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를 비우며
| 선명해지는 나를 마주하기
무엇인가 정리가 안되거나, 우울할 때는 걸으면 좋아진다는 과학적 사실처럼,
걷다 보면 머릿속의 생각과 상상들이 갑자기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브런치 연재를 결정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떠오른 표현들이 내 장바구니에서 벗어날까 봐, 도망갈까 봐,
흘리지 않으려 꽁꽁 싸매고 돌아오는 길이 무척이나 조바심이 났다.
컵 속에 담긴 물이 넘쳐흐를까 봐 조심조심 걷는 것처럼,
내 걸음은 분명 빨랐지만,
머릿속은 천천히 하나하나의 문장을 꼭 부여잡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쓰고 있구나',
아니, '나는 나를 마주했구나.'
그 순간 내가 느낀 건, 나를 바라보는 일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리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던 것일까.
작가 레일 라운즈는 <아주 작은 대화의 기술>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리, 난 네가 좋아.
너는 너만의 방식으로 멋있게 살아가니까'
나만의 방식.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나만의 방식'이 무언지 몰라 헤맸었다.
과연 나만의 방식이 있긴 했던 것일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하지 마!', '안돼!'라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 자란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군대나 사회생활을 겪으면서,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제안하고 싶어도, 망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순히 내 생각을 말하는 것도, 그야말로 '눈치'라는 것을 보는 것이다.
상황이나 상대방의 기분을 예측하고, 짐작하는 능력.
이는 '눈치'로 한국에만 있는 특유의 문화이자 단어이다.
그야말로 '빠른 눈치'를 가지고 사회에 적응하면서,
나만의 방식보다는,
'시스템의 방식', '집단의 방식', '부모의 방식', '타인의 방식', '미디어의 방식', '트렌드와 이슈의 방식', '알고리즘의 방식'으로 살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무형'의 가치를 담은 이야기 <당신의 장바구니엔 무엇이 있나요?> 브런치북을 연재하면서, 책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글로 정리하고,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시간을 통해, 욕심 가득한 제품을 담아내던 쇼핑앱 장바구니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오히려, 몇 년이나 방치하며 쓰지도 않고, 입지도 않는, 왜 샀는지도 모를 물건들을 정리하고, 버리며, 집이 한결 쾌적해졌다. 동시에 생각도 마음도 정돈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동안 나는 장바구니에 이런 것들을 담았다.
프롤로그. 장바구니를 열며 - 당신의 장바구니엔 무엇이 담겨있나요?
아이템 03. 존중하는 소통 - 나의 옮음보다 마음을 건네는 태도
아이템 05. 행복과 즐거움 - 매일 복권에 당첨되는 즐거움
아이템 08. 갈림길 위의 질문 - 정답이 없는 인생의 질문법
아이템 09. 순간 감정 - 녹는 아이스크림에 마음 두지 않기
아이템 10. 가능성 - 네가 했다면, 나도 할 수 있어.
에필로그. 장바구니를 비우며 - 알고리즘은 나를 모른다
모두 내게 필요한 것들이지만, 나는 그동안 눈에 보이는 제품들만 장바구니에 담기 바빴다.
이 아이템들은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다.
그리고, 잡고 있어도 때때마다 놓치게 되는 아쉬운 것들이다.
그렇기에, 인생을 살면서 더욱더 나만의 장바구니에 넣어야 하는 것들이다.
바쁜 도시의 속도에서, 정신없는 일상의 삶에서 챙겨야 하는, 내가 골라 담은 '나다움'인 것들이다.
나는 이 무형의 아이템들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비로소 '나'라는 사람이 선명해졌다.
연재 전에는 그저, '난 이런 사람이야', '난 이런 것 좋아해'라는 식으로 뭉뚱그려 생각만 했었다.
그러나, 브런치북을 쓰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나만의 방식'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갈 것인지, 또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면 좋을지 등 더 뾰족하게 나를 다듬게 된 것이다.
처음엔 그저, 읽은 책의 문장이 휘발되는 것이 싫어 담아두고자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 알고리즘은 나를 모른다
우리는 넷플릭스, 유튜브 등에서 밥친구, 휴식친구를 찾으면서,
'볼 게 없다'며 쉽사리 내 시간을 함께할 콘텐츠를 선택하기 어려워한다.
나는 내 알고리즘에 뜨는 콘텐츠들이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스크롤링을 하고, 리모컨을 수십 번 왔다 갔다 해도 볼 것이 없었다.
알고리즘의 정확도가 떨어졌다고 말할 순 없다.
알고리즘은 분명, 내가 시청하고 들은 콘텐츠 중심으로 맞춤형 추천을 해주고 있다.
심지어 쇼핑할까 말까 망설인 제품 광고까지 계속 보여준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볼 게 없는 것일까?'
첫째, 선택지가 너무 많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번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 우리에게 기술의 발전은 결정하고, 또 결정해야 하는 발 디딜 틈 없는 선택의 연속 위에 두었다. 아무리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콘텐츠 중에 딱 한 개를 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나의 몫'이다. 안 그래도 피곤한 삶에 또 '선택'이라는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다.
과거엔 내가 필요할 때, TV를 켜서 4~5개 중 선택하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영업사원이 우리 집 안까지 따라와 내 귀에 대고,
'이것 좀 보세요'
'저희 제품이 재미있어요'
'얼른 선택하세요'
라며 귀찮게 하는 것 같다.
길을 걸을 때도,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휴가를 가서도,
우리 옆에는 항상 영업사원이 따라온다.
둘째, 내가 '지금' 보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안다면 콘텐츠 선택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나의 기분', '지금 나의 정서적 상태'까지 반영된 알고리즘은 미비하다. 그마저도 내가 오늘의 기분을 '직접' 체크해야 한다. '좋음', '보통', '나쁨'의 미세머지 수치처럼 말이다.
그래서 '볼 게 없어'가 아니라,
'지금 내 기분에 딱 맞는 콘텐츠를 못 찾겠어'가 진짜 의미일 수도 있다.
이는, '내가 지금 느끼는 나의 정서적 니즈가 어떤지 잘 모르겠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우리는 마지못해 선택하고, 또 그렇게 콘텐츠의 굴레에 빠진다.
어느 날인가, 나중에 봐야지 하고 내가 '직접' 담아둔 콘텐츠는 생각만 하다가 저만치 뒤로 밀려나 버렸고,
어느새, 알고리즘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콘텐츠가 직접 선택한 콘텐츠보다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콘텐츠들에 둘러 쌓여 내 감정을 돌아볼 새도 없다. 그래서 결국, 머리를 식히는 피로하지 않은 콘텐츠를 사람들이 찾는다.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연예인들의 가십이나 수다, 또는 귀여운 동물 밈 등으로 일상을 위로하곤 하는 것이다.
분명한 건 내 알고리즘을 바꾸고 싶다면 직접 검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알고리즘이 내게 최선의 콘텐츠를 추천해 주지만,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구매하는 것은 결국, 내가 정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가치를 담을지, 생각하고 결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알고리즘은 내 취향을 예측할 수는 있어도,
지금 내게 필요한 정서적 느낌과 추구하는 가치는 알지 못한다.
그러한 것들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알고리즘도, 친구도, 사주 선생님도, 챗gpt도 아니다.
결국 '나'이다.
<당신의 장바구니엔 무엇이 있나요?> 브런치북의 장바구니를 마지막으로 비우며 생각했다.
알고리즘은 내가 한 선택을 '기억'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고, 내 심리는 '어떤 상태'였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이 장바구니에,
내가 왜 이런 무형의 아이템을 담았는지,
정서적 맥락이 무엇이었는지는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다.
알고리즘은 나를 모른다.
진짜 알고리즘은 내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볼 때 알 수 있다.
그동안 작성한 10개의 무형의 가치를 구매하며 이 장바구니는 비워지지만,
내가 무엇을 담고 비우는 사람인지 알아가는 길이 더 편해졌다.
그걸로, 충분하다.
당신의 장바구니도, 온전히 당신을 위한 것이기를.
마침표를 찍기 전에
처음엔, 그냥 담아두고 싶었습니다.
쇼핑 장바구니보다 서점 장바구니가 가득 찬 것을 보며,
읽은 책의 문장이 휘발되는 것이 아쉬워
흘러가는 생각과 마음을 기록하고 싶어서 시작한 브런치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형의 가치들을 하나씩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삶이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담은 아이템들이 점점 늘어났지만,
이상하게 장바구니는 점점 가벼워졌습니다.
아마도, 두루뭉술하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정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형의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자꾸 놓치지만,
내 삶을 바꾸는 건, 늘 그런 가치들이었습니다.
글을 쓰며 정리된 건, 마음이었고,
마음을 들여다보며 알게 된 건, 나였습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해 소장하고 싶은 아이템들만 담았습니다.
중고로 다시 팔고 싶지도 않고,
사용하다가 잊어버리고 싶지도 않는 것들입니다.
이 글이 당신에게도 그런 시간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잠시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면 충분합니다.
마지막까지 읽어주신
당신도 담아두고 싶은 아이템이 있다면,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있길 바랍니다.
— 콤마엘
*또 다른 이야기로 장바구니를 채우는 중입니다.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동화로 마음을 건네는 이야기. 「어른을 위한 짧은 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