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양반이었던 내가 안주인이 되다
요즘 난 요리에 푹 빠져있다. 결혼한 지 15년이 넘은 두 아이의 엄마가 요리를 하는 게 뭐 그렇게 새로울까 싶지만 내게는 그렇지가 않다. 퇴근이 일정하지 않고, 출장도 종종 있는 맞벌이 부부인 우리에게는 늘 집안 살림과 육아를 도와주시는 분이 계셨기에 고마운 그분이 평일을 전담해 주셨다. 주말에는 기회가 있었지만 남편이나 나나 '잘하는 걸 하자'는 주의기 때문에 요리는 남편이, 청소나 빨래는 내가 담당하게 되면서 그렇게 나는 부엌에서만은 안주인이 아니라 바깥양반으로 쭈욱~ 지내왔기 때문이다.
운동과 식단에 진심이었던 요 몇 달 동안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나는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다음에 또 와야지~' 했다면, 지금의 나는 '이걸 어떻게 만들지?'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건강하고 무겁지 않은 재료를 맛있고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실제로 만들어 먹어보는 것이 꽤 재미있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Youtube 요리채널들이 도움이 많이 되는데, 특히 DDMINI님의 채널이 가장 쉽고, 맛있고, 내가 지향하는 바와도 일치한다. 당근으로 당근라페를 만들어 당근라페스프링롤 같은 응용 버전의 요리를 해보고, 그저께는 난생처음으로 가지를 구입해서 가지오믈렛과 가지치즈그라탕을 가족들과 나누어 먹으며 뿌듯했다. 이번 주말에는 양배추 시리즈 중 요거트코울슬로와 양배추롤을 만들어서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내가 해도 이 맛이 나올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요리가 꽤 그럴듯한 맛을 가진 음식이 되고, 그것을 나의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참 좋다. 다들 이래서 요리를 하나보다.
딸아이가 자긴 두 가지 로망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하교 길에 친구들하고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엄마가 따끈한 간식을 만들어 놓고 반겨주는 것이라고... 어려운 일도 아닌데 이번 기회에 로망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 주자 싶었다. 와플팬으로 크로플 만들기부터 시작해서, 고구마맛탕, 치즈 없는 치즈케이크 등으로 조금씩 메뉴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이 간단한 요리는 직접 해보고 싶다고 해서 반죽하기나 익힌 재료 으깨기를 맡겨보니 곧잘 한다. 본인이 직접 만든 거라 더 맛있게 먹고 뿌듯해하는 걸 보니 앞으로도 종종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늘 하던 대로 요리는 나와 상관없는 영역으로 굳이 그 상자를 열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운동과 더불어 나와 내 가족이 먹는 음식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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