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자기소개서는 꼭 직장을 옮길 때 써야 할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력서를 써 봤을 것이다. 요즘은 에세이 형식의 자기소개서(자소서)를 많이 쓰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썼던 이력서의 내용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자랐고, 무슨 학교를 다녔다는 얘기를 쓰지 않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이력서를 제출하는 회사에 나를 매력적이고 유능한 인재로 홍보해야 한다. 이전 회사에서도 신입사원 면접을 가끔 봤는데, 확실히 눈에 띄는 이력서가 있는 반면, 끝부분까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입장을 바꾸어 내가 채용 담당 부서장, 임원이라고 생각해 보자. 지금 내가 이력서를 다시 쓴다면 나를 합격시킬 것인가?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모셨던 팀장님은 내가 사원 시절부터 모셨던 분이라 나를 개인적으로 잘 아셨다. 하지만, 팀 규모가 꽤 커서 팀원이 수백 명이었기 때문에, 매일 뵙지는 못했다. 그러다 가끔씩 엘리베이터에서 팀장님과 마주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 팀장님이 자주 하시는 질문은 "너 요즘 뭐 하고 있냐"였다. 자기계발서나 사업 지침서에 등장하는 소위 '엘리베이터 스피치'다. 오르내리는 30초 남짓한 아주 짧은 시간에 관심사를 설명하는 것이다. 물론 팀장님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대략 아셨을 테지만, 나는 늘 그 대답을 준비해 두었다. 최근 1~2주 이내에 진행한 과제를 중심으로 말씀드렸고, 가끔은 관심을 보이시며 나중에 따로 보자고도 하셨다.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 마침 기회가 생겨 퇴직자 재취업 프로그램을 들었다. 향후 내가 직장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직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력서 작성법도 필수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좀 충격적이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회사생활을 했어도 자신의 이력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내 전산 시스템에 프로젝트나 업무경력을 관리해 왔기 때문에, 시스템을 볼 수 없는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다. 나는 퇴사 전에 나의 이력과 자격 증명 등을 정리해 두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적었다. 나의 이력을 떠나온 회사에 남겨둔다는 것은, 소중한 내 역사를 그곳에 버리고 온다는 것 아닌가.
유명 인사들은 인생의 어느 시점을 지나면 자서전을 쓴다. 특히, 정치인들은 개인 홍보 목적으로 쓰기도 한다. 그분들도 우리보다 시간을 더 많이 받았던 것은 아니다. 2배의 시간을 받아 2배의 일을 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도 모두 개인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남들이 어떻게 볼 지 몰라도 나에게는 모두 의미 있는 시간이다. 낭비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들도 지나고 보면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반성의 역사다. 이력서는 내가 그 직장에 들어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내 자서전이다. 나 이외에 누구도 더 자세히 알 수 없고, 나보다 그 의미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 나도 챙기지 않는 나의 역사를 과연 누가 챙겨줄까?
사람들이 명함을 자신과 동일한 상징이라 여긴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명함은 그 조직 내에 있을 때에만 유용한 것이다. 조직을 나오는 순간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이력도 마찬가지다. 어느 회사, 어느 부서에서 일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했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결과를 수확했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거꾸로 얘기하자면,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나중에 이력서에 어떻게 적게 될지 상상해 보아도 좋다. 그리고, 그 의미를 내가 부여해야 한다. 회사나 상사의 지시로 했더라도 내가 이력서에 써넣으려면, 지금의 내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일에서 내 역할이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일단 작성했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처음에는 창피하기도 할 것이고, 뭐라 얘기할지 걱정스러울 수도 있다. 함께 보는 이유는 공감과 보완을 위해서다. 특히, 가족들은 내 일을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무척 궁금한데도 지금까지 지켜만 봤을 수도 있다. 그냥 매일 같이 똑같은 일만 하는 게 아니었구나, 저런 결과를 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야근을 해야 하는 사정이 저 일 때문이었구나 공감할 수 있다. 이후에 회사 얘기를 꺼내도 훨씬 이해받기 쉽다. 동료나 친구라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알려줘 보완해 줄 수도 있다. 모두들 내 옆에서 나를 지켜봐 온 사람들이니까. 어차피 이력서는 향후에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소개해야 하는 내용이다.
이력서 양식은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해 보면 많이 쓰는 형식도 있고, 에세이 형식으로 쓸 수도 있다. 처음에는 한 줄을 쓰는 것도 고민일 것이다. 내 일에 대해서 진정한 고민의 기회가 없었다면 더욱 쓰기 어렵다. 이력서를 써 보면서 지나온 내 역사를 돌아보자. 지금 일에 대한 시각도 달라질 것이다. 잘해왔던 일을 살펴보면 내 강점 분야를 찾을 수도 있다. 이력서는 회사를 나와서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훌륭한 경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순간 써봐야 한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수정할 나 자신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