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시작
철거 공사가 마무리되면 더 이상 창문도, 벽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다보니 공사를 시작한 뒤로는 마당에 어지럽게 쌓여있던 화분도, 마구잡이로 덧대어 놓았던 벽돌도, 밉기만 했던 벽지도 모두 애틋하기만 하다. 잊힐 기억,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풍경이다.
동쪽으로는 대청을, 남쪽으로는 부엌을 면한, 집의 가장 조용하고 따듯한 곳에 위치한 이 공간은 안방이다. 여기 앉으면 작은 창을 통해 마당 전체를 둘러볼 수 있으면서도, 대문까지 시야가 트여있지는 않아 어느 정도의 사생활이 보장된다. 집의 구조상 아마 지어지던 순간부터 쉬지 않고 안방이었을 텐데, 전 집주인 역시 침실을 이 자리에 두었고, 서쪽으로는 덧방을 달아 작은 화장실을 놓았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이곳에서 언덕 밑으로 흐르던 삼청동천의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덧방이 쳐지기 전 창을 가득 채웠을 인왕의 모습은 어땠을까. 삼청동(三淸洞)의 이름이 삼청정(三淸町)이었던 왜정 때부터 지금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방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또 마무리했을까.
집 수선이 끝나면, 안방은 “다이닝”이라는 현대식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더 이상 이곳에 누군가 몸을 뉘이지는 않겠지만, 창에는 인왕이 다시 한가득 담기게 될 것이고, 키가 훌쩍 커져버린 상 위에는 맛있는 음식이 놓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운 이야기는 지금까지 쌓인 것보다도 훨씬 더 높게 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