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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Apr 24. 2017

똑똑한 바보

똑똑함은 저주일지도 몰라!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은 과연 좋은 것일까?


2017.04.06


개나리가 한창이었을 때, 홀로 하늘로 솟아있는 가지가 눈에 띄었다. 비가 온 다음이라 꽃잎도 축 늘어졌거니와, 다른 꽃나무의 꽃들보다 먼저 피어난 탓에 괜히 처량하고 외로워 . 앞선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존재의 가치에 있어서 높낮이는 없으나 우리는 시험 성적 뿐만 아니라 각종 심리검사를 통해 성격적 경향성까지 수치화하곤 한다. 그런 다양한 특성 가운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수치가 아주 높거나 아주 낮은 경우는 도드라져서 주목을 받게 된다. 때로는 '보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소외 당하기도 쉽다. 어쨌거나 '다름'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똑똑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가끔은 아주 멍청다.) 그나마 '똑똑함'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편이지만 알다시피 긍정적인 면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어쩌면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것인데 나만 이런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마음수련 명상을 하고 나서 달라진 점 가운데 하나는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살아오면서 나의 똑똑함이 갖는 긍정적인 면은 학업에 대한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 한 가지가 엄청난 이점이 있었다. 한국처럼 학업을 강조하는 사회구조 속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것이 어쨌든 유리했기 때문이다. 곧잘 알아들으니까 그나마 학교 공부도 재미있는 편이었고, 열심히 하는 만큼 높은 성취를 나타냈다.


그러나 단점이 더 많다. 나는 '똑똑함'이 주는 단점들을 늘어놓으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배부른 고민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심각한 일임을 밝힌다. (똑똑함의 기준과 범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첫째는 끊이지 않는 생각뭉치. 쓸데없는 것까지 머릿속에 기억이 되어 피곤했고, 거기에 달린 생각도 너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는 것을 집요하게 생각하는 예민함에 스스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것이 쉽게 공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스트레스이다.


둘째, 높은 기준에 의한 무기력증. 높은 성취에 익숙해진 탓에 스스로에게 자꾸만 더 높은 기준을 들이댔다. 적당한 목표 설정은 동기부여가 되겠지만 지나치게 높은 기준 설정은 도리어 무기력증을 가져온다.


셋째, 정답에 대한 집착. 시험 문제에는 '정답'이 있지만 삶에는 정답이 없기에 '맞고 틀리고'에 집착하는 마음은 처치 곤란한 장애물과도 같았다. 무엇이 옳은지 안다고 착각했지만 바름은 '앎'에서 오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넷째, 조급증과 완벽주의. 무엇을 배울 때 어렵지 않 익히다 보  빨리 얻는 편이었다. 자연히 효율성을 고집하게 되었고, 원하는 결과를 바로 얻지 못하면 마음이 했다.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사는 것도 틀린 삶이라고 할 수 없는데 말이다. 조급증과 완벽주의는 나 자신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다섯째, 대인관계가 어렵다. 내 생각에 빠져서 대화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꽤 많았다. 내가 가진 기준과 잣대로 세상을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쉽지 않았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더 편.


여섯째, 소외감을 느낀다. 사고방식의 차이는 외로움을 낳았다.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기도 힘들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이것 역시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닌데 다름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일곱째, 꼰대가 되기 쉽다. 내 생각이 옳은 줄 알고 상대 가르치려 들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대화는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상대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도와주거나 알고 싶지 않은데 알려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하지도 못하면서 어떤 부분에서 이해력이 뛰어 것이 무슨 소용이람? 나는 정말 '헛똑똑이'에다 '똑똑한 바보'가 아닐 수 없었다. 안다는 것은 행한다는 것인데 알고도 행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죄책감만 불어나기도 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려나.


다양한 똑똑함이 있으니,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같은 어려움을 겪지는 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 똑똑함은 '저주'라고 표현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자기가 살아온 대로만 세상을 알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자신이 아는 것만 알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진정한 '앎'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제는 '모름'을 아는 똑똑한 바보가 되련다.


똑똑함도 하나의 재능일 뿐이고 똑똑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특별한 한 사람이다. 그렇게 있는 그곳에서, 있는 그대로. 다름을 가진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했을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실감하고 있다. '다름'은 가치의 차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든 모두 똑같이 특별하고 소중하다. 저마다의 빛깔, 저마다의 재능이 함께 빛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그 날과 같은 길을 따라 산책을 하다가 높이 뻗은 개나리를 다시 만났다. 벚꽃 덕분에 전처럼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어서였을까? 정말 아름다웠다.


2017.04.12


"앞서 가는 사람은 외롭지만 세상에 등불이 되는 법이란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담임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사진 뒷면에 이런 메시지가 있었다.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우연히 이것을 발견하고 생각에 잠겼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내가 외로워 보였던 거겠지? ㅎㅎ. 여하튼 가슴이 뜨거워지는 문장이다. 결국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인 듯하다. 해는 동쪽부터 밝아오는 듯하지만, 결국은 세상을 다 비춘다. 저마다의 속도에 우쭐할 필요도, 조급할 필요도 없다.


서로를 밝혀주며 '함께' 걷고 싶다.
by 선명한 새벽빛


2017.04.24

어라라, 오늘 보니 새잎이 많이 나서 무거워졌는지 가지가 고개를 푹 숙였다. 바람에 날려서 올라간 순간에 찰칵. 푸른 잎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며 흔들댄다. :)


어느새 연두연한 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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