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 4월 Essay

4월 Essay_ 나에게 한 걸음 앞으로

by 문혜정 maya

브런치에 연재된 플라워 에세이 '일 년, 열두 달 흔들리는 꽃'이 2021년 4월 말,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발간됩니다.


이제 서점에서 만나요!






'일년, 열두달 흔들리는 꽃'은 매월,

하나의 에세이와 그 달에 어울리는 꽃과 사진을 정리한 이야기, 총 2개의 글을 발행합니다.








4월_April Essay

나에게 한 걸음 앞으로 : 나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n 년 전 나는 꽤 어두운 기운에 빠져 있었다.

나에게서 꽃을 배우던 학생 한 명이 꽃집을 개업을 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그녀가 찾아왔던 날을 기억한다. 꽃을 좋아한다고 했고, 꽃집을 하고 싶다고 했다.

꽃을 팔아서 돈을 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만류했고, 꽃을 좋아하는 마음이 돈 앞에서 뭉개질 수 있기 때문에 힘든 일이라고 겁을 주었다.






긴 상담이 끝나고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돌아갔고, 며칠 후 다시 찾아왔다.

고민해 봤지만 그래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좋았고, 용기를 내어 다시 찾아온 것이 기뻤다. 돌쟁이 어린 아기를 키우며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서 찾아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수업 시간 내내 최대한 많은 것들을 전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느는 실력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했다. 가르치는 사람에게 그보다 더 큰 보상은 없었으니.

그리고 몇 개월 후, 수업 시간에 그녀는 내게 가게 자리를 계약했다고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빨랐지만,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가게 개업까지 남은 한 달간을 이용해 과외를 받고 싶다길래, 나는 수업 시간에 말이 더 많아졌다. 시간은 없고 그녀에게 전해 주어야 할 것은 너무 많았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그녀는 감사하다며 떠났고 나는 뿌듯했다. 하지만 나는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는 핑계로 그녀의 첫 가게에 가보지는 못했다.





얼마 후, 함께 수업을 했던 다른 학생이 와서 그녀의 가게에 가 보았는데 나의 스튜디오와 매우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다. 뭐, 당연하지. 내가 가르쳤으니 나와 비슷해지는 건. 나는 쿨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곳이 너무 가깝다고 했다. 빠른 걸음으로 3분 거리라고. 약간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런데 그녀가, 학생들을 모집하고 플라워클래스를 시작했다고도 전해 주었다.

그때는 마음에 뭔가가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쿨해질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내가 쌓아온 것들을 누군가 한순간에 도둑질해 간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내 손으로 그것들을 퍼 둔 것 같았다. 바보. 멍충이. 그런 사람인 줄도 몰라보고!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깊어갔다. 이건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 같았다. ‘어떻게 내껄 똑같이 따라 하지?’하는 의문은 곧 앞으로 나에게 배울 미래의 학생들에 대한 의심으로 번졌다. 이러한 일이 또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그때마다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헤매어야 하나? 아직 가르치지 않은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 헤매며 새로움만을 추구해야 하나?


아니,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면, 나는 어떤데?


내가 가르치는 것들은 나의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과 그렇게 많이 다른가? 나는 그녀의 복제품이고, 약간 변형된 또 다른 복제품들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갑갑한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답을 하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내고 나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꽃을 많이 팔까'에서 ‘어떻게 하면 흉내 낼 수 없는 내 꽃을 할 수 있을까'로 옮겨 갔다. 그저 예쁘게 만들면, 꽃을 더 많이 주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라고 생각하던 게 전부였는데, 이제는 누가 봐도 내가 만든 꽃이라고 알 수 있게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누군가 흉내를 내면, ‘그건 저 사람의 꽃이잖아?’라고 사람들이 알아보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4월에 제주도에서 그녀들을 만났다. 시크한 영국의 플로리스트 자매들을. 오랜만에 학생으로 돌아가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고민하고 그녀들에게서 그 고민의 답을 찾으려고 했다.



기대했지만, 결과는 실패.



나는 그녀들의 테크닉, 감각, 감성을 보고, 듣고, 배웠지만 그건 그녀들의 것일 뿐. 예전의 나였다면 ‘와우! 신문물을 접했군! 빨리 이걸 학생들에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건 미봉책이다. 나는 결국 다시 똑같은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단순한 메신저가 되는 것은 너무나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내 인생은 유일한 것인데 단순히 무언가를 여기에서 저기로 전달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고민의 시간들이 나는 너무 힘겨웠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그래서 역설적으로 고민을 끝내지 않고 계속 이어갔다. 돌아가지 않기 위해 괴로운 시간에 계속 머물렀다.

그렇게 끙끙 며칠을 앓다가 결국 나는 그녀들에게 SNS를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답이 오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컸다. 나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수많은 플로리스트 중 하나이고, 그들은 전 세계를 다니며 강의를 하는 인기 있고 능력 있는 런던의 스타 플로리스트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지만 지금 내가 그녀들을 더욱 특별하게 느끼고 기억하는 건, 그녀들의 꽃을 보고 배웠던 시간 보다는, 돌아와 따로 주고받았던 개인적인 메시지 때문이다.




나는

‘세상에는 플로리스트가 너무 많아요. 별만큼, 모래만큼. 하지만 나는 그 별 중의 하나가 되고 싶지도 않고 그 모래에 또 한 알을 더하고 싶지도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나는 누군가가 나를 쉽게 카피 & 페이스트 할 수 있게 되길 원치도 않아요. 하지만 그러기 너무 쉬운 세상이죠. 어떻게 해야 하죠?’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 메시지는 지금 다시 읽어봐도내 자신이 안쓰러울 만큼 우울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당연히, 답장은 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들의 답장을 기다리기 보다 답답한 마음을 어딘가에 아악! 하고 소리지르듯 털어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며칠 후, 깜빡이는 내 메시지함을 발견하고는 실제로 ‘아악!’하고 소리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드디어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설렘의 표현이었다. 메시지의 발신인은 두 자매 중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어 보이던 언니 플로리스트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메시지함을 열어보니 그녀는 내게,


‘그것은 나의 고민이기도 했어’

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국은, 특히 런던은 훨씬 더 경쟁이 심한 곳이지. 정말 많은 꽃집이 있고, 플로리스트들이 있어. 그리고 그들은 모두 너무나 훌륭해. 꽃은 언제나 스스로 아름답고 그걸 만지는 사람이 내가 아니어도 될 것 같지.

하지만 그 모든 것의 끝에는 네가 있어. 너보다 더 잘하는 사람, 너의 것을 따라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을 거야. 그러니 그냥 네가 원하고 너를 즐겁게 하는 꽃을 해. 있을 거야. 너를 흥분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어떤 것이.’

라고 이야기는 끝이 났다.



너무나 당연한 결말이었다. 특별한 솔루션 따위는 없는, 어찌 보면 평범한 답변.

아니, 어찌보면 시시한 답변.

그러나 완벽해 보이는 그녀들 역시 그런 흔들림이 있었다는 것과 어떤 방식으로든 답을 찾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나의 4월에는 그 이야기가 너무나 강렬하게 박혀있다.

매월, 매일 꽃시장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꽃들과, 쏟아져 나오는 경쟁자와 나를 압도하는 꽃 천재들 사이에서 나 자신을 비교하며 얼마나 주눅 들고, 상처받았는지 모른다. 나도 최선을 다했고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좋은 답을 찾으려고 했는데 왜 나는 이렇게 평범한가에 대해 고민하고 좌절했었다.

하지만 결국 답은 있다.

늘 같은 답일지라도.

누구에게나 같은 답일지라도.

어쩌면 누군가는 이런 결론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다운 것을 하라고? 그래서 도대체 나다운 게 뭔데?’라고, 드라마 대사처럼 소리칠 수도 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인지 아는 건 쉬운 게 아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생각한 그대로 움직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 말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조금 쉽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보다 내가 어떤 것에 흥분하고 행복한지는 조금 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그래서 언제나 마지막은 나 자신의 본질을 찾는 것. 나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것이 곧 내 본질임을, 그 후로도 종종 잊지만, 4월에는 기억해 낸다.
















매월 첫번째 월요일에는 그 달의 에세이를 써서 발행합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그 달에 어울리는 꽃, 직접 만든 꽃, 찍어 놓은 사진을 정리하여 발행합니다.

저의 글과 꽃과 사진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글]

Prologue_꽃도 흔들리는데

12월_Essay: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12월_Flowers: 삼나무/비단향/더글라스/크리스마스부쉬 &Flowers

1월_Essay: 내 속도와 방향이 당신 눈엔 불완전해 보이겠지만

1월_Flowers: 헬레보러스/미모사/산수유/왕버들 &Flowers

2월_Essay: 결국 시작2월 과 끝의 페이지는 내가 넘기는 것
2월_Flowers: 아네모네/수선화/코와니/히아신스/라넌큘러스

3월_Essay: 모든 걸 솔직히 보여줄 필요는 없잖아

3월_Flowers: 설유화/조팝나무/로단테/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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