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종료
철거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집이 지어진 이래 아마 처음으로 빛과 바람을 만나게 되었을 공간들. 지붕 위로 하늘이 열리고, 답답해 보이던 벽이 허물어지자 내 마음에도 문득 선듯한 바람이 든다.
하지만 적나라하게 드러난 목(木) 부재를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심란하기도 하다. 서까래나 그 주변의 부재들은 교체해 버리면 될 테지만, 이 기둥을 대체 어떻게 고쳐 쓰겠다는 것인지. 이미 책으로 다른 집의 수리 과정을 충분히 봐왔기에, 머리로는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어도, 마음으로는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지금이라도 모두 허물어 내고 새로 지어야 하는 게 아닌지, 과연 이 집을 고쳐서 쓰는 게 맞는지에 대해 줄곧 고민한다. 면적은 좀 줄어들겠지만, 우선 공사하기는 훨씬 편할 텐데. 동선도 더 자연스럽게 짜일 테고, 많이 상해버린 목재를 고쳐 쓰느라 이렇게 마음 쓸 일도 없을 텐데.
하지만 (아마도) 가능하면 티 없이 맑게 살아내고 싶어도 결코 그렇게 풀리지 않는 게 삶인 것처럼, 그리고 매일같이 쌓여가는 후회와 부끄러움조차 나를 이뤄내는 일부인 것처럼, 어쩌면 이 집이 보내온 지난 시간 역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내 마음에 들이찬다.
겹겹이 쌓여있는 이 집의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갈 수야 없겠지만, 누군가가 설레는 마음으로 그려 놓았을 바탕 위에 매일같이 새로운 기억을 더해가는 것, 그 과정을 통해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하는 편이 새하얀 도화지에 단번에 멋진 그림을 그려내는 것보다 나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오래된 장소나 물건은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시간의 흐름"을 눈앞에 보여준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닳아 낡아가는 그 모습은 간혹 마음에 심심한 위안마저 주니- 너 홀로 늙어가는 게 아니다, 너만 완벽하지 못한 게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낡아가도 괜찮다- 아마 오래된 골목이, 또 낡아 빠진 동네가 가지는 힘은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공을 들여 고쳐나가는 이 집 역시 내게 그런 위안이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