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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12. 2019

녹두꽃, 한울 마음을 그리다

녹두꽃통신 - 006


2019년 5월 11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25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국가기념일로서는 처음이다. 

[5회차(9/10화)를 보고 "녹두꽃, 빌다"라는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는데, 미처 쓰지 못한 채 6회차(11/12화)를 보게 되었다. 5회차의 이야기는 무장에서 기포한 동학군이 고부를 재점령한 후 백산에서 결진(結陳)하여 "동도대장소"를 설치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주인공의 주요 동선은 '백이강'이 드디어 동학군에 합세하는 과정이 그려졌다.(이와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회 글에서) ]


6회차는 전주에서 출발한 감영군을 황토현으로 유인하여 동학혁명 최초의 본격 전투에서 전승(戰勝)을 거두는 장면이다.   


주인공의 주요 동선은 백이강이 동학농민군 내에서 갈등을 겪으면서 서서히 명실상부한 동학농민군의 일원이 되어가는 과정. 백이현이 자신을 징집 대상에 포함되게 한 황진사의 음모를 알게 되는 것. 그 밖의 큰 흐름은 실제 동학농민혁명의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특히 오늘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한 뒤 처음 맞이하는 기념일 행사일에 맞춰 황토현 전투를 그려낸 것은, 제작진의 정성(!)이 엿보이는 배치였다. 


녹두꽃, 광화문에 피다 


"다시 피는 녹두꽃, 희망의 새 역사"

광화문 광장 오른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걸린 '동학농민혁명 기념식' 현수막과 독립선언 100주년 기념 전시 현수막. 이 두 현수막은 그저 한자리에 우연히 걸린 것이 아니다. 

[현수막 설명 계속 : 이낙연 국무총리의 기념사에도 소개되었듯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지도자들은 손병희 통령을 중심으로 동학을 재건하여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고, 절치부심 '개벽운동'의 재현을 모색하여, 1919년 3.1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민족대표 중 7명이 동학농민혁명을 이끌던 '대접주'들이었다. 3.1운동은 동학혁명의 재현이며, 동학혁명은 3.1운동의 前史이다. 이후 한반도에서의 변혁, 개혁운동은 동학혁명과 3.1운동이라는 선분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다. 6.10항쟁, 4.19혁명, 5.18광주민중항쟁, 촛불혁명 등등이 모두 그렇다]


본격적인 녹두꽃 - 한울마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장면은 백산결진(기포)에서 황토현 전투에 이르는 기간 사이에 "진산 의병"(진산은 충청북도 금산과 인접한 읍이다)이 먼저 전투를 치렀다는 사실을 배치한 점이다. 이는 녹두꽃에서 '황토현 전투'를 앞둔 동학농민군들 진영에 부상한 동학군(의병)들이 들어오는 장면에서 그려진다. 드라마의 설정과 실제 역사 사실과는 좀 다르지만, 금산과 진산 지역에서 동학군들은 황토현전투는 물론이고 그에 앞선 백산결진과 무장기포보다 먼저 기포하여 관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금산과 진산의 동학군은 사실 '무장기포(1894.3.20)보다 8일 내지 10여일 빠른 3월 10일 전후에 기포하여 한때 관아를 점령했다가, 관군의 반격을 받고 패산하였다. 그들이 전라도 지역의 동학군에 합세한 것도 사실이다.  


주목되는 점은 금산과 진산은 이른바 '북접' 관할 지역이었고 그 주동자들인 이야면, 조재벽, 최공우 접주 등은 해월의 지시에 충실한 접주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1차기포 때는 해월은 기포를 반대했으며, 전봉준을 비롯한 '남접'이 해월의 지시에 반하여 기포를 한 것이다"라는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구체적인 사례라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를 기약한다.


전봉준, '아재 개그'를 하다!


이 녹두꽃통신은 드라마 '녹두꽃'을 '동학과 개벽'의 관점에서 읽어 내는 데 목적이 있다. 오늘 회차에서 "동학과 개벽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弓乙'에 대해 전봉준이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백이강은 어렵사리 동학에 입도(5회차에서-다음 회 글에서 이야기함)하고, 동학군의 최정예 부대이면서 영솔장 최경선이 이끄는 '별동대'에 소속이 되어 훈련을 한다. 그러나 일전에 '거시기' 시절 전봉준으로부터 징치를 받는 과정에서 못쓰게 된 오른손 때문에 총쏘기 훈련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해승(이길강 분)에게 총마저 빼앗기고 만다. 백이강은 '무기'가 목숨인 전쟁을 앞두고 자기 총을 뺏어간 해승에 맞서지만, 출중한 택견 실력자인 해승에게 손 한번 쓰지 못하고 두들겨 맞고 만다. 


백이강은 별동대의 해승으로부터 "총 말고도 무기는 많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듣고, 그(해승)이 보여주었던 무술을 연마하기 시작한다. 그 밤, 무술 연마에 열중하던 백이강에게 전봉준이 다가온다.


전봉준, "제법이구나."

(백이강은 불쑥 등장한 전봉준에게 "'님'이라도 만나고 오시냐"고 농담을 하지만, 전봉준은 썰렁~~, 눈만 껌벅껌벅)

백이강, "(농담을 한 것은) 하도 무게를 잡고 계셔서 쪼까 웃어 보시라고~."

(인용자 주 - 백이강의 농담에, 다음 장면은, 말하자면 전봉준이 자기 나름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전봉준, "이제 곧 전투가 벌어질 터인데,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백이강, "총알도 피해간다는 부적을 등짝에 붙였는데, 급날께 뭐다요?"

전봉준, "부적에 적힌 글자의 뜻을 아느냐?"

백이강, "(머뭇) 나가 인자, 글은 깨쳤는디, 동학 공부를 아직 못해갖고... 그, 궁을(弓乙)이 뭔 뜻인디요?"



전봉준, "약(弱) 자. 한없이 약하고 더없이 힘없는 진짜 약자(藥者)."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아재 개그'다)

백이강, "(어이없어 하며) 워매, 아따, 참말로 고약하네요잉, 싸우려 가면서 나 겁나게약한 놈이요, 그런다고라이?"

전봉준, "그저 그런 싸움이 아니거든. 세상을 바꾸는 건, 항상 약자였다."

(백이강, 놀란, 진지한 눈으로 전봉준을 한참 쳐다본다.)

전봉준, "당수(택견)를 연마하더구나. 손이 불편한 너에겐 좋은 무기가 될 게야."

백이강, "무기는 무슨..."(전봉준 백이강을 지나쳐 간다.)

(백이강은 낮에 해승이 했던, "총 말고도 무기는 많소!"라는 말을 회상한다.)


실제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부적'을 붙이는 것은 전주성 공략을 앞둔 시점이지만,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약(弱)이라는 글자는 "궁(弓)+을(乙)+궁(弓)+을(乙)"로 파자가 된다. 

궁궁을을은 본래 <정감록>에 나오는 말로 알려져 있지만, 동학에 들어와서는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창도할 당시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영부(靈符)'라는 것에서 유래한다. 


(수운) 뜻밖에도 사월(1860년 4월)에, 마음이 선뜩해지고 몸이 떨려서 무슨 병인지 증상을 잡을 수도 없고 말로 형상하기도 어려울 즈음이었다. 어떤 신선의 말씀이 있어 문득 귀에 들리므로 놀라 캐어 물은즉 

대답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 사람이 나를 상제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하시는구나. 이렇게 나타나신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시기를 “내 또한 공이 없으므로 너를 세상에 내어 사람에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니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 

묻기를 “그러면 서도로써 사람을 가르치리이까?” 

대답하시기를 “그렇지 아니하다. 나에게 영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형상은 태극이요 또 형상은 궁궁이니,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길이 살아 덕을 천하에 펴리라.”

나도 또한 그 말씀에 느끼어 그 영부를 받아 써서 물에 타서 마셔 본즉 몸이 윤택해지고 병이 낫는지라, 바야흐로 신선의 약인 줄 알았더라.  (동경대전, 포덕문, 밑줄 필자)


수운 최제우는 한울님이 시키는 대로 (눈에 보이는) 그 영부를 백지(한지)에 그려 불에 사른 다음, 물에 타서 마셨다. 그러자 '몸이 윤택해지고' '병이 낫는'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운이 이 영부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도 직접 영부를 받도록 하여 똑 같이 시행해 보도록 하였더니, 어떤 사람은 병이 나았지만 어떤 사람은 효험이 없었다. 수운이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자세히 살펴보니, 영부를 받고 그것을 탄복하는 과정에서 정성을 들이고 또 공경을 다하여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효험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효험이 없었다. 하여 수운은 궁궁(궁을) 부적의 효험은 받는 사람의 정성과 공경하는 데에 달린 것임을 깨달았다. 


(위 인용문에 이어서) 그러나 이것을 다른 사람의 병에 써 봄에 이르른즉 혹 낫기도 하고 낫지 않기도 하므로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이유를 살펴보니, 정성 드리고 또 정성을 드리어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매번 들어맞고 도덕을 순종치 않는 사람은 하나도 효험이 없었으니 신선의 약이라도 효과가 있고 없고는  받는 사람의 정성과 공경에 있음이 아니겠는가. (포덕문) 


궁궁을을 부적의 효험에 관한 이야기는 본래 <정감록>에 기반한 '민간신앙'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동학에서는 그 효험/효력이 '부적'이라는 '물성(物性)'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한울님을 위하는 데"에 달린 것이라고 재해석, 재정의, 재정위(再定位)해 버렸다. 


이것이 바로 '동학의 개벽'이다. 



최행수는 백이강이 '보부상'으로 변복한 '동학군'임을 알아채고, 전주 객주로 와서 피신하라고 배려하지만, 백이강은 "마음만 받겠다"며 거절한다. 

[사진설명 계속 : 그는 '동학군'과 생사를 같이하는 '진짜 동학군'이 되었음을 이로써 증명해 보인다]


궁궁을을, 궁을, 궁궁, 동학 영부, 한울 마음을 그리다 


수운은 동학 창도 무렵 민간에 널리 퍼진 궁궁을을의 오용(誤用), 남용(濫用), 도용(盜用) 사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우리도(세상 사람들-인용자) 이 세상에  이재궁궁(利在弓弓=이로움이 궁궁에 있음) 하였다네. 매관매작(賣官賣爵) 세도자(勢道者)도 일심(一心)은 궁궁(弓弓)이오 전곡(錢穀) 쌓인 부첨지(富僉知)도 일심은 궁궁이오 유리걸식(流離乞食) 패가자(敗家者)도 일심은 궁궁이라  풍편(風便)에 뜨인 자도 혹은 궁궁촌(弓弓村) 찾아가고  혹은 만첩산중(萬疊山中) 들어가고 혹은 서학(西學)에 입도(入道)해서 각자위심(各自爲心) 하는 말이 내 옳고 네 그르지  시비분분(是非紛紛) 하는 말이 일일시시(日日時時) 그뿐일네. (용담유사, 몽중노소문답가)


이 장면은 조선 말기에 나라가 안팎으로 흉흉하여 고난에 처한 민중들과 세도정치 등에 안정된 삶을 빼앗긴 부자, 세도자들까지 "궁궁에 이로움이 있다"는 <정감록>의 말을 각자 제멋대로 해석하여 '궁궁촌'이라고 알려진 마을로 가거나, 궁궁의 형상을 하였다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서학이 '새로운 궁을'이라고 믿고 그곳에 입도하는 등으로 '각자도생'하는 모습을 그려 보인다.


그런데, 수운은 그 모든 것을 "정성과 공경"이라는 도덕적 태도, 행위, 신념으로 귀착시킨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학의 영부(靈符)'이다. 이것이야말로, 훗날 해월이 '향아설위'법으로 제사의 개벽을 단행하는 제도개벽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해월은 이 궁을에 대해 해석을 남기는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궁을은 우리 도의 부도니 대선생께서 도를 깨달은 처음에 세상 사람이 다만 한울만 알고 한울이 곧 나의 마음인 것을 알지 못함을 근심하시어, 궁을을 부도로 그려내어 심령이 쉬지 않고 약동하는 모양을 겉으로 나타내어 시천주의 뜻을 가르치셨도다.”(해월신사법설, 기타)


여기서 궁을은 결국 '한울이 곧 나의 마음'임을 형상으로 그려 나타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성과 공경의 출발점이 '마음'이라는 것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것이 모두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밝힌 글도 있다. 


경(동경대전, 포덕문)에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영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형상은 태극이요 또 형상은 궁궁이니 나의 이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라」하셨으니, 궁을의 그 모양은 곧 마음 심 자이니라. 

마음이 화하고 기운이 화하면 한울과 더불어 같이 화하리라. 궁은 바로 한울 형상이요, 을도 또한 한울 형상이니 궁을은 우리 도의 부도요 천지의 형체이니라. 그러므로 성인이 받으시어 천도를 행하시고 창생을 건지시니라.

(영부의 형상인) 태극은 현묘한 이치니 환하게 깨치면 이것이 만병통치의 영약이 되는 것이니라.


훗날 천도교 시대에, 이 궁궁(궁을) 영부를 기반으로 천도교를 상징, 대표하는 깃발을 만들었는데 이를 '궁을기(弓乙旗)'라고 한다. 궁을기의 원형부분만을 따로 떼어 '궁을장(弓乙章)'이라고 한다. 궁을기와 궁을장 형상은 대체로 "약동하는 마음(한울)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본다. 하여, 이 궁을기의 모형은 앞에서 해월 선생이 '궁을의 그 모양은 곧 마음 심 자'라고 한 대로 마음 심 자의 변형으로 본다.(마음심의 초서는 궁을을 가로로 쓴 것과 흡사하다)

이런 맥락에서 궁을의 의미를 여러 형태로 파자하여 해석하는 전통이 동학 내부에서도 만들어졌다. 궁궁을을을 '약할 약(弱)' 자(字)로 보는 해석도 그중 하나다. 실제로 민간에서 궁을을 '약할 약'로 비견하여 부적으로 만든 사례도 보인다. 이것은 약자(弱者)를 위한다는 뜻도 있고, 약한것(弱者)처럼 보이는 것[활(弓)도 그중 하나다] 속에 개벽의 힘이 들어 있다는 뜻도 된다. 


녹두꽃에서 전봉준이 보여준 '궁을'의 해석은 그중에서도 가장 '개벽적인 것'이다. 전봉준은 궁을 부적을 등뒤에 붙인 '백성'들이 이 세상을 바꾸는 주체가 된다는 의미가 '궁을'이라는 글자의 의미라고 해석하였다. 이것을 전봉준의 창안이라고 볼 수 없다. 이것은 일찍이 수운 최제우 선생이 동학의 '궁을 영부'가 마음의 정성과 공경을 매개로 그 위력을 발휘하는 '한울님의 부적'이라는 점을 설파한 그대로이다. 


약자(弱라는 글字)와 약자(弱한 것(者))라는 동음어 활용 '아재 개그'


"그저 그런 싸움이 아니거든. 세상을 바꾸는 건, 항상 약자였다."


그러나, 여기서 약자(弱者)는 이제 약자가 아니다. 동학을 함으로써, 약자는 "한울사람으로 거듭 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6회차의 이 장면은 5회차의 "거시기가 백이강이라는 본래 이름을 찾는 것만으로 진정한 '백이강'이 된 것이 아니라, 동학에 입도함으로써 비로소 백이강으로 온전해진 것"로 그러지는 장면과 잇닿아 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 글에서 상세히 다룬다). 


이 녹두꽃이 '궁을(弓乙)'이라는 장치를 (역사적 사실을 건너 뛰어, 동학혁명으 초기 단계인 황토현 전투 장면으로 끌고 온 까닭은 바로 동학혁명이 이처럼 '마음의 혁명으로부터 시작되는 혁명'이라는 점['마음의 혁명으로부터 시작되는 혁명'을 한마디로 가리키는 말이 "개벽"이다]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용한 것은, 탁월하다 못해 천재적이고, 천재적이다 못해 "개벽 그 자체"이다.   


세상을 바꾸는 건 약자, 혁명은 변경에서 일어난다 

"세상을 바꾸는 건, 항상 약자"라는 말은 "혁명은 항상 변경에서 일어난다"라는 말과도 통한다. '변경'이란 '변두리'라는 뜻도 되지만, '소외된 지역'이며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지역'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안'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갇힌다.' 혁명(운동)을 전개한 사람들 절대다수가, 주류가 되는 순간, 그 주류성에 매몰되고 마는 것이 역사 속에서 혁명의 실상이었다. 그래서, 다시 변경이 된 지역에서 그다음 혁명이 준비된다.


그러므로, 경계에 서는 삶은 치열하다. 어떤 기회에 급작스럽게 경계에 설 수도 있으나, 개벽하는 사람은 언제나 경계에 살아간다. 개벽하는 사람이 치열하면서도 평온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가슴에 '불사지약'인 '궁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궁을 영부는 모든 사람, 모든 존재가 품고 있으나, 개벽하는 사람은 그 궁을 영부를 활성화하서 약동불식(躍動不息)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개벽하는 사람의 궁을 영부는 활활발발(活活發發)하기 때문이다. 


경계에 서는 이는 약자(弱者)이다. 그는 자기 권력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전곡(錢穀)을 창고에 쌓아 둘 창고를 갖지도, 창고가 있다 한들 쌓아 둘 전곡을 가지지 못하였기(않았기) 때문에 약해 빠졌다. 그러나 약자인 덕뿐에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궁을 영부'를 지닌 '약자'는 언제나 '약자'에 머무른다. 그것이 '혁명'과 '개벽'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혁명이 쌓여 개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혁명함으로써 개벽이 된다. 그것이 개벽이다. '영구혁명'이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혁명에 혁명을 거듭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이념적이며 이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개벽은 그 자체로 일상적이며, 영구적이다. 마치 궁극적인 입자로서의 '끈'이 '떨림'의 형태로 존재하듯, 개벽은 '항상개벽'이라는 '동적인 상태' "개벽하다"라는 동사형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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