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쓰는 것 자체 그 이상의 효과가 있다. 글을 쓰기 위해 글감을 찾으면 어린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기도 하고, 나 자신의 감정을 비판하지 않고 솔직해진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미워했던 누군가를 이해하는 순간도 온다. 글을 쓰면 내 소유의 무언가가 남겨지기에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또 수많은 세계와 작가, 그리고 콘텐츠와 연결되어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1년이 조금 넘게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는 이렇게 수많은 장점이 나에게 한꺼번에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니 시야도 넓어지고 타인을 이해하기도 하게 된다. 글쓰기의 효용은 무엇보다 감정 정리가 된다는 점이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돌아보고 또 다른 시각에서 상황을 돌아보며 자아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지난 내 글을 돌아보며 퇴고하고 또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내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을 때마다 눈물이 흐르는 글이 있다. 그때의 나 자신이 떠오르기도 하고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하며 읽을 때마다 그 순간의 감정을 다시 건드리기도 한다. 가슴이 몽글몽글해진다고나 할까? 내가 쓴 글을 쓰고도 왜 눈물이 나는 걸까?
1. 한국인이 우산을 꼭 챙기는 이유
브런치작가가 되어서 쓴 첫 에세이는 다음 화면 메인에 올랐다. 출근하면서 마주한 장우산의 행진들을 보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꼭 우산을 챙기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이 글을 예전에 읽은 서울 주재 외국인 기자의 칼럼과 엮어 한국인의 정과 함께 풀어냈다.
말로 표현하는 건 서툴지만 신호등 앞에 누군가가 우산 없이 서 있으면 키가 작은 아주머니라도 있는 힘껏 팔을 높여 우산을 같이 쓰자는 모습. 어쩌면 한국에선 흔한 장면인데 다시 읽을 때마다 반찬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2. 너의 마지막생일을 그곳에선 함께 하길
14년을 함께 한 반려견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사랑하는 가족이었던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서 우울감과 상실감이 심해졌다. 떠나보낸 이후 2달 정도를 계속 울었다. 밥 먹을 때도 울고, 일할 때도 눈물이 났으며, 길을 걷다가도 함께 산책했던 길이 생각나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더 아쉬운 점은 미안함이었다.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 마지막 생일을 잊어버린 후회. 뒤늦게라도 치렀으면 이런 후회가 없지 않았을까?라는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더불어 곁의 누군가가 항상 옆에 있다는 착각에 바쁘다는 핑계로 생일을 함께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쉬울지 상상해보니 더욱더 가슴이 먹먹해졌다.
3. 저승사자 사장님께 배운 진정한 어른의 모습
뉴욕에서 3개월 생활을 할 때 수많은 일들과 추억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일식당 사장님이다. 자존심이 엄청 센 분이어서 진상고객 앞에서 소리치실 줄 알았는데 직원들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머리를 숙이며 하나 남은 자존심까지 다 구겨버렸던 건 나를 포함한 직원들을 향해 뻗은 용기이지 않았을까?
사회생활을 꾸준히 해왔지만 나라도 저런 상황이라면 감정적으로 대응했을 법하다. 저승사자 사장님은 직원들을 위해, 가게를 지키기 위한 책임감으로, 혼자 울분을 삭여야 하는 사장이라는 무게를 감당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걸 다시 상기시키니 눈물이 흘렀다.
4. 나에게 필요 없는 물품이 누군가에게 꽃 피우길
산책을 하며 글감을 찾다 소리를 질렀다. '유레카!'라 외쳤다. 바로 이런 순간인가? 글감이 떠오를 때는 기분이 참 좋다. 우연히 지나간 쓰레기 분리장에서 꽃을 발견했다. 청소 이모님이 쓰레기인 조화꽃을 모아 꽃밭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집안을 차지하는 쓰레기였지만 수많은 물품을 마주하는 그분의 눈에는 새로 태어나는 예쁜 꽃이었을 것이다. 오래된 일화 중에 신발 시장을 개척하라는 사명을 뜬 두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현지에 도착한 A는 모두 맨발로 생활해 팔릴 가능성이 전무하다 했지만, B는 모두가 맨발이라 신발을 팔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이라고 보았다. 나는 과연 세상을 어떠한 필터로 바라보고 있을까?
5. 피자가게 아르바이트생의 특별한 부탁이 잊히질 않는다
디지털 기계로 세상이 좋아졌지만 그건 세상을 버겁게 따라가는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힘든 일일 수 있다. 신문물을 배우고 싶고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지만 어쩌면 힘든 과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즐겁고 편해진 세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성찰을 했다.
따스한 부탁을 건네는 피자가게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전해 들은 부탁을 들으며 며칠 전 아버지에게 짜증 난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으며 그 일을 글로 풀어내니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달까? 누구 하나도 소외할 수 없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과연 나는 누군가를 배려하는 적절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6. 80년을 뛰어넘는 명문의 힘, 빅스비 편지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전쟁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나라를 위해 전쟁에 뛰어든 젊은이들을 보여주고 있다. 네 명의 아들을 전장에 보낸 빅스비 여사에게 보낸 링컨 대통령의 <빅스비 편지>다. 이 중 세명의 아들의 전사소식을 한꺼번에 받게 될 어머니를 위로하며 쓴 문장은 링컨 대통령의 3대 명문 중 하나다.
다른 문화권이자 80년이 넘는 문장이지만 이 진심 어린 마음이 담긴 글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께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널리 퍼져 감동을 주고 있다. 글을 쓴다는 건 바로 이런 명확한 목적과 목표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내가 쓰고도 나를 울리는 글 6개를 소개했다. 글쓰기는 이렇게 나를 돌아보게 하며 다시 읽을 때도 그 감동이 전해져 가슴을 애잔해지게 한다.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나를 치유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읽는 독자들의 가슴을 먹먹해지게 하거나 또 흐뭇한 미소를 띠게 할 수도 있다. 나를 뛰어넘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꾸준히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