의 길 쯤 되시겠다.


도쿠시마부터 따라 온, 아니 내가 따라 온 55번 국도는 땅끝 무로토(室戶)까지, 무로토를 지나서도 한동안 이어지는 것 같다. 미나미아와선라인도 무기쵸(牟岐町)의 JR 무기역에서 55번 국도와 만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그 전까지는 15킬로 이상 태양을 따라 걷는 길이다.


미나미아와선라인을 타면 55번 국도를 타고 가는 것보다 3킬로 이상 거리가 늘어나는 데도 단지 바다와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에 갈래길에서 주저없이 왼쪽을 택한다. 사전 정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근데 이게 너무 탁월한 선택이었으니, 혼자 두면 스스로 잘 하는, 그러나 누가 옆에 있으면 해주길 바라고 아무 것도 안하는 막내기질이 이럴 때도 드러난다.


구글맵에서도 한사코 55번 국도로만 안내해서 거리를 가늠할 수 없기에 미나미아와선라인의 한가운데서 양쪽 방향으로 거리를 재봐야 했다. 총 31.4킬로 중 8시 25분까지 9.4킬로를 걸었다. 대박이다.

혼자라서 더 부지런해진 나, 6시 55분에 센바터널(千羽トンネル)에 들어선다. 나중에 안 거지만 센바(千羽), 천 개의 날개라는 이름은 도로 왼쪽 해안 절벽의 모양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선지 그 큰 도로에 아루키헨로는 나 혼자 뿐이다. 자동차도 간간이 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무섭지는 않다.


터널을 지나 길을 따라 걷다보면 중간중간 총 4개의 전망대가 나온다. 제1전망대에서는 센바카이가이(千羽海崖) 넘어 해안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나무에 가려진 센바카이가이(千羽海崖), 높이 250미터, 길이 2킬로에 달한다는 해안 절벽의 모습이 궁금하지만 배를 타지 않고서는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250미터 산줄기가 폭포수처럼 해안으로 떨어지는 급사면 위로 교각길을 걷노라면 아찔하기도 한 데 조금 더 가다보니 키가 훤칠하게 큰 야자수가 남국의 정취도 물씬 풍기고 그 고갯길을 넘어 S라인 곡선이 구절양장으로 이어진다.


4전망대에서 간식을 먹고 화장실을 보고 나니 완만한 내리막길, 10시반에 벌써 55번 국도와 만난다. 오늘 일정의 절반 이상을 걸은 셈이다. 욕심을 부려 7킬로 쯤 더 간 하루루테이로 숙소를 예약했어도 괜찮았겠다.

55번 국도를 만나는 곳, JR 무기선 무기역(牟岐駅) 주변은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거리도 한산하다.


마을을 벗어나서 55번 국도를 따라 걷는 길도 이동차량이 많지 않으니 걸을 만은 한데 이후로 쭉 터널, 터널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터널 터널 터널!


야사카 터널(八坂トンネル) 210미터를 지나면 우치즈마해안(內妻海岸) 마을이다. 안내책자의 오헨로 숙소가 몰려있는 곳으로 야사카민슈쿠, 시라키야, 우치즈마소를 지난다. 그러고는 또 우치즈마터널(內妻トンネル) 253미터, 연이어지는 후루에터널(古江トンネル) 144미터, 또 다시 후쿠라터널(福良トンネル) 265미터를 지나니 미야마소(海山荘)다.


그러고도 사바세터널(鯖瀬トンネル) 98미터, 오즈나터널(大砂トンネル) 198미터가 연이어 아루키헨로를 삼키려 대기하고 있다.

사바세터널을 나와 오즈나터널과의 사이에 서면 왼쪽으로 바다가 보이고, 수상레저체험이라도 겸하는 듯한 업체가 보이길래 구글맵을 확인해보니 오헨로 지도책에는 없는 민슈쿠오즈나소(民宿大砂荘)다. 시설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위치는 딱 기가 막히게 자리했다.


오즈나터널을 지나서 바로 55번 국도상에 역시 지도책에는 없는 민슈쿠오즈나(民宿大砂)가 있다. 분명히 지척이긴 해도 아까의 오즈나소와는 다른 집이다. 빨간 지붕이 인상적인데 네 개나 되는 자판기에 맥주는 없어서 패스.


오즈나(大砂), 이름처럼 널찍한 백사장이 펼쳐진다.

일본 영화 '안경'에서 모타이 마사코씨가 사쿠라상으로 분해 이름도 동작도 요상한 메르시체조를 만들고 아침마다 모두 함께 체조로 하루를 시작하는 슬로우 무비, 그 촬영지가 가고시마 인근 요론섬이라고 들었는 데 오즈나 해변은 영화 속에서 체조를 하는 그 백사장과 닮아 있다.

시코쿠에서 처음 밟아보는 모래사장이라 한없이 거닐어보고 싶지만 걷는 게 일이다보니 최대한 느릿느릿 지나가는 걸로 대신한다.


50분쯤 더 갔을까, 그나마 짧은 오타터널(太田トンネル) 94미터를 지나면 왼쪽으로 가이요초(海陽町), 제법 큰 마을이 자리한다. 그리고 아직 1시를 좀 넘긴 시각일 뿐인 데 지도상으로 가이요초의 가이후강을 건너면 오늘의 숙소, 유유나사 후레아이노야도가 지척이다. 7시간 가까이 걸었으니 당연하지만 2시에 체크인이 될 지 모르겠다.


체크인이 가능해도 저녁식사까지는 한참일 터,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다.

삼각김밥에 아사히맥주, 한국에서 못 본 클리어 아사히, 당질 제로, 알콜함량 6%다. 30킬로 가까이 걸은 후에 마시는 맥주가 참 달다.


이왕 온 김에 오헨로미치의 보너스는 못 마셔본 맥주로 하자


숙소를 지나칠 뻔 했다.

아니 일이백 미터 쯤은 지나쳤다가 이미 나왔어야 하는 데 하면서 다시 되돌아오는 길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보니 아주 생소하게 생긴 간판에 'ふれあいの宿 遊遊NASA'라 되어 있다.

헐~ 저건 무슨 뜻일까.

우리 서로 맞잡고 탱자탱자 놀아보지 않을래? 정돈가.

무로토아난해안국정공원안에 있는 콘도미니엄 쯤 될까.


들어가는 길이 길다. 자동차 아닌 걸어서 오르는 사람은 나 혼자뿐. 순례자 숙소 맞나 싶다.


입구는 헷갈렸어도 ふれあいの宿 遊遊NASA, 가성비 최고다.

1층 라운지도 아늑하고, 방도 깔끔하니 태평양 조망에, 무엇보다 온천욕, 큰 여탕을 혼자 차지해선 오랜만에 발차기로 근질근질한 몸도 풀고, 방의 냉장고는 가격표가 무서워 건들지 못했지만 저녁식사가 환상인 관계로 시야시 잘 된 메가 글라스에 생맥주까지 하루의 피로가 싹 달아난다.

오늘 하루 잘 걷고 건강하게 보냈다는게 기쁘다.

낼 아침에는 하루동안 휴식을 준 카메라로 방 안에서 일출이라도 찍어볼 일이다.


태평양에서 떠오르는 일출이라니, 기대된다.



유유나사(2식 포함) 8250엔

생맥주 710엔

점심 490엔

세탁 200엔


총 9650엔

이동거리 31.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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