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강한수의 하루

퇴사 처리

by 우주 작가

2033년 11월 18일 금요일.

강한수의 기록을 각색.



“누가 이번에 퇴사한다고 하네.”


“또 퇴사자가 나왔어.”


두 문장은 비슷해 보이지만 기묘한 차이가 있었다. 전자의 경우에는 평범한 퇴사 처리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퇴사하는 사람들의 이유도 다양했다. 회사가 싫어서,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해서, 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 아니면 강제로 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거나 등. 나는 인사팀 직원이었기에 이런 사람들의 퇴사 처리를 하는데 익숙했다. 전망 좋은 회사이고 연봉이 높아도 퇴사할 사람은 퇴사했다. 나와 우리 팀이 아무리 애를 써서 직장인 다니기 좋은 회사로 만들려고 노력해도 싫은 사람은 회사를 떠났다. 위에서는 어떻게든 퇴사자를 줄여보라고 했지만 인사팀인 내가 이 이상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수많은 평범한 직장인처럼 누군가는 회사를 떠나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까지 내가 돌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후자의 경우였다. 올해부터 팀장님이 “또 퇴사자가 나왔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와 달리 나는 퇴사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퇴사를 위해 내가 처리해야 할 업무는 거의 없었다. 퇴사자와 대면, 혹은 서면으로 진행하는 기밀유지각서도 퇴사자가 아닌 팀장님에게 보내면 됐다.


“그 사람들은 좀 안 좋게 나가서… 제가 처리할게요. 한수 님은 퇴사자 짐이나 치워줘요.”


팀장님은 이렇게 이상한 말을 하곤 했다. 기숙사를 제공하는 우리 특성상 퇴사자의 짐이 남아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 짐을 퇴사자가 나가면서 가져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이 짐은 인사팀에서 치워야 했다. 너무 이상했다. 내 물건도 아닌 다른 사람의 물건을 치워야 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이를 기숙사 담당자들에게 다시 넘기는 것도 이상했다.


‘정말 급한 일이 있었나 보지.’


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경우가 하나, 둘도 아닌 한 달에 2~3 건씩 계속 일어나고 있으면 그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도 어디까지나 직장인이라 ‘까라면 까야지’라는 자세로 계속 일해왔다.


그러다가 오늘은 더더욱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인사팀에 새로운 사람이 온 것이었다. 새로운 사람이야 입사할 수 있지만 그의 직책이 이상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조민성이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박민수 팀장님을 대신해서 인사팀을 맡게 되었습니다.”


나를 비롯해서 팀원들은 당황한 표정을 하며 새로운 팀장에게 박수를 쳤다. 너무 이상했다. 팀장님에게 이런 새로운 팀장님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정작 박민수 팀장님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 혹시 박민수 팀장님은 어디로 가셨을까요?”


결국 내가 손을 들고 물어봤다.


“아… 박민수 팀장님은 퇴사자가 되셨습니다.”


문장의 구성이 이상했다. 탈락자도 아니고 퇴사자라니? 무슨 소리야? 그보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랑 웃으면서 말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퇴사자가?


“저… 말이 좀 이상한 것…..”


“그보다 강한수 씨? 저랑 잠시 따로 이야기하시죠.”


조민성 팀장은 내 말을 끊었다. 할 말이 있다니?


나는 조용히 조민성 팀장을 따라갔다. 회의실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박민수 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었다.


“최가은. 정진우, 김선준. 이 사람들을 감시해주세요.”


조민성 팀장은 뜬금없이 말을 시작했다.


“감시요? 이 사람들은…. 아니, 그보다 제가 왜 감시를 하나요? 저는 인사팀이지 보안요원이 아닙니다.”


“회사에 이상한 소문을 내고 다닌다는 사람들입니다. 회사 앞 카페에서 매일 모여서 이상한 소리를 하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이상한 소문이요? 뭐 회사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라도 한다는 건가요? 그거야 직장인이라면….”


“직장인이라면 유언비어를 퍼뜨려도 되는 겁니까? 회사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중 최가은 씨는 퇴사자 어머님을 만나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혼란을 주었고요. “


“어…죄송한데. 이런 것을 알고 계신다면 그분들을 이미 감시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분이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강한수 씨.”


조민성 팀장은 목소리를 깔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제 친구를 시켜서 듣기는 했습니다만 회사 사람도 아닌 친구에게 계속 부탁할 수는 없죠. 그래서 회사 사람인 강한수 씨를 시키는 겁니다.”


전혀 설득이 안 되는 말이었다. 우리 회사는 님으로 부르는데 나를 강한수 씨라고 부르는 것도 나를 압박하기 위한 장치 같았다.


“알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네?”


“아니, 저는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것까지 알려드려야 할까요? 회사는 직원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친절하던 팀장님이 가고 미친놈이 들어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 카페로 제가 저녁마다 가서 몰래 듣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강한수 씨.”


“네.”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쳐다봤다. 나도 그에게 지고 싶지가 않았다.


“휴우. 아무래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드려야 하나 보군요. 인사고과에 반영하겠습니다. 여하튼 계속 옆에서 들으면 아무래도 들키겠죠. 그 카페는 이상하게 사람이 없는 곳이니까요. 제 친구를 철수시키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예 접근하라는 겁니다. 퇴사 클럽. 그런 곳이라고 합니다. 그곳에 접근하세요. 그들의 멤버가 되어서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내게 상세히 보고하세요. 매일 아침 10시에 보고를 진행합니다. 보고서 같은 건 싫어하니깐 그냥 구두로 말하세요. 그리고 만약 해고할 명분이 생기면 바로 저에게 연락 주세요.”


말 하나하나가 개 같은 소리였다. 그냥 스파이 노릇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매일. 내가 대체 왜 이걸 해야 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없는 직장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정말 알겠어요?”


“네! 정말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잘 처신하세요. 그럼 자리 들어가서 일 보세요.. 오늘 일찍 퇴근하셔야죠.”


나는 회의실에 나와서 내 자리로 돌아갔다. 업무도 업무지만 그의 태도 때문에 굴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

.

.

.


밤이 찾아왔다. 나는 퇴사 클럽이 있다는 카페로 갔다. 일부러 조금 늦게 카페에 가니 그곳에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최가은, 정진우, 김선준…그리고 옆에는….? 누구지? 그보다 어떻게 다가가지…?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어? 한수 님 안녕하세요!”


가은이 나를 발견하고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쭈뼛대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뭐야? 아는 사람이에요? 아 여기 회사 앞이지…. 그러니까 회사 앞에서 이렇게 수상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면 안 된다니까.”


모르는 남자가 말을 하고 있었다. 누구지 저 남자.


“한수 님. 커피 드시러 오셨어요?”


진우가 물었다.


“아…네… 다들 커피 드시고 있으시죠?”


이상한 말을 해버렸다.


“수상한데.”


모르는 남자의 반응이었다.


“우리 어때요? 인사팀 멤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가은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적당히 해요. 회사 사람 다 끌어모을 거야? 여기 카페 주인부터 그냥 합류시키지 그래?”


남자가 성을 냈다.


“그만해요. 다들. 한수 님. 저희는 괜찮으니 커피 편하게 마시세요.”


선준이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카운터에 카페 주인은 언제 주문할 거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따가웠다.


“아 죄송해요. 사장님. 저 그냥 뜨거운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저, 가은 님. 잠시 자리 껴도 괜찮나요? 혼자 커피 마시면 심심해서….”


“수상하다니깐.”


저 남자는 나를 반기지 않는 것이 분명했고 가은은 상관없다는 표정, 진우와 선준의 동의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그래요. 여기 의자 가져와서 앉으세요.”


가은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동의는 원래부터 필요하지 않았나 보다.


“안녕하세요. 다들 친하신가 보구나. 아 저분은 제가 몰라서. 죄송해요. 제가 인사팀인데 회사 분 얼굴을 모르는 경우도 있어서요.”


나는 모르는 남자를 향해 다시 인사했다.


“모르는 게 당연하죠. 나는 외부 사람이에요. 카메라 기자. XXTV에서 일하고 있어요.”


뭐 기자? 기자가 왜?


“아 그러셨군요. 뭐 촬영하고 있으셨어요?”


“카메라 없는데요,”


남자는 이름도 안 알려주고 나에게 끝까지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그렇군요. 일단 죄송해요. 갑자기 껴서.”


“괜찮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사팀에 물어보고 싶었어요.”


가은이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가은 님. 괜찮을까요?”


진우가 가은을 말리며 말했다.


“전에 룸메이트 짐을 한수 님이 치웠다면서요? 그것부터 물어볼까요?”


가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 뭐가?”


“저희 퇴사자를 찾고 있거든요. 요새 퇴사자가 잦은데 실종된 것 같기도 하고. 여기 카메라 아저씨는 기자님이 실종되었다고 하고요.”


“가은 씨!”


나는 가은과 남자의 눈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이거…. 정말….. 조민성 팀장이 말한 데로 큰일 날 수 있는 일이구나….


“아…. 그렇군요. 그래요. 어…어…”


그러나 가은이 가지고 있는 의문과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래요. 수상한 퇴사자. 그들을 가은 님과 진우 님, 그리고 선준 님…또 여기 계신 남자분이 찾고 있는 거죠?”


“맞아요. 인사팀인 한수 님이 알고 있는 이야기가 궁금해요.”


가은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민성 팀장의 명령이 아니었어도 나는 이들의 모임에 관심을 가졌을 것 같다. 그래, 이들과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조민성 팀장에게 모든 것을 보고하지는 않더라도 이들과 대화를 나눠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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