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 Oct 20. 2023

닭칼 하나랑 들깨옹심이 하나요~!

성수에 살아서 다행이야, 이랑칼국수

{EP20}

 

4장. 성수동 사람
성수스러운 맛집 시리즈 -2


사장님
여기 닭칼 하나랑 들깨옹심이 하나요~


이랑칼국수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식당은 '쓰러져 가는 노포 감성'이다. 이랑칼국수는 이와 정 반대의 외관을 가졌다. 깔끔한 신식 인테리어로, 얼핏 봐서는 다소 무난하고 평범한 식당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집 가는 길에 마주쳐도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유튜브 맛집 영상에서 이랑 칼국수가 튀어나왔다. 동네 밥집이라고 생각했던 식당이, 인터넷 세상 유명 맛집이었다니.. 알고 보니 내 친구가 슈퍼 히어로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기분과 비슷할까. 닭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닭칼국수가 단돈 만천 원이니 실패해도 본전이다 생각하며 가봤는데, 이게 웬걸? 긴말 필요 없다. 이제 저녁에 뭘 먹을지 모르겠을 때 이랑칼국수를 간다.

 

나의 사랑 닭칼.


이 집에 정말 남는 게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은 바로 식전 보리밥이다. 메뉴가 나오기 전에, 두 숟가락 정도 분량의 보리밥을 주신다. 거기에 반찬으로 나오는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비벼 먹으면 열무 비빔밥이 입맛을 돋운다. 더 엄청난 점은! 정식 메뉴에 9천 원짜리 열무 비빔밥이 있다는 점이다. 정식 메뉴에 있는 메뉴를 애피타이저 메뉴로 맛 보여준다는 점이 이 집의 강력한 Kick이다.


찐한 들깨향이 일품. 술 마시고 들깨옹심이 먹으면.. 술이 덜 깨~


카를로와 둘이 가면 나는 닭 한 마리 칼국수, 카를로는 들깨 옹심이를 주문한다. 닭칼국수는 작은 닭이 한 마리 통째로 들어가 있다. 가게에서 직접 반죽한 야들야들한 생면 칼국수를 한입 즐기고, 담백한 닭고기를 겨자 소스에 찍어서 두 입 즐긴다. 광화문에 미국 대사가 즐겨 찾았다는 닭 한 마리 집도 가보았지만, 이랑칼국수가 몇 수 위다. 일단 닭고기 양이 압도적으로 많고, 겨자 소스의 감칠맛이 엄청나다. 


나만의 소소한 팁을 전하자면, 닭칼국수를 먹기 전, 칼국수 면을 한 젓가락 떠서 들깨 옹심이 국물에 퐁당 적셔 먹는 것이다. 그러면 야들야들한 특유의 칼국수를 들깨로도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이랑칼국수에서 파티


주변 회사원들 점심 메뉴로 인기가 좋다는데, 감사한 점은 저녁까지도 같은 가격에 판매한다는 것이다 .아마 강남이었다면 분명 점심에 만천 원에 팔다가 저녁에는 가격을 올렸을 것이다. 이랑 칼국수에서는 만 원대 닭 한 마리 칼국수가 종일이다. 먹을 때마다 정말 경건하게 감사한 맘이 든다. 


배불리 다 먹었다면, 기분 좋게 결제를 마치고 커피 한잔을 뽑는다. 요새는 100원을 넣지 않아도 후식 커피를 즐길 수 있어서 참 좋다. 나 어릴 때만 해도 100원 없으면 못 먹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분명 배가 터질 것 같지만, 은은한 헤이즐넛 향과 달큰한 향이 가득한 커피를 한 손에 쥐고 썰렁한 가을 날씨를 느끼며 산책을 하면, 더 바랄 것이 없이 행복하다. ‘그래 이 맛에 성수 산다~’를 세 번 정도 얘기를 하면 그날의 산책이 끝난다. 






이전 에피소드 보러 가기 


{EP1} 저 성수동에서 자취해요 

{EP2} 구집자,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자

{EP3} 가계약금 반환 사건

{EP4} 25만 원짜리 월세방의 비밀

{EP5} 집 밖 화장실이 괜찮았던 이유


{EP6} 나의 밥을 뺏어 먹는 남자

{EP7} 꽤나 실용적인 죽음의 쓸모

{EP8} 엄마가 요즘 들어 부쩍 많이 하는 말

{EP9} 싸구려 월세방이 내게 준 교훈

{EP10} 집을 꾸미고 살아야 하는 이유


{EP11} 서울 상경, 그 저평가된 행위에 대하여.

{EP12} 좋아하는 서울은 동묘

{EP13} 우리 마음은 어쩌면 사포일지 몰라

{EP14} 그래 나 친구 없다! 20년 만의 인정

{EP15} 카톡 친구를 다 지웠더니 생긴 일

{EP16} 무의식이 대답해 준 지갑 잃어버린 이유

{EP17} 생활비 80만원으로 먹고 사는 비결


{EP18} 힙한 동네 성수에 대한 오해

{EP19} 생고기 2인분이랑 치즈볶음밥 주세요~!




ps. 

날것이 모여있는 

인스타도 놀러 오세요  @solusis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