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아내가 아이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한우리독서토론논술에 두 아들을 맡겼는데, 선생님이 누구냐에 많이 의존하는 모양입니다. 저학년 때는 괜찮더니 4학년인 큰 애는 진척이 없어 고민인 듯했습니다.
2020년 5월부터 1,800개가 넘는 글을 쓰며 습작을 이어온 경험을 살려 큰 아들의 글쓰기를 돕기로 했습니다. 사실 지난 글 <붉은색을 나타내는 한 赤(적)과 朱(주)> 내용의 일부도 그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방금 세 번째 글쓰기 공부 시간을 마쳤는데, 회고도 하고 노하우도 공유할 겸 기록으로 남깁니다.
아빠, 이번에는 구름관찰자 책으로 할래요.
글쓰기 학습의 첫 번째 주제는 <찬란한 멸종>을 아이가 읽은 데서 착안했습니다. 아이가 워낙 과학책을 좋아하는 데다가 함께 북토크에 참석한 기억들이 작동한 듯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데 성인용 책을 모두 읽고 뿌듯한 얼굴로 저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수업을 했더니, 아이가 이번에는 자신이 책을 고른다고 한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차를 탔을 때, 아내가 아들에게 구름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옆에서 그걸 들으면서 큰 아들이 구름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그러던 차에 동네 서점에서 '구름 관찰자를 위한...'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책도 다 있네.'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아들에게 그 책을 사 주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표정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은 일이 있었죠.
그 책이 집에 남아서 이렇게 다시 인연을 맺게 됩니다. 아이의 호기심이 아내의 행동으로 번져 나가고, 아내의 행동이 저에게 영향을 끼쳐 책을 선물하게 했습니다. 아빠가 '글쓰기'를 가르치려 할 때, 규칙을 이해하자 좋아하는 책을 꺼내 듭니다. 아이의 호기심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아이의 글쓰기 장면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아이에게 둘째 시간의 방법대로 책에서 질문 세 개를 뽑아 오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아이의 질문은 '왜 구름이 되었지?'였습니다. 저는 보통 이렇게 질문이 생기면 조사나 취재를 한다며 성인들이 꾸려 가는 보통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 수준에서 조사할 수 있는 일로 일단 국어사전을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아이가 국어사전을 찾아 뜻을 읽을 때 옆에서 저는 퍼플렉시티에게 어원을 물었습니다.
"구름"의 고대 한국어 형태는 15세기 훈민정음 문헌인 용비어천가에서 "구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형태는 '구루'(검은빛이나 흐린 덩어리) + 명사 어미 '-ㅁ'으로 구성되어 하늘을 흐리게 하는 어두운 덩어리를 뜻합니다.
해당 내용을 설명한 후에 영어사전에서 Cloud를 찾고
A cloud is a mass of water vapour that floats in the sky. Clouds are usually white or grey in colour.
한자 雲(구름 운)도 연이어 찾았습니다. 그리고 뜻을 아들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것이죠. 어깨너머 배우길 바라면서 말이죠.
아이가 일부만 알아들을 것임을 감수하고 계속 설명을 합니다. 똑같은 현상이나 물질을 보고 사람마다, 나라마다 다르게 이해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구룸'은 '흐리거나 검은'에 강조점이 있고, 영국말은 'a mass of water'가 하늘에 있는 것에 초점을 둔 인식이라고 설명을 해서 차이가 드러나게 이야기를 풉니다.
그런 다음에 이들 중 하나만 옳은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게 본다는 점을 강조하고, 아이의 기억 속에 '문화상대주의'라는 단어를 남겨 둡니다. 당장 뜻을 몰라도 상관없는 거죠.
맨 처음 <찬란한 멸종>으로 첫 번째 글쓰기를 한 후에 아이에게 재미있었는지 물었습니다. 학습지 문제 푸는 것은 재미없는데, 이번에는 왜 재미가 있는지 비교해 보자고 했습니다. 아이가 우물쭈물해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습지는 주어진 문제를 무조건 풀어야 하고,
이 책은 네가 좋아하는 걸 하는 거잖아.
좋아하는 것을 해야 재미가 있지.
두 번째 시간까지는 아빠의 진행 방식을 기다리던 아들이 세 번째가 되자 자기가 자신 있게 책을 고른 것은 어쩌면 그 기억이 작동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 여정의 끝에서 굳이 글쓰기가 아니라도 자기 주도적으로 무언가 하는 힘이 키워지길 기대해 봅니다.
(3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36. 아이들 영화 덕분에 배우는 Boxing day의 맥락
30.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소비 훈련
40. 연기(緣起)를 이야기로 만들기
43.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배움을 아이들에게 흐르게 하기
44. 두 아들에게 눈에 보이게 하는 게시판 효과 활용하기
46. 108번이라는 횟수는 습習을 키우는 절대량인가?
47. 한자를 씨말로 어휘력을 늘리는 묻따풀 한자 208
49. 육아로 시작했지만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하는 가족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