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사랑방, 원스카페
{EP21}
4장. 성수동 사람
성수스러운 맛집 시리즈 -3
사장님
달고나 라테랑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잔이요~
성수는 카페거리로 유명하다. 대형 베이커리 카페, 노출 콘크리트 카페, 빈티지한 감성, 라테가 맛있는 카페 등 각양각색의 카페가 참 많기도 많다. 내가 성수동에 산다고 하면 지인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제일 좋았던 카페를 추천해 달라고 묻지만,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 내가 즐겨 찾는 카페는 2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파는 자그마한 동네 카페다.
원스는 겉에서 보면 기대가 전혀 되지 않는 동네 커피집 그 자체다. 원래 휴대폰 대리점이 있던 자리였는데, 거의 폐허에 가깝던 자리여서, 처음에 카페가 들어서는 걸 보면서 한편으로 걱정하기도 했다. 성수동에 카페가 워낙 많다 보니, 치열한 경쟁에서 망하면 어떡할까 괜히 오지랖을 부린 것이다. 그런데 원스커피는 성수 구길 사랑방이 되었다.
원스카페에 가면 꼭 달고나 라테를 마신다. 카를로와 함께 할 때면 달로나 라테 아이스 하나와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하나 시킨다. 그리고 사장님에게 소심하지만 순박해 보이는 목소리로 ‘달고나 좀 많이 주세요 헤헤’라고 한다. 어찌나 자주 갔던지 이젠 사장님이 먼저 '달고나 많이 줘요?'라고 물어봐주신다.
원스의 달고나 라테는 베이킹소다를 써서 만들어 속이 비어있다. 문방구에서 파는 100원짜리 불량식품 달고나를 대충 부셔주는 다른 카페와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말이다. 와작와작이 아니라 ‘파삭파삭한’이다. 달고나는 서둘러 먹지 않으면 금방 라테 속으로 녹아버리기 때문에 빠르게 먹는 것이 관건이다.
가끔 달고나가 부족하다 싶으면 카를로는 나에게 물어본다. ‘달고나 더 달라고 할까?’ 그럼 나는 가보라고 그를 부추긴다. 그가 쭈뼛쭈뼛 달고나를 더 주실 수 있느냐고 여쭤보면 사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더 줄까요?‘라고 하며 달고나를 몇 개 더 올려주신다. 그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다. 달고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재료를 아끼지 않고 음료를 만드는지에 대하여.
처음엔 저렴한 가격에 부담 없이 찾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사장님 때문에 간다. 갈 때마다 항상 따뜻한 인상의 사장님이 기분 좋게 맞아주신다. 아마 원스커피가 잘 되는 이유는 사장님 덕분일 것이다.
물론 동네 카페 답지 않게 트렌디한 메뉴와 트렌디셔널한 메뉴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점도 한 몫한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쌍화탕은 기본이고, 심지어 맛있는 디카페인 커피까지 판다. 하도 카를로와 자주 찾다 보니까, 나 혼자 카페에 들를 때면 찾을 때면 사장님은 '오늘은 왜 같이 안 왔어요~'라고 물어봐 주신다. 어느 날은 '게임하고 온대요'라고 대답했다가 남자들이 그렇지 뭐라고 답해주셔서 빵 터진 적이 있다.
퇴근 후 원스카페에 가면 늘 오시는 아저씨 손님 한분이 계신다. 그분은 마치 거북이처럼 천천히 커피 한잔을 드신다. 놀랍게도 스마트폰이나 책도 없이, 커피 그 자체에 집중하신다. 나중에 사장님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분은 거의 매일 오시는 손님인데, 어느 날 한잔에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5천 원을 두고 가셨다고 한다. 이런 공간을 만들어준 게 고맙다며 거스름돈을 그냥 받아달라고 하신 모양이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기력이 쇠할 땐 원스에 가서 매콤 쌉쌀 달콤한 쌍화탕을 마시며 몸을 데폈고, 브런치북 마감일이 다가왔을 땐 카페 구석에 틀어박혀 달고나 라테와 요거트 스무디를 흡입하며 창작 활동에 땔감을 부었다. 동생이 성수에 놀러 왔을 때는 원스의 여름 특선 메뉴인 국산 콩가루가 올라간 팥빙수를 함께 나눠먹었다.
원래 작업을 위해서는 주로 스타벅스를 갔다. 대학생 때부터 마치 관성처럼 노트북을 이용한 일을 하기 위해서 스타벅스를 찾았다. 그런데 원스에 빠지고 난 뒤부터는, 스벅에 갈 이유가 없어졌다. 성수역 스타벅스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왁자지껄함과 테이크 아웃 손님들의 어수선함이 있었지만, 원스카페는 이미 알던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있다. 스벅 골드 회원이었던 나는 얼마 전 그린회원으로 급락했는데 아쉽지 않았다. 남들 다 가는 스벅 말고 나만의 아지트가 생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내심 좋았다.
가로수길에 걸그룹 출신인 연예인이 운영한다는 카페는 백색 조명이 심하게 밝다. 그래서 갈 때마다 회사에 치여 꼬질꼬질해진 나의 모습이 무대 속 조명처럼 하이라이트 되는 것 같아서 싫었다. 성수 구길에 생긴 대형 카페는 아메리카노가 6천 원이어서 방문을 포기했다(4,500원 이상의 커피는 안 마시는 병이 있다) 서울 숲에 유명한 카페는 인스타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카메라에 걸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게 싫었다.
내가 바라는 카페라는 공간은 원스카페 같은 곳이 아닐까 싶다. 차려입고 공간을 즐기러 가는 곳이라기보다는, 편하게 맛있는 음료를 먹고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편한 공간. 사장님은 우리를 기억해 주시는 친절함이 부담스럽기보다는 기분 좋다. 마치 입에서 파삭하고 녹아버리는 달고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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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날것이 모여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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