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림과 아이들

엄마의 이름

by 연은미 작가




새로 이사한 집은 방 두 칸에 좁고 허름한 부엌이 딸려있는 초가집이었다. 부엌에는 찬장도 없고 부뚜막에 휑뎅그렁한 가마솥 하나만 붙어 있었다. 나는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지었다. 사과 궤짝을 구해다가 보자기를 깔아, 안에는 그날 만든 반찬을 넣고, 위에는 씻은 그릇을 올려놓았다.


시골 일이란 게 엉덩이를 붙일 틈이 없다. 밭에다 부지런히 콩도 심고 감자도 심었다. 농사지은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된장, 고추장을 담았다. 점점 배가 불러왔다. 몸이 무거워진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예정일이 다 되어 가마솥, 양동이마다 물을 다 채워놓고 며칠 먹을 음식도 다 준비했다. 진통이 시작됐다.


내 나이 열여덟 살,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에 첫째를 낳았다. 남편이 아이를 받았다. 아들이었다. 이름을 진모라고 지었다. 도움받을 부모가 없었던 남편은 처가로 가 엄마한테 산후조리를 해주십사 부탁을 했고 엄마는 딱 하루 와서 미역국을 끓여주고는 더 이상 발길이 없었다.


남편은 남의 밭을 빌어 농사를 지었다. 아침에 밭일하러 가면 늦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동안 나는 혼자 아이를 돌보고 여물을 끓이고, 밭일하며 하루를 보냈다. 소 여물을 주며 생각했다. 이 소가 우리 소라면 얼마나 좋을까? 남의 집 소를 키워주고받는 돈은 쥐꼬리만 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는 누에도 키웠다. 방 하나에 누에를 키우고 방 하나에 세 식구가 잤다. 누에 키워 번 돈은 아들 옷 사고 비료 사면 없었다. 3년 후 딸 하나를 더 낳았다.


먹을 게 부족할 때도 많았다. 뭐라도 끼니때 내놓아야 해서 농사지은 옥수수에 감자를 섞고 위에 보리를 흩뿌려 밥을 지어먹었다. 말린 옥수수를 정미소에서 갈아 강낭콩을 얹어서 먹기도 했다. 흰쌀은 두 말 정도 사서 작은 독에 담아 제사 때, 생일 때만 아껴가며 먹었다. 보리가 나기 전 보릿고개 시기에는 감자범벅을 해 먹었다. 감자범벅은 감자에 강낭콩을 조금 넣고 밀가루를 흩뿌려 찐다. 무르게 찐 다음 으깨어 섞어 먹었다.


어느새 내 나이 스물셋, 셋째 예정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미리 해놓을 일이 많았다. 나는 김치를 꺼내러 양재기를 들고 부엌 뒤꼍으로 갔다. 좁은 계단을 올라 김칫독에서 김치를 꺼내 내려오는데 언제 밖으로 나왔는지 세 살배기 둘째 딸이 계단을 올라오려고 했다. 나는 한 손에는 김치를 들고 둘째 딸을 피하려다 계단을 헛디디고 말았다. 놀란 순간 몸이 기울어지며 계단 아래로 넘어졌다. 팔에 격한 통증이 전해졌다. 팔이 너무 아팠지만 병원이 멀어서 바로 갈 수가 없었다. 아픔을 참고 다음날 남편과 한참을 걸어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팔에 금이 갔다고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배는 남산만 하게 불러 곧 출산일이 다 되었는데 팔을 통째로 깁스를 하게 되었으니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 기브스를 한 채로 진통이 시작되었다.


산파도 따로 없이 첫째, 둘째를 다 남편이 받았다. 진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 전 넘어질 때 아이가 돌아갔는지 머리가 아니라 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이 노래질 정도로 진통이 격렬해졌다. 남편은 어쩔 줄 몰라하다 동네 의원을 부르러 달려갔다. 사실 촌동네에는 마땅한 의원이 없었다. 그렇다고 멀리 갈 상황이 안 되었기에 겨우 산파 한 명을 데리고 왔다. 자궁 입구에 아기 발이 걸려 까무러치기를 여러 번 하며 마침내 아기를 낳았다. 동네 사람들은 진짜 죽을 뻔했다고 둘 다 살은 게 천운이라고 했다. 그렇게 셋째 딸이 태어났다. 막내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어느새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의 이름 앞 이야기>

1. 시작

https://brunch.co.kr/@miyatoon/20

2. 프롤로그-영웅 영숙이

https://brunch.co.kr/@miyatoon/37

3. 우리 영숙이는 선생님 시킬 거라......

https://brunch.co.kr/@miyatoon/38

4.호랭이는 뭐 하나 저 간나 안 물어가고!

https://brunch.co.kr/@miyatoon/41

5. 와야 국민학교

https://brunch.co.kr/@miyatoon/43

6. 뽕 따러 가세

https://brunch.co.kr/@miyatoon/44

7. 남의 집 살이

https://brunch.co.kr/@miyatoon/45

8. 진모 엄마는 키가 시집가서 컸어.

https://brunch.co.kr/@miyatoon/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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