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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Apr 18. 2021

고래싸움에 새우등 벌크업 한 나라, 이집트

feat.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서구 열강들의 피 튀기는 싸움

지난 3월, 수에즈 운하에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좌초되어 물류 업계가 시끌시끌했습니다. 에버기븐호는 길이가 400m, 폭이 59m인 '초초초초대형' 선박입니다. (어렸을 때 100m 달리긴 한 경험을 떠올려 보면 얼마나 긴 길이인지 새삼 와 닿을 듯합니다.) 수에즈 운하의 폭은 280m 정도인데, 400m인 배가 비스듬히 끼어버린 것이죠. 

에버기븐호, 지금은 물에 떴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배가 운하를 가로막으면서 이곳을 지나던 선박 300~400여 채가 장시간 정박했고, 몇몇 배들은 수에즈 운하 통과를 포기하고 희망봉으로 우회했습니다. 정박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세계 경제가 마비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죠. 유조선을 포함한 무역선들의 항행이 막히면서 일시적으로 유가가 6% 가까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좌초 엿새만에 에버기븐호는 가까스로 인양됐고 통행은 재개됐지만, 발생한 손해 규모를 어떻게 정산할 것인지 누가 얼마나 책임을 질 것인지 공방이 한참입니다. 


엄청 막혀 있네요...

이집트의 운하 청장인 오사마 라비는 운하 통행이 막혀 생긴 피해와 인양작업 등으로 발생한 비용 등을 포함해 10억 달러(약 1조 1177억 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하네요...!


항간의 화제인 수에즈 운하...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 것? 

수에즈 운하는 1869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입니다. 하지만 기원전 6세기부터 고대 이집트인들은 (Light 버전의) 수에즈 운하를 뚫으려고 했답니다.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해 살짝 나일강 지류를 이용한 것이죠. 기원전에는 지금처럼 해양 물동량이 많지 않았는데요, 운하 건설의 가장 큰 이유는 국방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군을 홍해와 지중해 쪽 모두에 배치했어야 했는데, 국방 이슈가 터지면 바로 달려갈 수 있게 수에즈 운하를 뚫었다고 합니다. (러시아도 국방 때문에 시베리아 쪽과 유럽 쪽에 각각 해군이 있었다고 해요)



수에즈 운하를 뚫은건 프랑스

놀랍게도 지금의 수에즈 운하를 뚫은 것은 이집트가 아니고 프랑스입니다. 예전에는 수에즈 운하를 뚫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배가 쉽게 넘어가지 않았는데요, 증기선(동력)이 발달하면서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한 번에 물류를 운송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증기선을 운행하기 위해서 중동으로부터 석유를 수급할 니즈도 훨씬 커졌고요. 희망봉으로 돌아가는 석유 값을 고려하면 운하를 뚫고 운하 이용료만 받아도 공사비 뽑고 낫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민자 고속도로를 뚫는 개념이었죠. 당시 공사 비용은 약 2억 프랑으로 추산되었습니다. 2억 프랑을 프랑스가 혼자 부담하기는 부담되다 보니 1억은 프랑스가, 나머지 1억을 다른 유럽 국가에 부담시키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빨라지는 것을...


이를 극혐 했던 국가, 프랑스의 최대 경쟁국 영국. 다른 나라에 공사비를 대지 말라고 해코지를 했다고 해요. 그래서 프랑스는 지금의 이집트 정부를 꼬시는데요. 

너랑 나랑 반반 뿜바이 하자


당시에는 이집트라는 나라가 따로 없이, 오스만 제국의 영토 중 하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 대부분의 돈 있는 사람 (feat. 영주)는 해상 무역이 아니라 육상 무역의 전문가여서 이 제안이 잘 먹히지 않았어요. 이후 이집트가 독립된 후에는 프랑스의 꼬심이 설득력을 얻어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 건설에 재정을 투자합니다. 하지만 막상 수에즈 운하가 완공된 후 이집트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 나머지 재정이 파탄 났고, 프랑스는 거리 상의 문제로 수에즈 운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영국....! (아주 리스펙) 이집트에 재정을 벌충해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하고,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의 운영권을 영국에 넘깁니다. 영국은 수에즈 운하 근처에 영국 군대까지 주둔시킵니다. 그 직후 터진 세계 1차 2차 대전. (세상 일이 참 마음처럼 되진 않죠) 이후 이집트 대통형이 수에즈 운하를 국영화시켜버립니다.


영국은 원수지간이었던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까지 함께 손을 잡고 수에즈 운하를 뺏아 오려고 합니다. 영국과 연합군은 수에즈 운하를 성공적으로(?) 빼앗고, 아이러니하게도 운영권을 이스라엘에 줍니다. 서로 견제했던 영국, 프랑스 중 하나가 운영권을 맡느니 '이스라엘'이라는 바지 사장을 세운 것이죠. 마침 이스라엘도 국가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고요.


그런데 이걸 가만 보지 못했던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당시의 소련과 미국입니다. 소련은 수에즈 운하를 내어 놓지 않으면 핵을 쏘겠다고 협박했고, 미국도 굳이 이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위협에 이기지 못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수에즈 운하에서 철수하고, 수에즈 운하의 권리는 이집트로 온전히 귀속됩니다. 이집트는 가만히 있다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 벌크 업한 셈이죠. 



오는 해적 무서워서, 수에즈 운하로 다녀야겠다

수에즈 운하에 에버기븐호가 좌초하고 난 후 몇 개의 선박은 항로를 틀어 희망봉으로 돌아갔는데요, 이 의사결정이 쉽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① 더 많은 기름값(3억 원 수준)을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고, ② 해적이 두려워서입니다. 수에즈 운하 근처에는 해적이 창궐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청해부대'도 국제기구와 협약해서 근처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제 군대와 해양 경찰이 순시하고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 북향, 남향에 경찰선이 같이 따라가기도 하고요. 

아프리카 해적.. 무섭다

수에즈 운하 통행료, 3억 원 

수에즈 운하의 통행료는 (고속도로 톨게이트급) 3억 원입니다. 전 세계 해운 물동량의 99%는 배로 운송하고, 이 중 8%가 수에즈 운하를 통한다고 해요. 년간 2만 대의 배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고, 이로 인한 수익은 6조 원 수준이라고 합니다. (한국도 수에즈 운하의 대표적인 단골손님입니다.) 이집트 GDP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할  비용이긴 하지만... 대체 불가능한 톨게이트다 보니 비용을 더 올릴 법도 한데요, 예전에 서구 열강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이집트에 수에즈 운하를 돌려준 역사 탓에 이집트가 함부로 금액을 올리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수에즈 운하, 공짜로 너희한테 돌려준 거 알지?)


그러다 보니 이집트 입장에서는 굳이 수에즈 운하를 '최첨단'으로 보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비싼 통행료 못 받을 거 운하 폭을 넓히거나 배가 좌초되었을 때의 대비를 하지 않은 것이죠. 대신 이집트는 제2 수에즈 운하를 뚫는데요. 고속도로로 따진다면 1차선 도로가 2차선이 된 것이죠. 제1 수에즈 운하를 간섭하는 서구 열강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고자 이집트가 온전히 자국의 기술력만으로 운하를 완공한 것이죠. 이 운하를 뚫기 위해 전 국민에게 펀드처럼 돈을 모았고, 고등학생까지도 제2 수에즈 운하 사업에 돈을 냈다고 합니다. (한국판 평화의 댐일까요..?) 제2 수에즈 운하를 건설할 때는 이집트가 '온전히 우리의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품을 많이 들였다고 합니다. 제1 수에즈 운하는 예전에 건설되었다 보니 기술상의 한계로 배가 빠르게 이동하지 못하는데 제2 수에즈 운하에서는 두 배 가까운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댐 사업까지..?

이집트는 제2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면서 쌓은 토목 기술 노하우로 대규모 댐을 건설하려고 합니다. 이 댐의 건설 뒷 배경에는 전쟁 직전까지 가 있는 에티오피아와 이집트의 갈등이 있는데요, 물 부족 국가 대 물 부족 국가의 치열한 싸움 이야기. 차기 에피소드에서 썰 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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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누리

운동과 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석유화학회사를 때려치우고 와인 공부하다 스타트업에 정착했다. 창의성과 영감이 샘솟는 삶을 위해,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과 문장들을 수집 중이다.


(현) '일곱잔' 와인바 사장 @신사

       와디즈 경영추진팀 

(전) 와인 21 객원 기자, 레뱅드매일, 파이니스트 와인 수입사 홍보 대사

패스트파이브 커뮤니티 크리에이터팀

독일 UN 사막화방지기구

석유화학회사 환경안전경영팀

서울대학교 과학교육, 글로벌환경경영 전공

산림청 주관, 유네스코 - DMZ 지역 산림 생태 연구 인턴

한국장학재단 홍보 대사

4-H 동시통역사, 캐나다 파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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