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영해안산책로

돌계단과 영도 바다

by Mihye
계단도 예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 곳. 작은 돌멩이로 계단을 꾸민 광경을 볼 수 있다.

마을 끝자락에서 해안 산책로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가파르고 비좁은 돌계단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떨고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나...”


“천천히 내려와.”

“왜? 뭐 있어?”

“...”


뭔 일인가 싶어 뒤돌아보니, 초키가 부들부들 손을 떨며 우리에게 손잡아달라는 듯 한쪽 손을 쭉 내밀고 있었다. 아까 걸을 때만 해도 제일 먼저 앞장서서 잘 걷던데, 왜 그런가 싶어 멍한 표정으로 초키를 바라봤다. 예전에 초키에게 들었던 게 생각났다.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곳이라면(특히 산이나 계단이라면) 무섭다고, 싫다고는 누누이 들었지만, 초키가 이 정도 계단도 무서워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 나도 이 계단 힘들다고는 생각했는데, 초키는 오죽할까 싶었다. 디랜다와 나는 말없이 서로 마주 보다, 초키에게 다가가 초키 손을 잡고 한 발짝씩 천천히 내려왔다.

“이럴 때만, 우리 찾더라.”

“그니까. 우리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초키는 멋쩍은 듯 웃으며 “그렇지!” 대답했다.


힘들게 내려왔는데,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좌우로 막혀버린 길에 우린 당황했다. 갈 수 있는 길이라곤 오른쪽 길, 터널 하나뿐인데 그마저도 막혀있다. (공사 중인 그 터널은 해안 터널로 새로 개통됐다고 한다)

다시 올라갈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터널이 열려있기라도 하면 지나갈 텐데, 갈 길이 없으니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다. 내려갈 때보다 올라갈 때가 어찌나 더 고되던지, 돌계단을 하나씩 밟을 때마다, 숨이 차고 종아리가 점점 굳어져만 갔다. 온몸이 등산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말없이 계단 앞,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시원한 에이드 2잔과 따뜻한 라떼 1잔을 시키고 묘박지가 보이는 테라스에 앉았다. 에이드로 목을 축이니, “살 거 같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번 여행도 쉬엄쉬엄 다니는 건 글러 먹었다고 생각했다. 여행 갈 때마다, 여유롭게 다닐 거라고 혼자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도, 이렇게 부지런히 다니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나 보다고 생각했다. 새로 시작하는 기분에 들떠 이곳저곳을 누비니 말이다.


우리는 잠시 넋 놓은 채, 말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초키는 남항대교 쪽 시가지를 보다가 지루한 듯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고, 디랜다는 묘박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거북이처럼 생긴 작은 섬과 바다를 바라보다 작은 연습장과 연필 한 자루를 꺼내 바다를 그렸다. 그나저나, 오늘 아침 문텐로드에서도 저 섬을 본 것 같은데, 저기는 어디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카페 주인에게 물어보려다, 피곤한 몸을 핑계 삼아 의자에 기대어 윤슬을 말없이 바라봤다. 부산에 온건 이번이 두 번째지만, 이번 여행만큼 부산 바다를 천천히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나 싶었다.


에이드를 마시니 피곤함이 제법 싹 가셨다. 다시 움직여볼까 싶어, 초키와 디랜다 눈치를 살펴보았다. 초키는 아직 생생했고, 디랜다는 피곤한지 말수가 적어지고 약간 졸려 보였다. 너무 내 체력에 맞춰, 많이 걸은 건 아닌지 미안함이 사뭇 몰려왔다. 나만 생각하면 힘들어도 태종대는 가보고는 싶은데, 피곤해 보이는 디랜다를 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자니 초키가 마음에 걸렸다.

‘초키는 오늘 여기 한 군데만 왔는데...’

다른데 구경하는 게 좋을 것 같다가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망설여졌다. 거기다 서로 “마음대로” “어떡할까?” “괜찮아” 말만 주고받으니 결정하기가 더 어려울 수밖에.

결국, 서로 결정을 미룰 대로 미루다가, 다른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수다를 얼마나 떨었는지, 해는 어느덧 지고 있었고 하늘에선 붉은빛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노을 보고 천천히 저녁 먹으러 가자며 우린 마무리를 지었다.



햇살은 점점 더 진 노란빛으로 변해가고, 그림자는 더 짙어졌다. 해안 산책로로 내려가려고 길을 걷다 보니 S자처럼 생긴 계단이 하나 보였다. 해안 산책로에 다다르니 바다가 가까이 보였다. 우린 바다를 끼고 나란히 걸었다. 낮에 걸었던 길과는 달리 평평한 길이라 걷기 한결 쉬웠다. 산책로에서는 주민들이 산책코스로 자주 애용하는 듯, 주민들이 운동하고 있었고 관광객이라고는 우리만 있는 것 같았다.

각자 보폭대로 걸어가고 있는데, 디랜다가 저기 보라며 하늘을 가리켰다. 깃털 구름이 노을 따라 붉게, 분홍빛을 내며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기 손톱처럼 작게 생긴 초승달도 구름 옆에서 빼꼼 얼굴을 드러냈다. 부산에서 본 노을은 어찌나 다 이렇게 예쁜지. 멋진 풍경에 마음 한편이 꽉 차올랐다.





뚜벅이 셋이서 부산여행, 2박 3일 여행기

DAY 1: 부산역 - 해동용궁사 - 숙소 해운대 노을해운대 원조 할매 국밥 - 가방 정리 - 영화의 전당& '아틱'관람 - 숙소

DAY 2: 문텐로드&미포 철길 - 모루 식당 - 초키 만남 - 흰여울 문화마을&절영해안산책로 - 깡통시장&자갈치시장- 숙소

DAY 3: 조식 - 용두산공원&부산타워 - 중구 기사식당 - 초량 이바구길 - 명성 횟집&백구당&구 백제병원(핸즈 브라운 카페) - 부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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