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아틱 관람
‘10월이 이렇게 추웠나?’
바닷바람 때문일까. 부산의 저녁 날씨는 생각보다 쌀쌀했다. 그래도 고작 한 시간 반인데, 추워 봤자 얼마나 춥겠냐며 나는 해운대역으로 들어오는 전철을 탔다. 세 정거장을 지나 도착한 곳은 센텀시티역. 우린 쇼핑 유혹을 뿌리치고 6번 출구로 나왔다. 아니 근데 이게 웬일? 우리가 알기론 분명 백화점 옆에 영화의 전당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 눈에는 아파트 단지와 백화점만 보일 뿐 영화의 전당은 안 보였다. 디랜다와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롯데백화점 주변을 바라보다 지도 앱을 켰다.
“야... 10분 더 걸어야 한대.”
“어?! 바로 앞 아니야?”
“어. 근데 15분 남았어.”
영화 상영 8분 전.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영화의 전당에 도착했다. 우리가 영화 볼 장소는 야외극장인데, 야외극장 가는 길에도 레드카펫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레드카펫 밟으며 극장에 들어서니, 영화제에 왔다는 설렘과 묘한 감정이 나를 들뜨게 했다. 거기다 건물 지붕도 얼마나 화려한지, 알록달록 예쁜 무지갯빛 색상이 천장에서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극장은 평일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나와 디랜다는 매의 눈으로 같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따로 앉자고 말 나올 때쯤, 우린 운 좋게도 붙어있는 두 자리를 찾아서 앉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도 시선도 모두 다 중앙이라 어찌나 좋았던지, 시간에 쫓겨 다녔어도 결국은 모든 게 다 잘 풀린 날이라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가방을 껴안고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데, 극장 불이 꺼진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잠잠하다가 곧이어 영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됐나 보다.
>>>>여기서부터는 영화 'Artic'에 대한 장면 묘사와 스포가 있습니다.<<<<
영화 제목은 Artic. 개봉 전, 영화를 먼저 볼 수 있는 기회라니.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영화에 집중했다. 첫 씬은 온 세상이 하얀 설원 풍경. 매서운 바람 소리가 휘몰아치고 빨간색 외투를 입은 한 남자가 길을 내고 있다. 극장에 울리는 소리라곤 주인공의 시계 알람 소리와 주인공 오버가드의 숨소리뿐. 조용한 적막감이 극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오버가드가 걸어가는 장면 뒤로 카메라는 상공에서 S.O.S를 보여주고 있었다.
‘혼자 저 길을 어떻게 냈을지..’
영화는 오프닝부터 적막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내비쳤다. 주인공의 대사는 없었고, 보이는 풍경이라곤 눈과 험악한 지형뿐. 탈출할 방법조차 하나도 없어 보였다. 주인공은 길을 다듬고 구조신호를 잡으려 기계를 열심히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 초점 없는 주인공의 눈동자와 모습을 보니, 그저 그가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언제까지 이 지루한 일과를 반복해서 보여주나 생각했었는데, 때마침 하늘에서 헬기가 등장한다. 오, 벌써 구조되나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헬기마저 바람을 못 이기고 땅으로 추락해버린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관객의 탄식 소리. 오버가드는 헬기에서 생존자를 발견하고, 그녀를 극진히 보살핀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부상이 심한 상태라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오버가드는 그녀와 함께 임시 기지를 향해 떠날 채비를 준비한다. 나도 모르게 영화 속 주인공의 비장함과 긴장감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상태가 악화된 그녀를 책임지고 떠나야 한다니. 그것도 정확하지도 않을, 지도 한 장에 의존해서. 앞으로의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눈앞이 벌써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영화는 여전히 설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초반부에는 오버가드의 간단한 일과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면, 중반부는 그녀를 썰매에 태우고 힘겹게 걷는 모습이 주될 뿐이었다. 가끔 들리는 오버가드의 시계 알람 소리가 시간이 꽤 지났단 걸 암시해주는 했다. 그나저나,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 이 극장도 어쩜 추운지. 영화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 때마다 극장에서도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우리가 보는 건 분명 2D인데 4D로 체험한 기분이랄까. 어이없음에 웃음이 살짝 새어 나왔다. 외투를 입고 영화를 보는데도 몸속 깊이 한기가 느껴져 몸을 한껏 더 웅크려보았다. 디랜다도 추운지 조용히 담요를 꺼내 나와 디랜다 무릎에 반씩 덮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점점 더 극한 상황으로 후반부에 다다랐다. 다친 그녀를 버리지 않고 온갖 극악 조건을 잘 버티며 걷던 그가 최악의 상황에 망설이게 된 것이다. 호흡이 미세해 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그녀를 놔두고 혼자 기지로 떠나려 한다. 뒷걸음질하던 순간, 그는 얼음 밑으로 추락해버리고 한쪽 다리를 심하게 다친다. 주인공은 바위틈에 낀 한쪽 다리를 빼내려 하지만 빠지지 않자 모든 걸 포기한 듯 절망감을 느낀 채, 누워만 있었다. 울먹이는 그의 표정을 보니 더 이상 남 일 같지 않음에 “어떡해”가 저절로 나왔다. “어~” “어떡해” 말이 나 말고도 여러 사람 입에서 조용히 들려온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바위틈에서 빠져나온다.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시 그녀에게 다가간 오버가드는 그녀에게서 “Hello” 인사를 받는다. 그녀에게 미안하다며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오버가드를 보니 울컥함이 밀려온다. 그는 재정비하고 그녀와 함께 다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오랜만에 그에게 찾아온 구조 기회. 그는 헬기를 향해 그가 가지고 있는 옷과 탄으로 구조 신호를 간절히 보낸다. 야속하게도 헬기는 그의 구조신호를 못 봤는지 돌아가 버린다. 주인공은 절망하다 생존 가능성을 포기한 듯, 그녀 옆에 누워서 혼자가 아니라며 말을 느리게 되뇌다 눈 감기 시작한다. 주인공들의 처절함과 안쓰러움에 눈물 나려던 차, 헬기가 뒤에서 착륙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갑작스레 끝난 엔딩에 허무함이 살짝 몰려왔지만, 두 주인공이 결국 구조됐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엔딩 크레딧이 쭉 올라가고, 사람들은 모두 다 약속이나 한 듯 자리에 앉아 박수를 힘껏 쳤다. 몇백명이 동시에 같이 치는 3분간의 힘찬 박수. 영화제가 아니라면 체험할 수 없던 광경에 디랜다와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아마도, 오늘 겪은 첫 영화제는 여러 가지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소소한 팁
영화의 전당은 신세계백화점 옆에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을 통해서 가시면 더 빠르게 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야외극장은 비지정 좌석이라 좋은 자리를 잡으려면, 여유 있게 가시길 추천합니다. 저희는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이벤트를 못 즐겼지만, 영화 상영 전에는 작은 이벤트들도 있었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외극장 입구에는 유명인사처럼 부스에 서서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있어요.
야외극장에서 영화 보신다면, 담요와 머플러를 꼭 챙기시길 추천합니다. 간단한 음료가 허용된다면 따뜻한 물이나 차 한잔 가져가도 좋을 것 같아요.
뚜벅이 셋이서 부산여행, 2박 3일 여행기
DAY 1: 부산역 - 해동용궁사 - 숙소 – 해운대 노을 – 해운대 원조 할매 국밥 - 가방 정리 - 영화의 전당& '아틱'관람 - 숙소
DAY 2: 문텐로드&미포 철길 - 모루 식당 - 초키 만남 - 흰여울 문화마을&절영해안산책로 - 깡통시장&자갈치시장- 숙소
DAY 3: 조식 - 용두산공원&부산타워 - 중구 기사식당 - 초량 이바구길 - 명성 횟집&백구당&구 백제병원(핸즈 브라운 카페) - 부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