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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Nov 25. 2023

생각의 역사Ⅰ: 불에서프로이트까지

제5부 비코에서 프로이트까지 : 병행하는 진리-현대의 모순

A History of Thought and Invention, from Fire to Freud


3, 4부에 이어집니다.


생각의 역사 Ⅰ(불에서 프로이트까지)은 미주까지 1,191쪽 분량이고, 생각의 역사 Ⅱ(20세기 지성사)는 1,297쪽 분량이다. 생각의 역사 Ⅰ만 정리한 것이 12,000자로 양이 적지 않아 오늘부터 5회에 걸쳐 공유한다. 메모가 새롭고 기존의 지식을 확인하거나 관점을 바꾸게 하는 등 의미 있는 내용 중심이라 이를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으나, 나는 아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책값은 각권 45,000원이다.


5부 비코에서 프로이트까지 병행하는 진리-현대의 모순

   18세기 내내 중국은 유럽인들에게 열풍이라 부를 만큼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는 학교 공교육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다. 공교육 커리큘럼이 서구의 학문에 기초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모두 공자의 지혜를 말하고, 중국 교육의 장점을 찬양하고, 중국풍의 그림을 그리고, 중국풍으로 꾸민 정원에 중국식 탑을 지었다.” 황태연의 「패치워크 문명 이론」과 「공자와 세계 Ⅰ,Ⅱ,Ⅲ,Ⅳ,Ⅴ」에서 상술한다. 「공자와 세계」 저자가 독일에서 공부했음에도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한 책이라 판단한다. 라이프니츠는 중국어를 보편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볼테르도 같은 의견이었다. 빅토르 위고에게 오리엔트는 매력의 대상이자 혐오의 대상이었다. 1870년 9월 그는 「독일인들에게」라는 연설에서 포위당한 파리를 파괴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면서, “서양에게 독일은 동양에게 인도처럼 위대한 조상입니다. 독일을 존경하도록 해주십시오”라고 입을 열었다. 오리엔트 르네상스는 낭만주의 혁명을 일으키는 데 이바지했다.      


   낭만주의는 관념의 대규모 혁명이었다(p.868) 낭만주의자들이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면, 십자군이 이슬람교도를 죽이면서, 용감한 적이 그릇된 신앙 때문에 죽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낭만주의자들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순교자, 비극적 영웅은 압도적인 중과부적 상태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용감히 싸우는 게 이상이 되었다. 가장 귀중히 여기는 가치는 타협이나 세속적 성공에 항거해 일어났다가 패퇴하는 태도였다. 가장 유명한 낭만주의자는 바이런일 것이다. 그리스 독립전쟁에 자원했다가 죽었기에 하는 말이다.       

   본문에 “누구나 르누아르와 드가를 알듯이 누구나 쇼팽을 들으면 금세 안다”(p.885)는 문장에서 맥이 빠진다. 음악에 아는 것이 없고, 듣는 능력도 없다. 낭만주의는 종교적 확신이 현저히 쇠퇴하는 현상에 대한 대응이었다. 과학자들은 신비를 설명하려 했으나 낭만주의자들은 신비를 즐겼다. 


   서양의 고고학은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원정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7명의 학자와 수행 병력 3만 8천 명은 1789년 이집트에 도착했다. 로제타석을 통해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다.

   직립의 중요성이 완전히 이해된 것은 1930년의 일이다. 다윈의 이론은 마르크스에게 혁명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고, 프로이트는 ‘인간 이전’의 잠재의식이라는 정신활동을 구상했다. 적자(嫡子)의 개념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러 가지 부당하고 잔인한 사회제도를 낳았다.      


   영국은 900명의 민간인과 7만의 병력으로 2억 5천만 인도인을 지배했다. 구약성서와 코란은 ‘정당한 전쟁’의 결과일 경우에 한해서만 노예 획득을 승인했다. 노예무역이 노예제 자체보다 더 나쁘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유럽인들은 노예를 짐승보다 별로 나을 게 없는 열등한 인종으로 여겼으나, 제대로 부려 먹으려면 노예도 온전한 정신 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과 모순을 빚었다. 여자 노예에게 주인이 성적인 매력을 느끼면 혼혈아가 태어나 새로운 사회 문제가 되었다. 청교도들은 가족 단위 이주가 주된 경향이었으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성 위주로 남미를 정복했다. 남미에 혼혈이 많은 까닭이다. 메스티소, 물라토, 삼보가 라틴계 백인과 인디언, 노예로 끌려간 흑인의 혼혈이다.     


   20세기 과학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지적 중추를 이루는 세 가지 관념이 탄생했다. 무의식, 유전자, 양자로 모두 독일에 기원을 두고 있다. 본능은 이성보다 더 오래고 더 강력한 힘이다. 본능을 부정한다고 해서 어떤 이득이 있는가. 사회다윈주의의 직접적인 정치적 영향은 20세기에 확립된 우생학이다. 창시자는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이다.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을 보면 우생학의 기원과 영향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사회다원주의는 중국에 엄복이 「천연론」 번역해 소개한다.     


   19세기 유럽인들은 힌두교와 불교를 원래의 형태에서 타락한 것으로 여겼다. 동양을 타락하고 후진적인 곳으로 규정해 제국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었고 동양이 고대에 머물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서양은 현대적이고 진보적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 이는 오리엔탈리즘이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무의식의 개념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와 별도로 무의식 관념은 프로이트보다 몇 세대 앞서 1800년대 유럽 사상에 자주 등장했다. 프로이트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독창적인 사상가는 아니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프로이트는 사기꾼이었으나 그런데도 위대한 편집가였다.”라고 평가한다. 브런치북 <그 책, 좋아>에 언급하였다. 무의식은 모더니즘의 생성에 영향을 미쳤다.      



   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 Ⅰ」이 생각의 역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세 가지 관념으로 ‘영혼’, ‘유럽의 관념’, ‘실험’을 꼽았다. 책의 결론 부분이 이를 풀어가고 있으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교육과 교양을 통해 지적인 낱개의 사실들을 배우거나 얻는다시공간에 흩어진 사실과 정보는 쌓을수록 연결도를 높일 수 있다연결의 정도가 시간적 맥락을 완성하면 그것이 역사가 아닌가뉴턴이 말한 거인의 어깨 위에라는 표현도 앞선 사실과 정보를 토대로 이룰 수 있었다는 메타포다독서를 통해 얻는 궁극의 기쁨은 통섭(統攝)이지 싶다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는 통섭의 통즉 큰 줄기를 잡는 좋은 재료다


P.S. 짧지 않은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여러 권의 책들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엮은 주제 서평"을 제 브런치북 <그 책, 좋아> 21~30화에 담았습니다. 


https://brunch.co.kr/@grhill/77

https://brunch.co.kr/@grhill/79

https://brunch.co.kr/@grhill/82

https://brunch.co.kr/@grhill/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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