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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Feb 15. 2019

인간 쓰레기통(7)

#086_취조

인간 쓰레기통(1): 자동수집

인간 쓰레기통(2): 사건

인간 쓰레기통(3): 인간쓰레기통

인간 쓰레기통(4): 연루

인간 쓰레기통(5): 구치소

인간 쓰레기통(6): 고민

인간 쓰레기통(7): 취조




“위잉 위잉, 모든 재소자는 기상하시기 바랍니다.”


아침인가? 저 나팔소리는 어딜 가나 적응하기 힘들군.


“철컹, 김선우 씨 나오세요”


“무슨 일이죠? 이제 일어났는데 어딜 가는 거죠?”


“취조실로 갈 겁니다.”


“취조? 취조라뇨? 아침도 안 먹었다고요.”


아침부터 취조라니, 진짜 아침이 먹고 싶은 건 아니지만 딱히 시간을 끌 말이 없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벌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새벽부터 취조라니, 뭐가 급한 거지?


“김선우 씨 앞 보시기 바랍니다.”


골똘히 생각하다 보니 두 무장경찰에게 끌려가는 형색이 되고 말았다. 정신 차리자, 어제처럼 당황해선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침착하자.


무장경찰 둘이 나를 취조실 의자에 앉히고 밖으로 나갔다. 역시나 차다, 이런 취조실에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들어와야 하는 걸까? 이번이 끝이라면 좋은 끝일까 나쁜 끝일까?


“김선우 씨 범행 사실을 시인하시겠습니까?”


“시인 이라뇨, 제가 하지도 않은걸 어떻게 시인하라는 겁니까? 그런데 그쪽은 누구시죠?”


시간을 끌 의도였지만 검사로 보이는 사람은 짧게 소개를 마치고 바로 말을 이어갔다.


“중앙지검 유필영 검사입니다. 김선우 씨, 어제 김선우 씨가 있던 아파트의 1시에서 2시 사이 CCTV 영상이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시계의 활동내역도 수정되었고요. 우연인가요? 당시 장소 내 흔적을 남긴 사람은 김선우 씨 밖에 없습니다. 또 유감스럽게도 김선우 씨는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시고, 강의까지 하셨군요.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이걸 진짜 우연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


명확한 범죄 증거는 없다. 당연하다. 내가 저지르지 않았으니. 하지만 지금 세상엔 이 정도도 충분한 증거다. 어제라도 날 처리할 수 있었을 거다. 근데 왜? 준비한 걸 해보자 말이 길어지면 뭔가 알아낼 수 있겠지.


“검사님 시계는 어떻게 조작된 것입니까? 외부 장치 없이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대외적으론 그렇죠. 하지만 김선우 씨 그렇게 빠져나가실 수 없습니다. 시계의 하위 레벨로 접속하는 코드를 알고 계시잖아요. 작년 개인 활동 추적에 반대하는 세력이 하위 레벨 접속 코드를 공개한 것 아시지요? 정부는 장치 업그레이드를 이유로 교체를 권했지만 사실 구멍 뚫린 보안을 막기 위한 일이었지요. 그런데 보세요. 시계를 교체하지 않으셨네요. 이미 그때부터 의도된 것 맞지요? 김선우 씨가 반대세력 집단이라는 거 조사하면 금방 나옵니다.”


이런 게 그들의 방식인가? 시계를 교체하지 않은 일로 나를 반대세력으로 만들려 하다니. 아니, 그들이 의도하면 나는 이미 반대세력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나는 이미 전문 해커다. 한동안 세상일 관심 없이 집에만 있었던 것, 아마 그 시간이 내가 더 해커처럼 보이게 만들어 줄 거다. 이건가? 밤새 준비한 카드가? 이 정도면 명분이 된다. ‘김선우는 전문해커, 1년 전부터 준비’ 이 정도 헤드라인이라면 표를 얻기 충분하다. 어디서 빈틈을 만들어야 할까? 계속해보자.


“영상은 CCTV 영상은 어떻게 조작됐죠? 시계를 조작한데도 제가 CCTV 영상에 접근할 방법을 없을 텐데요?”


“시계 조작이 가능하신 분이 CCTV 영상을 제거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CCTV 영상이 외부 접속으로 지워졌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답변만 하세요 답변만! 여기는 취조실이지 질문을 받는 곳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접근? 로그 파일이 있는 건가?


“그럼 로그 파일 좀 확인해 보시죠. 제가 접근했다는 증거를 봐야겠습니다.”


“김선우 씨에게 증거를 보여 줄 이유는 없습니다. 순순히 범행 사실을 시인하시죠. 사형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형은 피해야 늙어서라도 세상 빛 볼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방법이 없어요.”


도와준다라. 지금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내 자백일까? 지금까지 증거로도 명분은 충분하겠지만 그들이 표를 얻는데 자백이 확실하겠지. 그게 지금 내가 여기 있는 이유일까? 권수천이 다음 대권을 노린다면 이번 법안으로 최대한 많은 표를 얻으려 할 것이다. 어제 선아와 나눈 이야기 대로라면 이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그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이용당하고 있는 건가? 시간을 끌어보자, 지금은 분리하다.


“아침도 안 주고 이렇게 취조해도 되는 겁니까? 지금 몇 시인가요? 아침 주세요.”


검사가 창문으로 손짓했다. 못마땅한 얼굴이지만, 그들이 원하는 표를 얻기 위해선 기자들을 조심해야 할 테니. 아침 식사 한 끼로 마디로 두 가지를 얻었다. 약간의 시간 그리고 두 번째는 저 검사가 권수천의 끄나풀이라는 것. 나를 진짜 범인이라 생각했다면 아침을 줄리 없다. 식사 시간도 아니고 밖에 몰려있을 기자들을 신경 쓸 필요도 없을 테니. 못마땅한 표정을 짓지도 않았겠지.


검사는 일어서서 나를 내리보며 말한다.


“인간 쓰레기통 법안이 뭔지는 아시죠? 이 정도 사건 벌이셨으니 당연히 아시겠죠. 김선우 씨 범행 사실을 시인하고 죄를 뉘우치셔야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죠. 계도기간이 있잖아요 계도기간. 뉘우치는 모습 보이셔야 사람들한테 조금의 동정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지금처럼 자꾸 다른 소리만 하시면 국민들 청원 때문에라도 인간 쓰레기통 시범이 되실 수 있어요. 아침 드시면서 잘 생각해 보세요. 사형은 피해야지요?”


사람들이? 아니지 자백은 너희들이 원하는 거겠지. 어차피 막다른 길이다. 가능한 시간을 끌어보자.


권수천은 법안의 지지를 원한다. 그리도 다음 대권을 노린다면 이번 사건을 이용해 더 많은 표를 얻어내려 할 거다. 아들의 죽음, 동정과 표를 동시에 얻을 최고의 수단이다. 방송으로만 봤던, 명예를 위해 무엇이든 서슴지 않는 그런 사람,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런 유형이라면 자식을 잃은 슬픔 따위 금세 잊을 테다. 아니, 진짜 그가 죽였을 수도 있겠지.


시계의 조작 여부를 확인해 보려는 시도와 CCTV 영상 조작의 진위 여부를 알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고작 준비한 게 이거뿐이라니, 밥 먹는 시간 동안 뭔가 방법을 찾아냈으면 좋으련만. 침착하자, 제발 침착하자. 아마 지금 내 모습에 저 검사도 당황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분명 가능성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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