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긴다는 사실조차 들키고 싶지 않아서

6회기-2 | 수치심보다 죽음을

by 차원

<6회기 -1 살쪘네? 라는 말이 사형 선고처럼 들렸던 이유>에 이어서 씁니다.







상담자 | 그런 판단을 내리면은 그 사람들과 나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아니면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 같아요? 살찐 거는 관리 안하는 거네요.

쟤 관리 안 했나 봐 살쪘네 이렇게 생각을 하면 그다음에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내담자 | 음.. 제가 그 오랜만에 나갔던 약속에,

친하게 지내던 동네에 사는 동생도 같이 갔어요.

오랜만에 만난건데, 제가 먼저 요즘 너무 살이 쪘다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더니

자기도 느꼈다고 살 좀 쪘네 라고 했거든요.

한동안 모임 운영을 같이 했던 친구라 더 친하게 지내서,

악의를 가지고 한 얘기는 아닌 걸 아는데

'들켰다' 라는 생각이 좀 심했던 것 같아요.


상담자 | 그러니까 그 동생이 차원 씨한테

'살찐거 같았어' 이렇게 얘기했다는 거죠 (네 맞아요.)

그 얘기가 '쟤 왜 이렇게 관리 안 해'

이렇게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할 것 같다는 얘기죠?


내담자 | 네 그것도 있고 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겠지, 라는 것도 있는데

그냥 그거 자체에 대한 어떤 수치감이 좀 심한 것 같거든요.

근데 이게 지금 말씀드렸던 살찌고 뭐 이런 것 뿐만이 아니라

예를 들면은 SNS에 뭔가를 올릴 때도 되게 타인의 반응을 신경을 쓰거나.

예전에는 블로그 같은 거를 한다치면

친언니도 하고 엄마도 하시고 다들 자기가 쓴 거를 공유해요.

근데 저는 아무도 모르게 하고, 안 알려주고.

그런 것들을 되게 절대적으로 숨기려고 하고.

뭐 이런 것들이 약간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고 해야 할까요.


상담자 | 그래요.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차원 씨의 가치가 외모에 많이 치중돼 있나 하는 생각이 좀 들었고요.

또 하나는 살이 찐 걸 보고는 '어디 아프냐' 이럴 수도 있고 '임신했나' 하는 것도 있어요.

살찐 것에 대해서 뒤에 따라오는 생각이 되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들 텐데.

우울증 약 중에 살 찌는 약들이 있어서 미혼 여성분들은

되게 신경 쓰시기 때문에 약 드시는 분들은 제가 그걸 좀 봐드리거든요.

약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관리를 안 하고 있구나,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리시나 봐요.

많은 얘기들 중에 비난하는 목소리가

특별하게 초점이 돼서 들리는 이유가 있을까요?


내담자 | 지금은 완전히 다 큰 성인이니까 옛날 얘기를 끄집어내기도 민망한 수준이긴 하지만, 어릴 때 말랐다가 살이 찌면서 그때 언니나 가족들이 민감하게 뭐 이제 비난을 하던, 그런 말들이 되게 쉽게 오가긴 했거든요.

근데 저는 그런거에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사람이었던 거에요. 그래서 어릴 때 언니랑 한 살 차이지만 그래도 덩치 차이가 많이 났어요. 언니는 키도 크고 이제 덩치도 조금 있었고. 근데 저는 그때 당시에는 말랐었으니까 언니가 부러워하면서도 너는 왜 말랐냐, 말랐을 때도 그게 비난처럼 들려서 학교에서도 막 누가 막 말랐다 하면 되게 그걸 싫어하고.


상담자 | 부끄러움, 수치감을 느끼지 않아야 될 부분에 수치감을 느끼게 돼버렸네요.


내담자 |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냥 이제 초경을 시작하고 이제 살이 찌게 되면서 그때부터는 언니가 너 이제 안 말랐다고 계속 말하는데 그 말 자체가 언니도 어렸으니까 그냥 생각 없이 했던 거 같은데, 그게 낙인처럼 느껴지고. 이번에는 살찐게 죄인거 같고.


상담자 | 언니가 참 질투가 많았는데 그것이 언니의 질투로 느껴지지 않고 낙인처럼 느껴졌네요.


내담자 | 그리고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는 아빠가 아빠로서 여러 가지 교훈 같은 말씀을 많이 하시게 되잖아요.

내면이 중요하고 그 진로도 좋아하는 걸 찾아야 되고 뭐 이런 식으로 되게 이상적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고등학교 이제 3학년쯤에 살이 쪘을 때가 있었거든요. 제가 아침에 또 잘 붓는 스타일이어서. 그 당시에는 좀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게 '왜 이렇게 추해졌냐' 이런 식으로 말씀을.


상담자 |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충격이었겠네요.


내담자 | 근데 가족이니까 그런 얘기 들었을 때 뭐라고 한 번 쏘아붙이고 하기는 해요. 근데 가끔 누군가가 무례하게 나올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래요. 저에 대한 비난의 말을 들으면은 '아닌데'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누가 '너 뭐뭐 하지 않냐 너 뭐뭐 하다 그렇다' 하면은 그게 전혀 아니어도 말을 못하고 '아 그럴 수도 있으려니' 이렇게 돼버리는 게 많아가지고.


상담자 | 네 제가 차원 씨 얘기를 들으면서 제일 섭섭했던 부분이에요.

자기 방어나 보호가 어렵고 그런. 참 속상했겠네요.

가장 믿을 수 있는 가족이 독설을 하면 자기 방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참 어렵죠.

방어하기엔 너무 근거리에 있어서 마음이 많이 다쳤겠어요.


상담자 |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참 많이 들어보셨던 것 같아요.

혹시 긍정적인 평가를 들으신 건 혹시 있으세요?

눈물을 흘리고 계신데 일단 긍정적인 답을 요구해서 미안해요.


내담자 | 가족한테요?


상담자 | 가족, 친구, 연인도. 사회에서는 긍정적인 평가할 때도 있고 싸우면 또 부정적인 평가할 때도 있고 그렇잖아요.

가까운 사람들, 특히 학교 선생님이나 교수님들도 있고 여러 가지 있을 것 같아요.


내담자 | 그런 것도 듣기는 듣거든요. 제가 나쁜 거에 좀 더 예민하게 굴다 보니까 그런 게 있긴 한데. 예를 들면 되게 사고하는 방식이 참신하다 뭐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그런 얘기를 옛날에는 어릴 때는 4차원이나 이렇게 들었는데 그런 게 어떤 거에 도움이 되거나 아니면 좋은 아이디어가 되거나 하면은 저한테는 되게 듣기 좋은 얘기이긴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라든지, 또 글 쓰는 걸 좋아하는데 사실 글 쓰는 게 자기를 드러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 게 좀 참을 수 없이 힘들어서, 익명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다 쓰고 잘 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은 기쁘게 느껴지고, 외모에 대해서도 칭찬 받을 때도 가끔 있었는데 듣기 좋았어요.


상담자 | 어떻게 어떤 식의 얘기를 들으세요?


내담자 | 직장에서 첫 인상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예전에 있던 직장에 동성 사수 분이셨는데 예쁘장한 애가 들어왔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 주셔서 그렇게 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첫인상이 긍정적인 편이구나 그런 이미지이기도 하구나, 되게 기분은 좋았던 것 같아요.


상담자 | 네 저도 이제 차원 씨에 대한 느낌이 참 좋거든요. 첫 번째는 호감 가는 인상이세요. 두 번째는 순하세요. 부드러워요.

이것들은 이미지로 겉에서 드러나는 거고, 제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정말 똑똑하고 심리적으로 섬세하고 민감해서 자신의 마음을 잘 따라가고 타인도 잘 살피세요. 그런 민감성이 주변을 잘 발견해서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우수한 그런 느낌이 참 마음에 드는 분이었어요.

좋은 느낌이어서, 좋아질 것 같은데, 반드시 좋아졌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상담자 | 또 궁금한 점은 차원 씨가 생각하셔야 될 부분인데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긍정적인 평가가 거짓말이 아닐 텐데, 그것들은 자신의 이미지로 간직이 되지 않고 부정적인 평가들은 자신의 이미지로 간직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요.






6회기-2 는 2/17 화요일 오후 9시에 발행됩니다.


오늘은 저와 제 가족을 잘 아는 친척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모두 다 힘들어 말을 안하는거지, 엄마 아빠 언니라고 너한테 받은 상처가 없겠느냐는 얘기를요. 상담 무용론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해명을 하기에는 기다 아니다 하는 일차원적인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아 말을 아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저를 지지해주는 안전기지가 생겼다는 것이 좋았고, 비로소 저 자신과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최근 했습니다. 반년 전의 나였으면 무너져 내렸을 것 같아요. 지금도 무너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회복이 빨라진 것도 같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깊은 사람들은 워낙에 자아상에 대한 기준이 높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별 것 아닌 나 사이의 괴리를 못 견딘다는 얘기인데요. 그 간극을 좁혀가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더리더>의 한나처럼 역린을 숨기기 위해 밖에서 보기엔 말도 안되는 선택들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들키지 않으려 딱딱하게 웅크려있지만, 그 결과 가벼운 말들도 무겁고 날카롭게 받아들이는 연약한 제 자신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아직은 알아가는 중이지만 그 과정에서 저를 드러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음을 끝까지 깨달아보고자 합니다.




처음부터 보기

1회기 상담 <고도로 우울한 33세, 내 인생 첫 심리상담>

2회기 상담 <제가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구요?>

3회기 상담 <모든 일에 의욕이 안나는 '정신 지체 운동'>


4회기-1 상담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술을 마셨다>

4회기-2 상담 <있는 그대로의 내가 드러나면 어떨 것 같아요?>


5회기-1 상담 <내 생각이 옳은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

5회기-2 상담 <미움받고 거절당한다는 공포 때문에 나를 지웠다>

5회기-3 상담 <겉으로는 쿨하고 털털한 성격 속에 감춰둔 건>

5회기-4 # 상담 <착해서 참았던 게 아니라 무서워서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