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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Sep 12. 2018

내가 시급이 얼마인데

아마 이야기 2 / 우주인 (아인 엄마)

 

현재 우리 칠보산 어린이집에는 열다섯 가구가 함께 생활한다. 이 생활이라는 것이 생각보다도 밀접해서 아주 가끔은 우리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보니 다른 가구에 대한 기대도 고마움도 애정의 마음도, 때로는 실망도 미움의 감정도 그 양태가 시시때때로 가지각색이다. 사람 생각은 저마다 다 다를 수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도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기에. 공동체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그 역할을 모든 집에 공평하게 기대하다가는 헛발질하기 일쑤였다.


  통합 방모임에서 돌봄(방학이나 연차로 인해 빠진 선생님을 대신해 아이들의 일일 선생님 역할을 하는 것)을 모든 가구 모든 구성원이 다 같이 돌아가면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모두가 한 번은 경험해야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으로 그걸 대체할까? 하다가 주말청소를 세 번 더 하자, 돈을 십 만원을 내게 하자. 여러 의견이 나왔다. 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우리 하루 일당이 겨우 십 만원이야? 그건 아니지. 하는 말이 터져 나왔다. 나 같아도 십 만원 내고 안 나와도 된다고 한다면 십 만원을 내고 안 나가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게 꼭 십 만원으로 하루 일당이 치환되는 일인가. 그리고 어느 누가 ‘차라리 나 돈 내고 안 나갈래.’ 이렇게 당당하게 본인의 당연한 의무를 피하려 들까. 미안하니까 돈이라도 내자는 말이지, 공동체 내에서 모두의 역할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자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이야기는 흘렀다.


  여러 가구가 모이다보니 다양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그 중에는 업체의 사장님도 대표도, 부장님도 과장님도 오신다. 꼭 이런 직책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나름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 그럴듯한 인정을 받으며 좋은 평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사실 자신의 사회적 관계망 내에서는 자신이 이미 그동안 쌓아온 평판과 지분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니 내가 굳이 무언가를 더 노력하고 시간을 투자해서 나의 이미지를 관리할 필요가 없다. 이미 구축해놓은 자신의 지분 안에서 나는 쉽게 인정받는다. 나는 이미 상대방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공동육아라는 공동체에 오니 이건 뭐, 그냥 0에서 다시 시작이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어떤 유능함을 인정받은 사람인지 아무도 몰라준다. 그러니 열적은 농담을 하다가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아는 것 같으면 “내 직장에서 내 이름 석자만 말해봐! 내가 이런 취급을 받을 사람인가!” 하는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그건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는 부장님으로 내 아이의 담임 선생님으로 상대방을 만난 것이 아니다. 그냥 누구의 아빠, 누구의 엄마로 처음 만나 관계를 맺고 지내는 것이다. 제 아무리 유능하고 돈 많은 마크 저커버그라도 집에서는 그냥 아내의 잔소리 대상이자 아이가 올라타는 한 마리 말이 되는 것처럼.



  자기 이야기라고 뜨끔,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빠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생각을 하게 된 건 사실 내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면서였다. 육아를 하고 나서 육아 전업맘들을 만나게 된 이후 원래부터 아무 일도 하지 않던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다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일해오던 사람들이 지금 잠시 아이를 키우느라 거기서 잠시 멀리 떨어져 나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주 다행히도 잠시 일을 쉴 수도, 원한다면 육아를 병행 하면서 조금씩 내 가치를 인정받는 일들을 꾸준히 해나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보면서 동시에 욕심을 차리자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최근에는 제 작년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 교육부 연구원을 하며 냈던 결과물을 단행본으로 펴내느라 마감에 쫓겨 밤샘하는 일들이 꽤 있었다. 겨우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나갔는데, 별로 바빠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에게 자기 일을 맡기려 들 때. 나는 그 때 버럭 화가 났던 것 같다. ‘아니 누군 지금 한가해 보이나. 내가 지금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너무 부끄럽게도 내 분노는 거기 있지 않았을까.


  엄마들은 비교적 이런 내려놓기가 더 잘 된다. 이미 아이를 임신하고 낳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사회적 지위를 반강제적으로 내려놓게 되는 탓에 이런 과정에 연습이 되어있다. 좀 슬프고 억울한 일이긴 하지만 결코 능력을 인정받아 본 적이 없기에 그런 것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모두 우열이 없음을, 그동안 내가 쌓아온 많은 것들이 모두 제로베이스가 되는 상태로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야 하고 관계를 맺어야함을 경험을 통해 체득한다. 하지만 아빠들은 아이를 매개로 하여 만나는 관계망이 이 공동육아가 처음이다 보니 그 과정이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엄마들끼리 흔히 하는 ‘난 집에 있는 게 안 맞아. 육아는 내 적성이 아니야.’라고 푸념하는 말들도 생각해 볼일이다. 자신의 능력치를 집에서 썩힌다는 식의 육아에 대한 은근한 멸시가 그 지점에 담긴 것은 아닐까. 육아는 적성에 맞는다면 더 좋겠지만, 없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 우리는 모두 초보이고 부적응자다. 그런 까닭에 이렇게 힘들어도 공동으로 함께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돌봄 하루 하라는 말에 “내 하루 일당이 얼마인데 거기 가서 돌봄을 해?“라는 말을 해 본적 있는 사람이라면, 내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여담이지만 사실 쌀 이사님께서 에어컨을 손수 분리해 청소를 해 주셨을 때에는, 맨날 밤을 새는 치치 감독님께서 아이들 캐리커쳐를 그리느라 또 한 밤을 새셨을 때에는 감사함을 넘어 좀 많이 미안하기는 했다. 이런 비싼 인재들을 우리가 이렇게 사적으로 막 유용해도 되나. 그래도 어쩌나. 난 글이나 써야겠다.) 이 집단에서도 그 몸값을 인정받고 싶었던 건 아닌지. 내 욕망의 민낯을 제대로 확인해야 갈 곳 없는 괜한 분노도 사그라진다.


  내 부끄러움을 고해성사 하고나니, 나부터도 다른 사람들의 보답 없는 노력에 좀 더 열렬히 환호해보자고 다짐한다. 오리같이 생긴 내 동반자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나는 그런 소득 없는 일은 안 해.” 그러니 우리 서로에게 좀 더 칭찬과 인정이라는 소득을 주자. 멋진 일들에 박수치기(예를 들면 기타의 환상적인 예술 사진이라든지, 방울의 금손 미싱 실력이라든지)는 이미 다들 너무나 잘 하고 있는 일들이지만, 자신이 한 일을 차마 잘 드러내지 못하는 조합원들도 있다. 우리는 누구도 유형의 이익을 나누어 갖지 않는 집단이기에 작은 노력이나 성취에 대해서도 서로간의 칭찬이나 인정이 필요하다. 공동체 내부에 사적인 친분관계가 없을 때에는 이것이 더욱 절실해진다. 그런 잘하고 있는 일들을 서로서로 발굴하고, ‘잘했어. 잘했어!’ 하며 궁둥이를 쳐주자.



  아. 그런데 말하고 보니 내가 내 동반자에게 가장 못한 일이다. 알고 지낸지 십 년 넘게 이걸 해달라고 조르는데도 난 늘 먼 산 바라보기만 하면서 당연히 알아서 잘 해주기를 바랐다. 이 자리를 빌어 오리 궁둥이도 좀 토닥여야겠다. ‘소득 안 나오는 일 진짜 싫어하는 데 결과도 안 나오는 칠보산 어린이집 홈페이지 관리 하느라 밤새고, 이사로서 내 푸념과 고민 들어주느라 또 밤새고, 앞으로 한 해 앨범 만들려면 또 며칠 밤을 새야겠지. 정말 정말 고생 많았어. 그래도 이렇게 늘 고민을 깊이 있게 함께 나눌 수 있는 오리가 있어 우주인은 정말 든든하다. 당신의 열린 귀와 사고가 늘 감사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접속사는 꼭 비문처럼 느껴지지만 난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오늘도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전의 불만 종자처럼 지금껏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사실 나는 터전 식구들이 정말정말 좋다. 혼자 독박육아 하게 되는 날 아무나 불러내 같이 시간 보낼 수 있어 좋고, 기분 울적한 날에는 엄마 방에서 번개를 소집해 술 한 잔 하자고 판을 벌일 수도 있다. 급한 일이 생겨 아이를 맡겨야 하는 날에는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집이 열 네 집이나 된다. 가끔 반찬을 많이 했다고 가져다주는 사람도, 아이들 입히라고 새 옷을 턱턱 내놓는 사람들도 다 터전식구들이다. 그러니 내 불만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 목차 :::


들어가는 글


시선 공유


터전 살이


아마 이야기


칠보산에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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