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하당 Jun 08. 2022

우리 집 머리가 가벼워진 날

기와 내리기

지붕 위를 떠나게 된 기와(2022), Pentax MX/Kentmere 400

드디어 기와 내리기가 시작되었다. 


한옥의 경우 지붕 위를 다양한 용도의 흙으로 덮는데(보토, 강회, 알매흙, 아구토, 홍두깨흙 등), 그렇기에 그 위에 올라있는 기와를 내리게 되면 상상하기 어려운 양의 흙먼지가 날리게 된다. 이웃들에게 가해지는 민폐도 민폐지만, 일하시는 분들의 고충은 형언할 수 없는 수준. 방진마스크를 착용을 해도 더운 날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분진을 모두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 옛날 기와의 다양하고, 또 아름다운 무늬에 매혹되어 수키와를 수십 장 챙겨달라 부탁을 드렸다. 현장에서 기왓장 한 장 나르지 않는 입장이라 대단히 송구했지만, 염치 불고하고 여러 차례 머리를 조아린다. 나중에 정원에도 사용하고, 한 장 정도는 잘 닦아 책장에도 놓을 생각이다.      

반반(半半)(2022), Pentax MX/Kentmere 400

단열과 방풍을 위해 작은 창이 나있던 집의 하늘이 열리자 방안으로, 그리고 내 마음으로도 한순간에 빛이 왈칵 쏟아져 들어온다. 어지럽게  얽혀있는 전선과, 아무렇게나 튀어나온 산자(橵子), 방 한가득 쌓여있는 흙을 보고 있자면 때때로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집에 빛이 가득 들이치니 그저 좋기만 하다.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지붕(2022), Pentax MX/Kentmere 400

일견  상태가 좋아 보이지만 부연(附椽, 덧달아낸 처마), 평고대(平高臺, 지붕의 곡을 만들기 위한 부재), 연함(椽檻, 수키와와 평고대 사이를 메우기 위한 부재) 등은 푹 썩어 만지기만 해도 바스러져 버린다. 워낙 연한 나무를 쓰는 부분이기도 하고,  목재의 두께가 얇은 데다가, 외부로 노출되기까지 하는 부분이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집의 경우 천장이 노출된 부분과 가려져 있던 부분에 다른 두께의 서까래가 사용되었는데, 그 시대 집장사들의 실용주의라면 실용주의이고, 상술이라면 상술이다. 궁금해지는 건, 1940년대 이 집을 처음으로 분양받던 집주인도 이걸 알았을까?  


집을 짓는 데 있어서 현장에서 건축주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 같은 건 없다. 쓸데없이 빈번하게 현장을 찾아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 가끔씩 찾아가게 되면 빈손으로 가지 말고 시원한 음료수라도 양손 가득 사 들고 가는 것, 그리고 그분들의 큰 노고에 인색함 없이 감사를 표하는 것. 아마 이 정도가 건축주의 역할 아닐까. 현장에 계신 분 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공사가 시작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2021.05.21. 삼청동 한옥 매매 계약

2021.09.06. 설계계약: 선한공간연구소

2021.10.08. 기본설계 시작

2021.12.03. 기본설계 종료

2021.12.21. 실시설계 시작

2022.04.12. 시공계약: 서울한옥 by 젤코바코리아

2022.04.22. 실시설계 종료

2022.04.23. 공사 시작

2022.05.21. 철거 공사 전 긴급회의

2022.05.22. 지붕 철거

이전 03화 결국 또 마음의 문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