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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맨 Mar 17. 2016

히맨의 PCT - 캘리포니아 북부

He-Man's PCT - Northern California

He-Man's PCT - Northern California

캘리포니아를 세 번에 걸쳐 소개하고(남부, 북부, 중부), 오리건, 워싱턴의 순서로 PCT하이커 히맨의 여정을 소개한다.
진행 위치에 따른 주요 재보급지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놓쳐서는 안 되는 랜드마크, 유용한 정보들도 소개하겠다.

■ PCT 하이커 되기
0.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0.1. PCT 용어 정리
0.2. PCT 지도 약어
당신이 궁금한 PCT : 일반
당신이 궁금한 PCT : 준비
2015 연간 PCT 하이커 설문
2016 연간 PCT 하이커 설문

1. PCT 행정
1.1. PCT 퍼밋(permit)
1.2. 미국 비자(VISA)
1.3. 캐나다 퍼밋
2. PCT 재보급

***2018 PCT 퍼밋 신청 공지

■ 히맨의 PCT
히맨의 PCT 한방에 보기
히맨의 PCT 운행기록_20151109_a

1. 캘리포니아 남부(Southern California)
캘리포니아 남부 재보급지&랜드마크
2. 캘리포니아 중부(Central California)
캘리포니아 중부 재보급지&랜드마크
3. 캘리포니아 북부(Northern California)
캘리포니아 북부 재보급지&랜드마크
4. 오리건(Oregon)
오리건 재보급지&랜드마크
5. 워싱턴(Washington)
워싱턴 재보급지&랜드마크

시작하기 전 알아두기!
PCT하이커 되기 - 0.1. PCT 용어 정리
PCT하이커 되기 - 0.2. PCT 지도 약어


PCT 캘리포니아 북부

-  구  간 : 그래니트 치프 와일더니스(north of the Granite Chief Wilderness, 1835.13km) ~ 오리건/캘리포니아 주계(Oregon/California Border, 2718.45km)

-  소요기간 : 26일(예비일 3일)

-  재 보 급 : 4회

히맨의 퍼시픽크레스트트레일 : 캘리포니아 북부

캘리포니아 북부구간은 PCT의 중간 지점(PCT mid point)을 지나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의 경계까지 이어지며, PCT에서 가장 긴 캘리포니아 구간을 마치게 된다. 중간 지점 이후 건조하고 뜨거운 햇 크릭 림(Hat Creek Rim)을 지나며 샤스타 산(Mt. Shasta)의 멋진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다. 그 밖에 버니 폭포 주립공원(Burney Falls StatePark)과 서브웨이 케이브 트레일(SubwayCave Trail) 등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랜드마크들이 있다.

그럼에도 2015년 PCT 하이커 설문(Halfwayanywhere.com)에 의하면, 캘리포니아 북부 구간을 많은 PCT하이커들이 가장 매력적이지 않은(Least favorite) 구간으로 꼽는다. 변화무쌍한 사막과 시에라 구간을 겪은 PCT하이커들은 이전에 비해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히맨에게 캘리포니아 북부 구간은 PCT의 절반을 해내는 성취감과 고요한 숲의 매력을 느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휴식의 구간이었다.



81일 차.

RD1153(from Truckee) to WACS1172

 “그리울 거예요”
Truckee에서 2박3일간 함께한  마크&트리샤 부부 그리고 귀여운 윌슨 ^^

헤어짐이 그 어느 때보다 아쉬웠던 히맨에게 마크&트리샤 부부는 미소와 포옹으로 답해주었다. 트러키 마을(Truckee)에서의 이틀은 독립기념일 퍼레이드를 함께 하고,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들에게서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크 아저씨는 우리를 트레일로 데려다준 후 30분 정도 함께 트레일을 걸었다. 그의 개 윌슨도 함께였다.

81일 차. 운행 중. 파란 옷은 마크(Mark), 그리고 그의 개 윌슨.


트레일 주변으로 많은 암벽 등반지를 볼 수 있는데, 도너 서밋 로드(Donner Summit Road)를 따라 다양한 난이도로 이루어진 총 275개의 등반 루트들을 볼 수 있다. 특히 PCT 시즌과 클라이밍 시즌이 맞물려 수많은 클라이머들로 북적였다.

( ▼ 클라이밍 루트 참고 링크 )

마크와 작별인사를 나눈 후 계속해서 운행을 이어간다. 캐슬 패스(Castle Pass) 이후의 트레일은 고요한 숲 속으로 이어진다. 사람을 볼 수 없던 것은 물론 새소리,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트레일에서 느껴졌다. 



82일 차.

시에라 시티에 도착한 우리는 교회 뒤뜰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다음날 다시 운행을 이어갈 예정이긴 했지만 트러키에서 휴식을 가진지 얼마 안돼 또다시 이렇게 여유를 가지게 되니, 좋으면서도 불안한 그런 기분이었다. 스토어에서 엄청난 크기의 햄버거를 먹고 난 후 와이파이가 잡히는 스토어 앞 벤치에서 긴 시간 떠나지 않고 여유를 즐겼다. 이후 네덜란드에서 온 PCT하이커 모닝스타와 쿠키몬스터 커플과 함께 늦은 시간까지 맥주를 함께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무려 6~7개월의 휴가를 내고 PCT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부러웠다. 모닝스타는 아이폰과 고프로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운행 모습과 장거리 트레일에 대한 가이드 영상 등 재미있는 영상들을 많이 찍고 있었다.

(모닝스타&쿠키몬스터의 'Friendly Hiker'에서 그들의 이야기 및 장거리 하이킹을 위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82일 차. 시에라 시티. 스토어 앞에는 큰 규모의 하이커 박스들을 볼 수 있다.

재보급 14 : 시에라 시티(Sierra City, 1928.0+2.4)
시에라시티는 트레일을 벗어나 도로를 통해 2.4km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영화 속에 나올 법한 작은 커뮤니티이다. 스토어 뒤편에 위치한 교회 옆 잔디밭에서 야영이 가능하다. (단, 일요일 제외) 스토어 바로 옆에 우체국이 있으나 운영시간이 매우 짧다. 따라서 늦은 시간까지 매일 운영하는 스토어에서 재보급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스토어는 비교적 큰 편이며, 무선인터넷(WIFI)도 가능하다. 또한 음식도 판매하는데, 특히 거대한 것버스터(Gutbuster) 햄버거는 부족한 열량을 충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엄청난 양을 자랑하는 배고픈 하이커를 위한 메뉴(The Hungry Hiker Menu)를 먹을 수 있는 레드 무스 카페(Red Moose CAFÉ)도 추천한다.
‘히맨의 일상’


손목에서 울리는 시계의 진동에 눈을 뜨자마자 운행기록 엑셀에 기상시간을 입력하며 일어난다. 곧바로 코펠과 스푼을 찾고, 시리얼과 우유 파우더를 붓는다. 그리고 또띠아를 펼쳐 절반은 딸기잼, 나머지 절반에는 피넛버터를 바른다. 마지막으로 코펠에 물을 붓고 쉬 젓는다.
흡입한다.
걷는다.
텐트를 친다.
먹는다.
잔다. 


PCT DAY#8220150706

#1. 트레일은 이제 집 같고 그곳에서의 일은 일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어느새 트레일 매직을 통한 일탈에서 더욱 많은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있다.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고 마치 집에서의 일상 같다. 이제 볼 건 다 본 것 같다는 느낌도 강하게 든다. 하지만 아직 나는 끝까지 가보지 않았다.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스스로 어떤 것을 보고 또 느끼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내가 지루하다고 해서 길이 나를 위해 변화하지 않는다.'
'길은 항상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다.'

'결국 내 마음에 달린 일이다.'


#2. 매일 같은 사이트에서 자고 일어나 같은 길을 걷는데도 서로가 보고 느끼는 것은 정말 많이 다르다. 모든 PCT 하이커들이 각기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가진다고 확신한다. 다른 배경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목표와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지 않을까?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다. 결국 자신만의 경험으로 자신 만의 길을 걸어야 한다. 생각하는 머리도 앞으로 걸어나갈 다리도 내게 있다. 그럼에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재미있다.


84일 차 운행 중.


86일 차.

‘PCT : Pan Cake Trailer’ 종종 볼 수 있는 표식의 유쾌한 메시지들은 운행의 피로를 잠시나마잊게 해준다.
벨든 리조트의 이정표. 이곳에서 각종 파티를 구경할 수 있다.

벨든(Belden) 우체국이 없어진 사실을 모르고 우체국으로 재보급 상자를 보낸 히맨은 고민에 빠졌고, 근처에 있다는 트레일 엔젤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기로 했다. 트레일 엔젤에게 픽업 서비스를 요청한 하이커, 베어 리(Bear Lee)와 함께 PCT 하이커 호스팅 장소인 리틀 헤이븐(Little Haven)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창가에 눈길이 갔는데, 창 안으로 보이는 재보급 상자 중에 히맨이 쓴 글씨가 보였다! 그 상자가 히맨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치 마법처럼 재보급상자를 찾을 수 있었다.

운이 좋게 바로 벨든 우체국으로 보낸 재보급 상자를 리틀 헤이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재보급 15 : 벨든(Belden, 2078.3+1.6)
트레일 엔젤이 호스팅하는 리틀 헤이븐(Little Haven)에서 재보급 상자를 받을 수 있다. 우체국 주소로 잘 못 보내진 재보급 상자들 또한 이곳에서 받을 수 있다. 트레일 엔젤이 트레일에서 리틀헤이븐을 오가며 하이커들을 픽업해주는 것은 물론 침대와 화장실, 주방 등을 갖추고 있으며, 아침에는 간단한 식사도 제공한다. 이 모든 것이 무료이다. 약 10분 정도 걸어서 이동이 가능한 카리부 크로스로드(Caribou Crossroads)에서 식사 및 식량구매, 세탁 등을 할 수 있다. 단, 좁은 급커브의 도로이므로 이동 시 주의할 것.
 벨든의 트레일엔젤 호스팅 장소인 리틀 헤이븐. PCT하이커들을 기다리는 재보급 상자들이 쌓여 있다. 히맨은왼쪽의 침대에서 편안한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86일 차. 캐년 뷰 스프링(CanyonView Spring)


88일 차.

TR1303(WACS1303) to Hwy36(toChester)

드디어 끝이 없을 것만 같던 PCT의 절반을 해내게 되는 날이다. PCT 최남단인 캄포(Campo, 0 km)에서 출발한 후 2125.39km를 걸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PCT 중간 지점(PCT mid point)을 지나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마을인 체스터(Chester)에서 절반 통과를 기념하며 예비일을 가질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걸었다. 하지만 PCT는 절반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매우 지루하며 업 다운이 심한 트레일, 길을 가로막고 있는 나무들은 히맨을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환경에 조금 더 잘 적응하기 위한 예방주사라고 생각하며 걸어나갔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런 변화 없는 환경이 펼쳐질 테니.

88일차 운행 중.


“축하해요~!”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하이커들이 PCT 중간 지점에 도달한 것을 축하해준다.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힘겹게 중간 지점에 도착했다. 하지만 중간 지점임을 알리는 돌로 된 포스트와 방명록 박스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약간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PCT 중간 지점(PCT mid point). 캐나다까지 1325마일/멕시코까지 1325마일 각각 떨어져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PCT 중간 지점(PCT mid point), Photo by 양희종(Spontaneous)

 

재보급 16 : 체스터(Chester, 2153.8+12.1)
PCT 중간 지점(Mid Point)을 지나 약 13km 이후 만나는 도로(Hwy36)를 통해 PCT에서 약 12km 떨어진 작은 마을 체스터를 만날 수 있다. 우체국, 도서관, 식당 등 기본적인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PCT의 절반을 달성하는 것을 축하하는 작은 파티를 가져봐도 좋겠다.

체스터의 우체국과 도서관.


90일 차.

Hwy36(from Chester) to WACS1350

체스터에서 평화로운 휴식을 가진다음 날, 우리를 마을로 데려다 주기도 했던 트레일 엔젤인 파이퍼스 맘(Piper’s mom)에게 트레일까지 차량 지원을 부탁했다. 호텔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우리를 데리러 나와준 그녀 덕분에 힘겹게 히치하이킹을 할 필요 없이 정말 편안하게 다시 트레일에 복귀할 수 있었다. 트레일 엔젤들은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정말 고맙다. 아무런 대가 없이 차량 픽업을 해주고 밥을 주고 재워주기도 하는 ‘봉사’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엔젤이라 불릴 만하다. 고마워요!!


90일 차 운행 약 29km 운행지점에서 약 3km 길이의 대안 길인 보일링 스프링(Boiling Spring alternate)으로 접어들었다. 이 대안 길의 마지막에서 증기와 함께 끓어오르며 흐르는 회색 빛 물을 볼 수 있다. 혹시나 따뜻한 온탕을 떠올렸던 히맨은 약간 아쉬웠으나 TV에서나 보던 펄펄 끓어오르는 물이 신기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90일 차 보일링 스프링(Boiling Spring alternate).

91일 차.

WACS1350 to Hat Creek View

91일 차 운행중.

운행 초반 고도 500m를 올린 이후, 경사 없이 계속되는 트레일에 또 다시 지루함이 찾아와 더욱 속도를 냈다. 약 33km 운행지점인 올드 스테이션(Old Station)에서 점심을 먹고 매트리스에 누워 여유롭게 낮잠을 즐겼다. 평소보다 긴 3시간의 꿀 같았던 휴식에 몸이 늘어졌고, 다시 출발할 시간이 다가왔음에도 움직이기 싫었다. 결국은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겨우겨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른한 몸은 이내 곧 깨어났고, 다시 걷는 일에 집중하여 목적지까지 속도를 냈다. 운행 후반 PCT를 벗어나 서브웨이 케이브 트레일(Subway Cave Trail)로 진입하여 어두 컴컴한 동굴을 탐사하기도 했다. 박쥐 등이 서식한다는 안내를 본 후 동굴에 들어서니 운행하며 흘린 땀이 한 순간에 얼어붙는 오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91일 차. 서브웨이 케이브 트레일(Subway CaveTrail)
랜드마크 : 서브웨이 케이브 트레일(Subway CaveTrail)
도로(Hwy44)를 건넌 후 바로 동굴로 향하는 갈림길을 볼 수 있으며, 약 700m를 더 운행하면 동굴을 만날 수 있다. 이정표로 잘 안내가 되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동굴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볼 수 있다. 한번 내려가면 반대편에 도달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이므로 헤드램프를 이용하여 주변을 잘 살피기 바란다. 주차장 근처에서 급수가 가능한 수도 시설이 있으니 참고할 것.

이날의 목적지인인 햇 크릭 뷰(Hat Creek View)는 정식 사이트는 아니었으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안내판을 통해 2009년에 번개로 햇 크릭 밸리(Hat Creek Valley)에 화재가 발생하며 PCT가 끊겼었던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바로 옆 주차장에서 만난, 캠핑카를 끌고 여행 중인 한 아저씨에게서 받은 맥주와 간식을 먹으며 아름다운 노을을 즐겼다.

햇 크릭 뷰(Hat Creek View)에서 카우보이 캠핑(비박)을 하려 그대로 앉아 버렸다. 하지만 이내 득실대는 모기들의 공격에 어쩔 수 없이 텐트를 쳐야만 했다.
91일 차. 운행을 마치고 햇 크릭 뷰(Hat Creek View)에서 맞이한 노을.)


  

92일 차.

Hat Creek View to CS1406

“우리 다시 사막으로 돌아온 건가요??”
92일 차. 사막에 버금가는 뜨겁고 건조한 화산암 지대가 히맨을 맞이한다.

정말 뜨거웠다. 이날 운행은 음료수 생각만 하며 태양을 피하기 위해 약 47km를 내달렸다. 뜨겁고 건조한 것은 물론 화재로 인해 그늘을 찾을 수 없는 트레일은 마치 다시 사막에 돌아온 듯했다. 운행이 끝날 때쯤 만난 구멍 난 파이프에서 솟아나는 물줄기에 얼굴을 들이밀었을 때의 시원함은 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43~44km 지점에서 트레일 매직이 있다는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쪽지 때문에 한참을 헤매다 결국 지쳐버렸다. 컨디션에 따라 조금 더 운행하여 마을까지 갈 생각도 했지만, 뜨거운 날씨에 온 힘을 다해 걸은 탓에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들었다. 결국 강가 옆에 매트리스를 깔고 ‘나도 모르겠다’ 하며 드러누워버렸다. 30분쯤 지났을까? 뒤에 걸었던 형과 추가 운행을 의논하고 싶었으나, 트레일 매직을 찾아 헤매던 중에 엇갈린 듯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해는 저물어 가고 다음 급수 가능한 사이트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다. 거품이 낀 강물을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어 결국은 그곳의 물을 받아 가장 가까운 사이트로 이동했다.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히맨 근처로 더위에 지친 다른 하이커들이 하나 둘 자리 잡으며 뜨거웠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92일 차 운행 도중 만난 고마운 쉘터. 뜨거운 하루를 증명하듯 텅 빈 물통으로 가득했다.


93일 차.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지고 간다.

CS1406 to WACS1422

PCT 위에서 만날 수 있는 그야말로 초호화 ‘핫 플레이스’가 나타났다! 운행 약 6~7km 지점, 트레일의 양 옆으로 만들어진 쉼터를 만났다. 하이커 박스는 물론이고 음식, 음료 및 물, 샤워장, 조리대, 그리고 전자장비 충전까지 가능했다. 특히 트레일 엔젤의 정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간식 선반에는, 전부 한 번씩 먹어보고 싶은 정말 다양한 통조림 음식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히맨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욕심을 부려 챙겼다가 고생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기에.

장기간 트레일을 걸으며 깨달은 것 중 하나,

'선택에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지고 간다'


책임이 무거워져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주저앉게 되고,

일어나지 못 하고 그 자리에 눕게 되는 것.

그게 안주가 아닐까?

  

93일 차. 가장 큰 트레일 매직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저 바라볼 수밖에…

재보급 상자 수령을 위해 대안길인 버니 폭포 주립공원(Burney Falls State Park alternate)으로 향했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와 많은 관광객을 볼 수 있는 거대한 주립공원의 규모에 놀라며, 앞으로 만나게 될 크레이터 레이크 국립공원(Crater LakeNational Park)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스토어에서 미리 보내놓은 재보급 상자를 받았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식량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걱정을 하다가 스토어 앞에 하이커 박스를 만들기로 했다. 주변 하이커들에게 나눔을 하고 남는 식량들을 다시 상자에 넣어 다른 하이커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누가 봐도 한국인의 것으로 보이는, 태극기가 붙은 하이커 박스는 아마 최초이지 않을까.

93일 차. 버니 폭포 주립공원 스토어에서 수령한 재보급 박스.


많은 하이커들이 스토어 앞에서 점심을 먹고 재보급 식량을 정리하고 있다. 그때 한 하이커(CubanB)가 주변 하이커들에게 PCT 출발 때의 사진을 보여준다. 트레일을 걸으며 살이 빠진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른 하이커들도 하나 둘 자신의 사진을 자랑스러운 듯 꺼내기 시작한다. 다들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체중이 빠진 형 못지않게 외모가 달라져 깜짝 놀랐다. PCT만 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이 또 있을까?

버니 폭포(Burney Falls) 안내판.
재보급 17 : 버니 폭포 주립공원 스토어(Burney Falls State Park Store, 2304.3+0.4)
버니 폭포 주립공원에서는 약 40m(129ft.)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폭포를 볼 수 있다. 큰 규모에 걸맞게 캠핑장, 스토어, 깔끔한 화장실 등 각종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특히 공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따뜻한 글귀들이 적힌 벤치들이 인상적이다. 스토어에서 5달러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재보급 상자를 받아 볼 수 있다. 공원으로 향하는 대안 길(alternate route)로 접어들 때에 안내가 잘 되어 있지 않아 길이 헷갈릴 수 있다. 길에 확신이 없을 경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여 길을 찾아갈 것.
93일 차. 버니 폭포(Burney Falls).


"HAPPY TRAILS TO YOU UNTIL WE MEET AGAIN"


"BREATHE IN THE BEAUTY"
"IT IS ALL GOOD"
버니 폭포 주립공원에서 볼 수 있는 인상적인 벤치들.
93일 차 운행중. 이제 멕시코보다 캐나다까지의 거리가 더 짧다!


PCT DAY#94 20150718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 건
처음인 것 같아.'

‘나처럼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94일 차. 내게 소중한 것은 상대에게도 소중하다.

두 번째 급수 실수. 확실하지 않은 선택으로 인해 후회할 결과를 만들었다. 마지막 급수 사이트로 빠지는 길에서 만난 하이커들에게 물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트레일로 돌아 가면 있다는 얘기에, 물통만 들고 돌아가 보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결국 600m 뒤에 있는, 진짜 마지막 급수지로 향했다. 설마 설마하면서도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는데, 결국 문제가 생겼다. 최후의 보루였던 그 급수지의 물은 모두 말라있었다.
당황스러움에 다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다리는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물을 받지 못 했고, 수낭에 남은 물을 계산했다.

‘낮에 900ml 급수했고, 많이 마시진 않았으니 700ml쯤 남아 있겠지??’

‘밥하는데 130ml, 프로틴 먹는데 400ml 정도??’ 이런 식으로 계산하며 걸었다.
운행을 마친 히맨은 물 생각이 가장 먼저 났다. 수낭을 꺼내 확인한 남은 물을 양은 500ml가 안 되었고, 이내 큰 고민에 부딪혔다.

‘형한테 물을 달라고 할까 말까’

하지만 밥을 하는데 물을 거의 다 쓰고도, 지금까지 달라고 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운행을 마치고 텐트 안에서 마시려 사놓은 칵테일 캔 하나만 믿고 있다. (술로 수분 보충을 해야 한다니!)
처음 물이 없었을 때도 그렇고, 히맨은 잘 버텨왔다. 처음 서로 약속했듯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물과 식량을 형에게 달라고 할 생각이 없다. 내게 소중한 거라면 그에게도 소중한 물과 식량이다. 그걸 함부로 달라할 수는 없다.
‘참자 히맨!! 넌 할 수 있어!!'

내일 8km만 가면 물이 있어!!

한 시간 반만 가면 돼~ 가서 시원하게 프로틴 한 잔 하자고!!’

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면서도 ‘처음에 그냥 확실히 급수지를 물어봤더라면…’ 하는 후회를 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참 바보 같다. 고쳐야 할 버릇이다.

96일 차. 길게 뻗은 고요하고 평탄한 트레일.
랜드마크 : 샤스타 마을(Shasta)
샤스타는 대형마트와 장비점 등을 볼 수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이다. 특히 각종 패스트푸드 점을 비롯 여러 국적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많다. 마을 가운데에는 샤스타 산(Mt. Shasta)의 순수한 물을 마실수 있는 음수대가 있다.
재보급만을 받고 계속 운행을 원한다면 작은 커뮤니티인 카스텔라(Castella)를, 재충전이 필요하다면 가까운 던스뮤어 마을(Dunsmuir)보다는 샤스타 마을 추천한다.
99일차. 캐슬 크래그 와일더니스(Castle Crags Wilderness)로들어선다.


100일 차. 모두 행복한 순간이었다.

Trinity Alps Wild2 to RD1597(toEtna)

히치하이킹을 통해 이트나 마을(Etna)의 PCT하이커 호스팅 장소인 하이커스 헛(Hiker's hut)으로 이동했고 뒤뜰에 텐트를 쳤다.


PCT DAY#100 20150724

#1. 100일 운행을 무사히 마쳤다.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
이 정도면 이제 전문가 아닌가? 이 정도면 PCT하이커라 불릴 만하지 않은가?!!

지금까지 별 탈없이, 그리고 잘 따라와 준 희종이 형에게 정말 고맙다.
고생했습니다. 끝까지 무탈하게, 조금만 더 고생합시다!^^

PCT에 있는 동안 정말 치열하게 자신과 마주하며 목표에만 집중해왔다.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내 이름을 걸고 정말 최선을 다했다 자신한다. 지금까지 걸으며 단 한 순간의 후회도 없었다는 건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인 것 같다. 그리고 행복하다.

PCT에 있는 100일 모두 행복한 순간이었다. 속병이 나 힘들었던 순간, 혹은 아픈 발목으로 신음하며 겨우 겨우 내디뎌 걸었던 순간조차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 고생을 하러 이곳에 온 거니까. 그걸 극복해내고 더욱 강해지고, 더욱 잘 해내고 있는 걸 직접 느끼고 있으니까.

35일 차, 비박 중 잠에서 깨어,

하늘 가득한 별 아래에서 문득 떠올랐던 물음.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지??’

이제 그 답을 찾은 게지.


#2. 똑같이 형한테도 묻고 싶었다.
여기 온 걸 후회한 적 없었느냐고,

지금 행복하냐고.


랜드마크 : 이트나 마을(Etna)
이트나 마을은 PCT에서 약 17km 떨어진,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시에라 시티와 비슷한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트레일 엔젤의 호스팅 장소인 하이커스 헛(Hiker’s Hut)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숙박은 하루에 인당 20달러이며, 시간표에 따라 유료 픽업 서비스(5달러)를 운영한다. 하이커스 헛에서 무료로 탈 수 있는 자전거를 타고 마을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자체 양조장에서 만든 다양한 맥주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이트나 브루어리 펍(Etna Brewery PUB)은 꼭 들러보기 바란다.
이트나 마을(Etna)의 PCT 하이커 호스팅 장소인 하이커스 헛(Hiker's hut)
이트나 브루어리 펍(Etna Brewery PUB)


104일 차. 

WACS1621 to Seiad Valley

104일 차. 사이드 밸리(Seiad Valley)까지 4마일 남은 지점. PCT 하이커를 위한 세심한 배려에 미소가 지어진다.

운행거리 52km의 롱데이. 운행 중반 양 옆으로 높게 서있는 나무 사이로 길게 뻗은 고요한 숲길을 볼 수 있다. 급경사의 내리막이 많으며, 도로를 만나기 전까지 계곡을 따라 걷게 된다. 2주 넘게 계속된 평균 40km 넘는 운행에 이어 거의 이 날도 거의 달리 듯 걷다가 만난 마지막 도로구간에서는 더 이상 힘이 나지 않았다. 사이드 밸리(Seiad Valley)로 가는 길의 마지막 10km는 포장된 도로를 걸어야 한다. 하지만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나타난 999마일 기념 표식은 마지막 힘을 내게 해주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다.

104일 차. 캐나다까지 이제 999마일 남았다. ’ONLY 999 TO CANADA’
랜드마크 : 사이드 밸리(Seiad Valley)
사이드 밸리는 도로변에 위치한 아주 작은 커뮤니티이다. 10달러의 이용료를 지불하고 넓은 잔디밭에 자유롭게 텐트를 칠 수 있다. 하이커 박스, 충전 및 샤워장(별도 이용료) 등의 편의 시설과 인터넷이 가능하다. 필요한 식량을 구매할 수 있는 스토어가 있으며, 바로 옆에는 다양한 맛의 밀크쉐이크를 맛볼 수 있는 사이드 카페(Seiad Café)가 있다. 이곳에서 커다란 팬케이크를 전부 먹으면 돈을 받지 않는 팬케이크 챌린지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겠다
사이드 카페(Seiad Café)

사이드 카페(Seiad Café)의 내부 모습.


PCT DAY#105 20150729

캘리포니아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벌써!!

참~ 길었다~ 그렇지??

이제 오리건에서 신나게 달려보자고!!
■ PCT 하이커 되기
0.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0.1. PCT 용어 정리
0.2. PCT 지도 약어
당신이 궁금한 PCT : 일반
당신이 궁금한 PCT : 준비
2015 연간 PCT 하이커 설문
2016 연간 PCT 하이커 설문

1. PCT 행정
1.1. PCT 퍼밋(permit)
1.2. 미국 비자(VISA)
1.3. 캐나다 퍼밋
2. PCT 재보급

***2018 PCT 퍼밋 신청 공지

■ 히맨의 PCT
히맨의 PCT 한방에 보기
히맨의 PCT 운행기록_20151109_a

1. 캘리포니아 남부(Southern California)
캘리포니아 남부 재보급지&랜드마크
2. 캘리포니아 중부(Central California)
캘리포니아 중부 재보급지&랜드마크
3. 캘리포니아 북부(Northern California)
캘리포니아 북부 재보급지&랜드마크
4. 오리건(Oregon)
오리건 재보급지&랜드마크
5. 워싱턴(Washington)
워싱턴 재보급지&랜드마크

20160317

 by 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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