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작된 공사. 가림막과 비계를 설치한 날이니 정확히는 공사를 위한 공사가 시작된 날이라고 해야 하겠다. 가림막은 분진과 소음의 유출을 조금이나마 막아 줄 것이고, 비계는 일하시는 분들이 수많은(대략 만 장 정도 된다고 한다) 기와를 내리시는 데 사용된다.
그래 봐야 3미터 정도의 높이에 설치된 비계인데도, 올라가 있자니 말 그대로 오금이 저려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높은 곳에서도 힘든 일을 척척해내시는 분들께 경의를... 늦어져도 좋으니 부디 공사 기간 내내 아무도 다치지 않으시기를.
일하시는 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난 조용한 현장에서 한참을 머물고 나서는, 괜히 대문의 고리를 꼬옥 걸어 보았다. 이제 이 집의 대문도 이런 역할을 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다'라는 느낌이 어느 때보다 강했던 하루.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찾아 북촌 골목을 쏘다니던 그 겨울날 이래 가장 마음이 편한 날이다. 공사하시는 분들께 집을 오롯이 맡기고 나니 시점이 갑자기 일인칭에서 삼인칭으로 바뀌어버린 기분이라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