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스트레스에 지쳐가는가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 중의 하나는 보고서 작성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회사를 20년간 다녔어도 보고서는 늘 가슴을 짓누르는 고민거리 중의 하나였다. 신입사원 시절 부서 전원을 (물론 모두 선배다) 대상으로 세미나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OHP(Over-Head Projector)라는 장치 위에, 인쇄가 된 투명한 필름 용지를 올려놓으며 발표를 했다. 여러 명이 발표를 하느라, 주어진 시간은 10분 남짓에 단 1장 발표였다. 지금처럼 파워포인트 여러 장을 넘기는 게 아니라서, 그 한 장에 발표 내용을 훌륭하게 요약해야 했다. 창의를 넘어 거의 예술에 가까운 문구와 그림을 고민해야 했기에, 밤을 꼴딱 새우고서야 겨우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 것 아닌 발표였지만, 그때는 온 열정을 쏟았다.
한때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유행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에 반론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이것을 만약 직장에 적용해 본다면, 주말 빼고 대략 1년 250일 동안 / 하루 반나절 4시간씩 / 10년이 걸리는 시간이다. 하루 종일 8시간 내내 한다면 5년으로 단축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대략 10년 내외의 시간이면 회사에서 그 업무의 전문가로 인정을 받는다는 얘기다. 내 경우도 대략 비슷한 시간이 흘러 간부(과장) 직급에 올랐다. 보고서 1장 작성에 밤을 새우던 신입사원도, 10년이 지나면 자신의 업무 영역을 가진 책임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혹시 직장인으로 몇 년 안 지났다면, 보고서를 잘 쓰지 못한다고 너무 자책하지 말자.
보고서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간단하게 이메일로 보고하는 경우도 있고, 워드나 파워포인트 같은 오피스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결재를 받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한다. 보고의 형태가 어떤 것이든, 보고서는 일단 쉬워야 한다. 흔히 전문적인 내용이 많으면 보고서의 질이 높아지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직장이라면 논문 수준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보고 받는 직급이 높을수록 더 쉬운 용어를 써야 한다. 우리나라의 신문이 중학생 수준의 눈높이를 따르는 것처럼, 보고서도 제일 막내 사원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작성해야 한다. 꼭 필요한 전문적인 내용은 따로 별첨을 하거나, 추후 별도 자료를 제공하는 게 낫다. 보고서를 리뷰할 때는 나보다 낮은 직급의 후배가 이해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게 좋다.
이메일은 보고서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간략하게 작성하지만, 읽는 사람이 스크롤을 최대한 적게 하고 내용을 빨리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메일의 제일 처음에 3줄 이내로 전체 내용을 요약해 주고, 본문에도 가능한 도표와 그림을 활용하되 1~2개 핵심 내용만 표현해야 한다. 흔히 짧은 글이 더 쉬운 줄로 알고 있으나, 진정한 고수는 요약을 어떻게 잘 하느냐로 승부를 낸다. 워드나 파워포인트는 시중에 나보다 더 전문가들이 펴낸 책이 많으니, 굳이 따로 더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공통적인 원칙은 주제별로 발표 항목은 3개 이내여야 하고, 색상도 3가지 이상을 쓰지 않는 게 좋다. 일반 상식과 달리 화려하고 많은 내용은 오히려 이해가 어렵다.
사실 내가 가장 강조할 점은 '완벽한 보고서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장님을 통과한 보고서가 부장님 눈에는 전혀 안들 수도 있다. 텍스트 위주의 간략한 보고를 좋아하는 분도 있고, 그림과 도표 위주의 설명을 좋아하는 분도 있다. 결국 보고 받는 분의 성향에 따라 계속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다. 너무 당연한 얘기라는 생각이 드는가? 이런 시도가 성공하려면 결국 타이밍뿐이다. 완벽한 보고서를 만드려 하지 말고, 내용 골격만 잡히면 바로 중간보고를 드리는 게 좋다. 잔 손이 많이 가는 도형 서식이나 글자 모양은, 내용을 1차 확인받은 이후에 손봐야 쓸데없는 시간을 줄인다. 상사는 대개 나보다 내용을 넓게 보고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한 번에 칭찬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준이 낮다고 질책을 받을 수도 있지만, 완성도 높인다고 자존심을 세워봐야 결국 나만 손해다. 대부분의 상사는 보고서를 일찍 가져오는 것을 좋아한다.
보고서 작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상사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는 있어도, 즐거운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기왕에 하는 일이라면 마음가짐을 달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를 돌아보자면 직장에 다닐 때 힘들게 했던 일들이 결국 나를 위한 기술이 되었다. 예를 들면, 이메일 한 구절을 쥐어짜던 노력으로 글쓰기 힘을 키워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다. 어떻게 하면 설명을 쉽게 드릴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간만큼 내 강의 능력도 늘었다. 보고하는 내용만 다를 뿐 나는 여전히 이 세상을 대상으로 보고를 하고 있다. 다만, 이제는 주어진 과제를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보고 한다. 나의 글쓰기에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며, 나의 강의에 재미있다는 피드백을 주고 있다. 지금 쓰는 보고서는 언젠가 당신의 꿈을 이뤄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