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in Oct 16. 2017

만년필, 글씨

손글씨, 너라는 놈 참 밉다.

나는 누구인가 매거진 글입니다. 왜 이런 글을 쓰는지 에 대한 설명글도 썼고 여태 8개의 글을 써 왔습니다. 100개쯤 채우면 불민한 저도 스스로 어떤 인간인지 조금은 알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저도 저를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 글 

1) 순살치킨 

2) 아메리카노 

3) 닌텐도 스위치 

4) 여행 

5) 술

6) 화장실

7) 프라모델

8) 이어폰 & 헤드폰



내 글씨는 더럽다. 아니 물리적으로 더럽다. 잘 못쓰기도 하거니와 이리저리 볼펜 똥이라거나 이런 것들로 자주 더러워지곤 한다. 지금은 만년필을 쓴다. 더 더러워질 확률이 높다. 잉크를 잘 다루지 못하다 보니 잉크가 손에 자주 묻는 편이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없는 돈에 서예 학원 같은 곳도 보냈던 것 같은데. 난 글씨를 참 못쓴다. 게다가 악필의 다수가 그렇듯, 필기구를 강하게 눌러 잡기에 손에 피로도 많이 가서 오래 쓰지도 못한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교 입시에 논술이 있는데도 합격한 게 용하다. 내 글씨를 알아봐 준 조교님께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이러다 보니 손글씨에 대한 애증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만년필을 산 것은 구름 타법을 위해 키보드를 바꾸는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해서였을까? 고등학교 때인지 대학교 때인지 분명한 기억은 없지만 세일러 만년필을 샀고, 제대로 쓰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다음 만년필을 사게 된 것은 좋아하던 이성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년필을 사면서, 내 것도? 하는 생각에 구매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내면에는 글씨를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천재는 악필이다라는 경구에 매달려 사는 줄 알았지만 외부의 평가에서 나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글씨를 제일 많이 쓴 때는 아마도 군 시절이 아닐까. 초창기에는 손편지를 썼었고. 당시에 내게 쓴 나의 편지를 아직 보관하고 있다. 손이 떨려서 여태 다 읽지 못했다. 역시 중2는 불치병이다. 여하튼, 그때에도 나는 내 글씨를 친구들이 못 알아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썼었다. 


회의라는 것을 하면 회의록을 적어야 한다. 하지만 난 그런 걸 잘 못한다. 내용 정리를 잘 못하는 것도 있지만 필기 자체를 못한다. 다행히 랩탑이라는 문명의 이기는 날 거기에서 구원해주었다. 생각해보면 성적이 잘 나왔던 대학 강의는 대체로 랩탑으로 필기를 했던 것들이었다. 거의 들리는 대로 다 쳤다. 손글씨로는 그런 걸 잘 못하잖아? 난 안될 거야 아마 하는 시절은 랩탑이라는 무기를 차고 나서 끝났던 것 같다.


필사를 위한 책을 산 적이 있다.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래도 주제를 아는 인간이기에, 소설이 아닌 시집을 골랐다. 한용운과 윤동주. 윤동주 시인은 시에 대해서 모르지만 뭔가 애틋한 감정이 있어 한용운 시인의 것으로 시작했는데. 아뿔싸, 이 사람 시는 호흡이 긴 것 같다. 필사를 하면서 느낀 또 하나는 글씨를 못쓰는 이유 중 하나가 단기 암기가 안되기에 두 가지에 집중을 못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하거나 요약하여 적는데 집중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우왕좌왕하면서 기억도 못하고 글씨도 개판이 되는 것 같다. 그런 것에 비해서 타자를 치는 것은 비교적 멀티태스킹이 되는 것 같긴 하다. 


손편지를 써달라던 친구가 있었다. 소개팅으로 잠시 잠깐 스친 인연이었는데. 편지를 쓰기 위해 연필로 연습을 하고 만년필을 세척했었다. 하지만 그 친구와 잘 되지는 않았다. 왜일까, 그때의 기억을 지금은 거의 다 지워버렸다. 사람은 힘들 때의 기억을 지우곤 한다던데, 약간 그런 기분이다. 어쨌든 그때 연습을 하면서 난 왜 글씨가 별로지, 그래서 손편지를 쓰는 걸 꺼려했지, 부탁받았을 때 흔쾌히 받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뭐, 어쨌건 글씨를 못쓰는 건 나의 고유한 아이덴티티 중에 하나인 것인데, 너무 미련을 갖진 말아야겠지. 


171016 자기분석.

끝. 

매거진의 이전글 이어폰 & 헤드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