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를 읽고
[서평] ≪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 - 한국사회 COVID-19 시민백서≫
모시는 사람들 철학스튜디오 기획, 모시는 사람들, 2020.
모든 시작은 결코 무시할 부분이 아니다. ≪성경≫의 첫 구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기독교의 본질을 알려주듯이, 또한 석가모니가 태어나서 일곱 걸음을 걸은 후에 말한 “천상천하유아위존(天上天下唯我爲尊) 요도중생생로병사(要度衆生生老病死)”가 불교의 본질을 알려주듯이, 그 시작은 원대한 뜻을 담고 있다. 한 번 더 음미해봐야 할 부분이다. 책 역시 마찬가지다. 책 표지에는 그 책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는 표지 그림부터 신선하다. 지구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실제로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국지적 전염병(epidemic)’이 아닌 ‘세계적 범(凡)유행병(pandemic)’으로 선포될 만큼 지구촌 모두의 문제이다. 아니 그 그림은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상징일 것이다.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팬데믹(pandemic)은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여러 환경 문제들이 촉발시킨 것임을-. 우리 인간이 지구를 병들게 한 결과가 고스란히 우리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다시 책 표지 아래로 시선을 돌려본다. 거기에는 빨간색 바탕에도 결코 뒤지지 않을 강렬한 문장이 놓여 있다.
이 문장은 분명 선언이다. 결코 치기어린 선언은 아닐 것이다. 이 선언은 “이제 한국도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리라.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이번 팬데믹에 맞서 성공적인 대응을 보여주었다. 세계 각국이 한국으로부터 방역 노하우를 전수받고 한국식 방역 모델을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놀랍게도 한국은 이제 그 위상이 세계의 선도자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부심이 위 선언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언이 우리 자신에 대한 과도한 자부심만을 언명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이 팬데믹이라는 기점을 통해서 우리가 “세계의 선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성찰해보자는 언명일 것이다. 종합해보면 이 선언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미래를 위한 자기 성찰”을 말하는 것이리라. 이 점은 이 책의 기획자가 누구인지 확인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 기획자는 ‘모시는사람들 철학스튜디오’이다. ‘철학스튜디오’라는 용어부터 대단히 낯설다. 그들은 자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모시는사람들 철학스튜디오는 지구화시대의 한국인문학을 디자인하는 작업실이다. 개벽학을 출판하는 모시는사람들과 인문학을 연구하는 소장학자들이 자생적 인문학을 술이창작(述而創作)하자는 기치 하에 21세기가 요구하는 한국학(K-Studies)을 기획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그들의 정체성은 ‘한국인문학을 디자인하는 소장학자 그룹’이다. 그것도 술이부작(述而不作)이 아닌 술이창작(述而創作)이라는 신조어(新造語)로 자신들을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문학을 디자인한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이를 위해서는 이 책의 기획자의 한 사람이자 인문디자인연구자인 조성환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인문디자인은 인문학과 디자인의 만남이다. 인문디자인에서의 디자인(design)은 “의미를 해석하고 생각을 개념화하는 동사”로서의 디자인(verb)을 말한다. 그것은 익숙한 기술과 트렌드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서 ‘낯선’ 사람과 도구의 근원을 먼저 생각해 소프트한 창의력을 만들어 나가는 활동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문학을 디자인하겠다’는 것은 한국인문학의 의미와 사유를 해석하고 개념화하겠다는 것이리라. 그것은 그렇다 할지라도 어째서 술이부작(述而不作)이 아닌 술이창작(述而創作)인가? 주지하다시피 술이부작(述而不作)은 “옛날의 학술과 사상을 진술할 뿐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창작하지는 않는다”는 공자의 언명이다. 그것은 공자라는 유가의 성인이 보여준 겸양한 학문태도를 대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유가 전통의 겸양하는 가치와 완전히 상반되는 ‘술이창작(述而創作)’을 표명하고 있다. 그것도 자생적인 한국학을 작(作)하겠다는 말이다. 이는 과연 무슨 의미인가? 다시 조성환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지금까지의 한국학은 ‘미래학’이라기보다는 ‘해석학’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기존에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데 주력해 왔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바깥에서 빌려오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의 ‘미래’는,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항상 바깥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었다. 한국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처방을 외국의 유명한 학자에게 구하려는 태도도 이러한 학문풍토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모시는사람들 철학스튜디오가 술이창작(述而創作)이라는 신조어를 왜 내세웠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바깥이 아닌 안으로부터 한국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처방을 찾겠다는, 다시 말해 그들은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시선에서 열겠다는 강한 문제의식의 표출이다.
≪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의 표지만으로도 이 책이 담고 있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어디쯤에 자리하는가를 확인해 본 듯하다. 그것은 바로 이번 팬데믹(pandemic)을 통해 유사 이래 우리가 처음 가져보는 선도적 자부심을 바탕으로 자생적인 한국학을 구축하여 미래를 마련해보자는 것이리라. 그것이 한국학의 인문디자인일터인데, 이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의식을 이 책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