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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pr 03. 2020

근대한국 개벽운동을 다시 읽다

-종교와 공공성 총서 3

[요약]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등장한 ‘동학(천도교),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 근대 한국의 “개벽종교”가 전개한 ‘개벽운동’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들 ‘개벽종교’는 서구문명과 서구적 근대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사상, 종교, 정치사회, 문화, 교육의 전 부문에서 자생적이고 생명평화 친화적인 운동과 문화와 사상의 흐름을 형성하였다. 특히 공공성의 관점에서 새로운 문명을 구축해 간 그 근간으로서 개벽사상과 개벽운동은 최근 전 지구적 기상이변과 감염병의 전지구화 국면에서 새로운 활로와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고 있음을 제1부 인문개벽운동과 제2부 사회개벽운동으로 나누어서 논구하였다.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인류사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 것인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자 수는 2000만 명(군인, 민간인 포함)을 상회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자 통계는 3,000만 명~6,000만 명 사이를 오간다. 양차 대전을 통해 적어도 5천 만 명의 인류가 사망했다. 부상자와 그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까지 합치면 1억 명에 육박할 것이다. 그 안에는 600만 명에 달하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도 포함된다. 양차 대전 후에도 세계는 ‘근대문명의 성장 발전’을 구가해 왔다. 그리고 코로나19를 맞이했다.


각 세계대전 이전에도 수많은 국지전과 대전쟁의 징후들이 빈발했던 것처럼 ‘코로나19’ 이전에도 숱한 징후들이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었다. 사스, 에볼라, 메르스 같은 감염병과 조류독감 같은 질병이 그러하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IS 참극, 시리아 내전 등 최근 30년 내의 국지전을 보자면 전쟁의 소용돌이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1,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비하면 ‘평화로운 시대’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골병이 들어가는 것은 인류만이 아니었다. 지구 자체가 몸살을 앓고, 중병 진단을 잇달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북극 빙하가 소멸 단계에 접어들고, 호주의 산불은 ‘우주적 사태’(우주에서 관측)로 비화한 것이 그 징후, 혹은 확증적 사태들이다. 그리고 이번에 코로나19를 맞이했다. 


전 세계적으로 ‘자가 격리’가 진행되고 있고, 전 지구적으로 이동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산업혁명 이래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이 뜨겁게 더 뜨겁게 달구어져만 오던 인류문명의 엔진이 서서히 그 피치를 줄여가고 있다. 놀랍게도, 인간이 멈추기 시작하자, 지구가 건강해진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렇게나 빨리! 이번 코로나 19사태가 아니었다면, 인간 사회 거의 전체가 이처럼 철저하게 질주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인간의 근대(물질)문명이 속도를 줄이거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입 아픈’ 호소를 지금처럼 눈으로 목격하고 온몸으로 체험하며 실감할 날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이번 코로나19는 인류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 비극적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그나마 축복의 땅으로 갈 수 있는 최후의 열차일지도 모른다. 


멈추고 쉬어야 한다, 그러나 쉬는 동안에 넋 놓고 있을 일은 아니다 

지금도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과 미국, 이제는 남미나 아마존 정글에서 살아가는 부족에 이르기까지 수십억 명의 인류가 코로나19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하여 고투하거나 자가격리를 통한 고립과 고난을 견뎌 내고 있다. 초기에 ‘아시아 변방의 일’로 치부하며 희희낙락하던 ‘서구사회’가 화들짝 놀라 뒤늦게나마 ‘3차 세계대전 급 대응 조치’를 연달아 시행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은 ‘인간끼리 서로 싸우기’를 멈추고 ‘바이러스’라는 공통의 적을 향하여 ‘우리는 하나’가 되고 있다. 이 경험은 오늘 이후의 인류 역사를 써 나가는 가장 기본적인 DNA가 될 것이다. 양차 대전 이후에 인류 사회는 오랫동안 ‘냉전체제’로 갈등하고 지구촌 화약고 중동 지역을 ‘관리’하며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구축하면서 정보화시대를 넘어 ‘4차산업혁명시대’로의 진입까지 내달려 왔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등이 몇 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세계자본’은 위기를 기회로 삼으며, ‘대세상승’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지금까지의 모든 전례를 일거에 무력화하면서 전대미문의 ‘지구촌 올-스톱’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번 사태야말로 근대 산업혁명 이래 2, 3세기에 걸친 근대문명의 발전경로에 뚜렷한 제동을 거는 사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일찍이 150여 년 전에 이미 ‘서구형(形)’ 근대체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일찌감치 ‘근대 이후’ ‘비(非)서구적 근대’ ‘영성적 근대’ ‘토착적 근대’의 길을 제안했던 혜안(慧眼)에 새삼스럽게 주목하게 된다. 


근대한국 개벽종교, 개벽사상, 개벽운동을 공공하다, 실천하다, 읽다 

종교와 공공성 총서 시리즈 - 근대한국 개벽종교, 개벽사상, 개벽운동...


근대 이후 세계는 서구 중심으로 치달아 왔다. 그것은 근대과학과 지리상의 발견을 기반으로 하여 지난 100~ 200년에 걸쳐 제국주의, 식민주의를 전 세계로 확장하고, 그 착취적 체제를 통해 몸집을 불리고 자산(자본)을 축적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서구 근대문명이나 그 결과로서의 현재 세계는 인간이 걸어가야 하는 길의 최선의 모습인지, 세계 모두가 그 길을 뒤따라 가야 하는 것인지 끊임없는 저항과 반론이 제기되어 왔다. 지난 150여 년 동안 한국사회는 그 전반부에 ‘서구적 근대화’ 물결의 흐름에 성공적으로 편승하지 못하여 그 희생자로 전락하였으나, 후반부에서는 기적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근대’의 양 날개를 달고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다. 그러나 세계 차원의 ‘서구 근대문명’ 수립이 그러했듯이 한국사회의 (서구적) 근대화 역시 이룬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깊은 깊이의 희생의 결과일 뿐이다. 


근대한국 개벽종교의 개벽사상과 개벽운동에 주목하는 입장은 이처럼 ‘실현된 근대한국’의 이면에는 ‘실현되지 않은’ 그러나 ‘주체적이고, 토착적이고, 영성적이고, 비서구적이며, 전통계승적인’ 제3의 길이 있었음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 ‘제3의 길’은 한말 개화기에 서구적 근대를 지향한 개화파와도 다르고, 유교적 전통을 근본적으로 고수하려는 척사파와도 다른 “개벽파(開闢派)”로서의 일련의 사상과 운동을 형성하였다. 그 시원이 되는 동학은 1860년에 창도된 이래 다시개벽으로서의 후천개벽을 주창하였고, 천도교로 개신한 이후에는 이를 ‘영성개벽, 제도개벽, 문명개벽’ 또는 ‘정신개벽, 민족개벽, 사회개벽’의 삼대개벽론으로 계승하고 승화 발전시켰다. 동학-천도교는 서구 세력 또는 그 주구로서의 일제나 분단 체제에 끊임없이 좌절을 겪었지만, 한국근대의 주체적인 주역으로서, 최근의 ‘촛불혁명’의 연원이 되었다.  


그 흐름과 궤를 같이하면서 증산의 ‘삼계개벽’, 원불교의 ‘정신개벽’, 대종교의 개천개벽이 개벽파 흐름을 살찌우고 깊이와 넓이를 심화 확장해 왔다. 이들 개벽은 한결같이 “‘민중’이 중심이 되어 자기 안의 신성(神性)을 자각하고 수양하고 구현함으로써 이 세계에 새로운 문명세계를 열어 나가자”는 의식을 공명․공유․공공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였다. 


포스트 코로나 체제를 위한 근본적인 대안의 준비를 위하여  

배 떠나간다, 새 시대로, 새 체제로, 새 세계로

서구 근대와는 다른 방식과 철학적 기반 위에서 인간의 평등성을 주체적으로 설파하였고 제국주의의 확산(침략)에 편승한 일본과 달리 이를 극복하는 독립운동, 공동체운동, 문화운동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사상적, 문화적 자원들을 계발하고 비축하였다. 근대한국의 개벽종교는 ‘종교(서구 근대문명적 개념)’적 실천일 뿐만 아니라 수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한국 전통사상의 창조적인 계승이었으며,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자생적 근대화운동이었으며, 이상의 현실화를 위한 자기희생과 헌신이었다. 동학의 보국안민 운동과 유무상자(有無相資;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서로 도움), 증산의 해원상생, 대종교의 성통공완과 원불교의 정신개벽 등 개벽파의 사상과 실천들은 오늘의 세계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세계로서의 ‘개벽세계’로 나아가는 길로서, 현재와 미래에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다.  


개벽파, 개벽종교, 개벽사상, 개벽운동은 과거의 영광이나 한때의 추억, 이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한국사회는 물론 이 세계가 만인 대 만인, 만물 대 만물의 투쟁 상태를 넘어 서로(만인, 만물)를 한울님처럼 모시고, 살리는 개벽 시대에 적확한 사상, 종교, 철학으로서 예정된 것이라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원불교사상연구원의 “종교와 공공성 총서” 제3권인 <근대한국 개벽운동을 다시 읽다>는  우리나라는 물론 그리고 인류사회가 지금 직면한 과제에 대한 충실한 답변을 담고 있다. 


‘종교와 공공성 총서’ 시리즈로 꾸준히 그 연구성과를 축적, 확장하고 있는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펴낸 이번 제3권은 ‘개벽사상’의 구체적인 실천을 ‘인문개벽운동’과 ‘사회개벽운동’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논구하였다. 발간사의 한 대목은 이 책이 ‘포스트 코로나 체제’ 구축을 위하여 반드시 참고해야 할 사상과 대안을 담고 있음을 웅변해 준다. 


“현대 세계는 문명에 대한 서구적 패러다임과 자본의 운동력으로 인간과 자연, 생명과 평화의 위기 현상이 전 지구적 규모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머지않아 하나뿐인 지구가 파멸에 이르게 됨은 불을 보듯 자명한 상황이다. 이에 우리는 인간과 자연 모두 우주적 생명력이 넘쳐나고 착취가 아닌 외경과 사랑으로 함께 보듬고 나아가는 새로운 문명과 종교 건설을 위해 물러설 수 없는 길을 가려고 한다.”(발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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