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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Oct 12. 2022

내 살림과 아이들

엄마의 이름




새로 이사한 집은 방 두 칸에 좁고 허름한 부엌이 딸려있는 초가집이었다. 부엌에는 찬장도 없고 휑뎅그렁한 가마솥 하나만 붙어 있었다. 나는 사과 궤짝에다 보자기를 깔아, 안에는 그날 한 반찬을 넣고, 위에는 씻은 그릇을 올려놓았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지었다.


시골 일이란 게 엉덩이를 붙일 틈이 없다. 밭에다 부지런히 콩도 심고 감자도 심었다. 농사지은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된장, 고추장을 담았다. 점점 배가 불러왔다. 몸이 무거워진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예정일이 다 되어 가마솥 양동이마다 물을 다 채워놓고 며칠 먹을 음식도 다 준비했다. 진통이 시작됐다.


내 나이 열여덟 살,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에 첫째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이름을 진모라고 지었다. 도움받을 부모가 없었던 남편은 처가로 가 엄마한테 산후조리를 해주십사 부탁을 했고 엄마는 딱 하루 와서 미역국을 끓여주고는 더 이상 발길이 없었다.


남편은 남의 밭을 빌어 농사를 지었다. 아침에 밭일하러 가면 늦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동안 나는 혼자 아이를 돌보고 여물을 끓이고, 밭일하며 하루를 보냈다. 소 여물을 주며 생각했다. 이 소가 우리 소라면 얼마나 좋을까? 남의 집 소를 키워주고 받는 돈은 쥐꼬리만 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는 누에도 키웠다. 방 하나에 누에를 키우고 방 하나에 세 식구가 잤다. 누에 키워 벌은 돈은 애 옷 사고 비료 사면 없었다. 3년 후 딸 하나를 더 낳았다.


먹을 게 부족할 때도 많았다. 뭐라도 끼니때 내놓아야 해서 농사지은 옥수수에 감자를 섞고 위에 보리를 흩뿌려 밥을 지어먹었다. 말린 옥수수를 정미소에서 갈아 강낭콩을 얹어서 먹기도 했다. 흰쌀은 두 말 정도 사서 작은 독에 담아 제사 때, 생일 때만 아껴가며 먹었다. 보리가 나기 전 보릿고개 시기에는 감자범벅을 해 먹었다. 감자범벅은 감자에 강낭콩을 조금 넣고 밀가루를 흩뿌려 찐다. 무르게 찐 다음 으깨어 섞어 먹었다.


어느새 내 나이 스물셋, 셋째 예정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미리 해놓을 일이 많았다. 나는 김치를 담으러 부엌 뒤꼍으로 갔다. 좁은 계단을 두 세 층 올라 김칫독에서 김치를 꺼내 내려오는데 언제 밖으로 나왔는지 둘째 딸이 계단을 올라오려고 했다. 나는 한 손에는 김치를 들고 둘째 딸을 피하려다 계단을 헛디디고 말았다. 몸이 기울어지며 계단 아래로 넘어졌다. 순간 팔에 격한 통증이 전해졌다. 팔이 너무 아팠지만 병원이 멀어서 바로 갈 수가 없었다. 아픔을 참고 다음날 남편과 한참을 걸어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팔에 금이 갔다고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배는 남산만 하게 불러 곧 출산일이 다 되었는데 팔을 통째로 깁스를 하게 되었으니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 기브스를 한 채로 진통이 시작되었다.


첫째, 둘째 둘 다 남편이 아이를 받았다. 진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 전 넘어질 때 아이가 돌아갔는지 머리가 아니라 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이 노래질 정도로 진통이 심해졌다. 남편은 난산에 놀라 동네 의원을 부르러 달려갔다. 사실 촌동네에는 마땅한 의원이 없었다. 그렇다고 멀리 갈 상황이 안 되었기에 동네를 뒤져 겨우 산파 한 명을 데리고 왔다. 까무러치기를 여러 번 했지만 아이를 무사히 낳았다. 동네 사람들은 진짜 죽을 뻔했다고 살은 게 천운이라고 했다. 그렇게 셋째 딸이 태어났다. 막내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어느새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의 이름 앞 이야기>

1. 시작

https://brunch.co.kr/@miyatoon/20

2. 프롤로그-영웅 영숙이

https://brunch.co.kr/@miyatoon/37

3. 우리 영숙이는 선생님 시킬 거라......

https://brunch.co.kr/@miyatoon/38

4.호랭이는 뭐하나 저 간나 안 물어가고!

 https://brunch.co.kr/@miyatoon/41

5. 와야국민학교

https://brunch.co.kr/@miyatoon/43

6. 뽕따러 가세

https://brunch.co.kr/@miyatoon/44

7. 남의 집 살이

https://brunch.co.kr/@miyatoon/45

8. 진모 엄마는 키가 시집가서 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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