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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Nov 14. 2019

나의 독서 모임 이야기.

15.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Photo by �� Claudio Schwarz | @purzlbaum on Unsplash


※  독서 모임의 진정한 가치는 모임 안에서 어떠한 가치 있는 생각들이 오고 갔느냐일 것입니다. 그러나 곡식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토양을 만들고 성장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듯, 독서 모임 그 자체도 바로 그러한 지적 성장을 위하여 필요한 중요한 토양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독서 모임을 만들어 가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나의 독서 모임 가이드」에서 언급한 여러 형태의 독서 모임을 만들어 가면서 느꼈던 생각이나 경험들을 중심으로 적은 글입니다. 이러한 글을 쓴 까닭은 독서 모임을 새롭게 만드는 분에게는 여러 모임의 형태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함에 있으며, 독서 모임 진행하거나 참여하고 계신 분은 자신과 같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봄으로써 공감을 하고 저처럼 자신의 독서 모임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의도는 이러한 몇 년간의 과정을 들여다봄으로써 「가치 있는 사고를 위한 독서 모임」을 만들기 위한 부단한 사고 활동에 관한 인상이나 느낌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통해, 한 가지 바라는 점은 좋은 독서 모임을 만드는 방법보다도 좋은 독서 모임이 되기 위해 어떤 사고를 했는지를 들여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독서뿐 아니라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을 해주셨으면 하는 게 제 작은 소망입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참고로 이야기는 오래 전의 일을 기억에 의존하여 쓰고 있기에 연재 중에 계속 수정되며 추가될 수 있습니다.


1부 이야기 -「1. 독서 모임을 접하다.」https://brunch.co.kr/@wringkle/115

2부 이야기 - 「2. 독서 모임을 만들다.」https://brunch.co.kr/@wringkle/122

3부 이야기 - 「3. 발췌와 발제의 기준을 세우다.」https://brunch.co.kr/@wringkle/131

4부 이야기 - 「4. 안정적인 장소를 얻다.」https://brunch.co.kr/@wringkle/135

5부 이야기 - 「5. 양적으로 성장하다.」 https://brunch.co.kr/@wringkle/138

6부 이야기 - 「6. 새로운 형태의 독서 모임을 만들다.」 https://brunch.co.kr/@wringkle/142

7부 이야기 - 「7. 지속성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 동아리 창단 계획을 구상하다.」https://brunch.co.kr/@wringkle/146

8부 이야기 - 「8. 난관에 빠지다.」https://brunch.co.kr/@wringkle/148

9부 이야기 - 「9. 새롭게 시작하다.」https://brunch.co.kr/@wringkle/149

10부 이야기 - 「10. 도움을 받다.」https://brunch.co.kr/@wringkle/150

11부 이야기 - 「11. 도움을 주다.」https://brunch.co.kr/@wringkle/153

12부 이야기 -「12. 영화, 미술과 관련된 독서 모임을 만들다.」 https://brunch.co.kr/@wringkle/154

13부 이야기 -「13. 좋은 모임을 위한 'One Page 기획서' 작성 요령.https://brunch.co.kr/@wringkle/156

14부 이야기 -「14. 계속되는 도전.https://brunch.co.kr/@wringkle/162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끝에는 언제나 다시 시작이 있음을.  

나의 독서 모임 이야기도 그렇다. 내 인생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독서와 모임도(그리고 이 글도….) 이제는 끝이라고 여기는 한 부분에 이르렀다. 그동안에 했던 모임들은 그 성격이나 주제가 모두 달랐지만, 지향하는 바는 같았다. 우리는 누군가 깊은 사색과 연구를 통해 완성한 저작물을 읽음으로써 그의 생각을 공유했고, 다시 그것을 대화와 토론을 통해 공동체에 공유했다. 이렇게 가치 있는 생각은 저자에서 나 자신으로, 자신에서 타인으로 공유되어 갔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그가 바라보았던 세상을 외롭지 않게 누군가와 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모임 안에서 ‘가치 있는 생각이 공유’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모임들은 세상사를 잠시 벗어나 공간 안에서 깊이 있는 생각을 나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 자신이 드넓은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이 아니라 서로 의식하며 함께 이어진 연대임을 깨닫게 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는 것은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존재 역시 나처럼, 살아 있고 생각하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독서 모임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게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이러한 느낌과 환희는 언제나 내게 삶을 견디고 또한 모임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나의 독서 모임 이야기」를 쓰면서 그동안 독서 모임을 하면서 썼던 여러 글을 살펴보았다. 모임의 홍보나 선정도서에 관한 생각을 적은 글, 도서 내용에 대한 요약이나 홍보를 위해 작성한 글, 발제문을 만들려고 작성했던 글, 후기 글 등…. 써 둔 글들만 모아도 책 한두 권은 족히 나올 것만 같았다. 그중에서 오래전에 미술사 모임을 하고서 후기를 적은 글이 눈에 띄었다. 그 글은 단순히 미술사 모임이나 예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가 수많은 독서와 모임을 통해 느꼈던 것이나 아쉬움을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래의 글을 읽을 때에는 ‘미술’이나 '예술'이라는 단어에 대신  '독서'라는 말을 집어넣어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뿐 아니라 이는 앞으로 시작할 새로운 모임에서도 끊임없이 추구하고 보완해야 한 방안이기도 했다. 그러한 글이기에 이 연재의 마지막에 이 글을 남기는 게 적합하다고 느꼈다.  


 

인생도 모임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이야기는 언제나 마지막이 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이 글을 보고 있을 그대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이 글을 보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히 독서 모임에 대한 관심사가 있어서 여기까지 왔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당신에게 진정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모임을 통한 기쁨과 어떤 의미를 발견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독서 모임을 통해 읽고 토론한 것뿐 아니라 모임 자체가 주는 의미를 느끼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그리고 인생사에 지치고 갈 곳을 잃어, 할 수 있는 거라곤 컴퓨터나 스마트폰 앞에서 슬픔과 허무함을 감춘 채 우울의 그늘 속에 있을 그대가, 이 글을 보고서 자신만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시작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나는 소망한다.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니까.  

이 마지막 장의 다음 페이지에는 당신의 이야기가 기록될 수 있기를.



모임장으로서 독서 모임 후기
서양 미술사 모임

우리는 이 책을 약 4개월 동안 니체가 말한 "슬로 리딩"이라고 부른 책읽기의 전통을 따라 읽어나갔다. 단순히 책을 읽고 덮은 것이 아니라 여럿이 모여서 한 문단을 함께 읽고 그 문단에 담긴 다양한 의미와 어조,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사이의 전후 관계(context) 등을 고려하며 읽어 나갔다. 또한, 각각의 그림을 단순히 몇 초간 훑어보는 것이 아니라 프레젠테이션과 확대경을 활용하여 어쩌면 전시회에 가서 보는 것보다 더 세심하게 그림을 감상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해나갔다. 아마 참여했던 사람 중에는 이러한 책읽기 방식은 처음이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의 문장과 문단에 담긴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토론식 모임은 깊이 있는 책읽기에 도움을 준다. 하루에 나가는 페이지 수가 몇 장 안 되므로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생각으로 발을 디디면 누구나 독파할 수 있다. 그러나 긴 기간에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게을러질 수 있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한두 번 빠져도 괜찮겠지 생각하다가는 어느새 큰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더군다나 모임에 불참하게 되는 것에 관해 강제성을 부여하기도 쉽지 않다. 지나친 강제성으로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기보다는 자발적이고도 성실한 참여를 유도하면서 즐길 방안으로 프로그램을 설계해야만 했다. 앞서 언급한 ‘천릿길도 한 걸음’이라는 속담처럼 어떤 두려움 없이 가볍게 한 걸음을 떼기 위한 전략으로 접근해야만 했다.

이러한 독서 모임의 장점은 대화를 통해 여러 통섭적 생각들을 이끌어 낼 수 있고 그를 통해 세상을 읽는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어려운 책을 읽지 않아도 일정 부분 어려운 책에서 다룰 법한 내용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들을 토론을 통해 도출할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다. 그러나 이 점은 또한 단점이 되기도 한다. 특히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생각을 만들어 냈지만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지 않는다면 생각만 즐비하게 늘어놓는 꼴이 된다. 말하자면 일관된 글이나 생각으로 풀어내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게시판에 우리 친구들이 후기를 쓰지 않는 까닭도 단순히 게을러서라기보다 시간적으로나 책의 분량적으로나 너무 많은 생각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 때문일 것이라 믿는다.)

대학생활 가운데 못해볼 가치를 경험했다는 측면으로 이 모임이 가치가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끝나는 시점이면 아쉽고 내게 전보다 더 많은 숙제를 안겨준다. 가벼운 푸념이지만, 서양 미술사를 통한 미술 지식 습득으로 인생의 숙제 중 일부가 줄어들 것 같았는데, 읽어야 할 책과 궁금증은 더 많아졌다.


앞의 푸념이 모임의 참여자로서의 숙제라면, 진행자로서의 끝나지 않는 숙제도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지적 자극을 줄 수 있을까?’의 문제와 ‘모임에 어떻게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할 것인가?’에 관련된 문제와 관련된다. 말하자면 지적 자극을 통해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모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진행자로서의 실천의 문제였다. 그러한 실천을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1. (비교적 가벼운 또는 효과적인) 질문을 통해 ‘생각을 하게 한다.’

2. 누구나 브레인스토밍이나 토론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3. 성실한 참여를 위하여 모임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

  

현명한 사람은 바보가 현명한 답에서 배우는 것보다 바보 같은 질문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 많다. - 이소룡
A wise man can learn more from a foolish question than a fool can learn from a wise answer. - Bruce Lee

 

첫째, 생각을 유도하는 것은 진행자로서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깊이 읽으면서 계속 자신의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적절하게 자극을 줘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함께 책을 읽다가도 쉽게 공상에 빠진다. 말하자면 컴퓨터의 CPU가 어떠한 명령어를 처리하고 있지 않을 때 연산을 쉬는 것처럼 우리의 뇌도 '우리가 지금 생각을 해야만 해'라는 자극을 주지 않으면 쉽게 생각을 멈추게 된다. 그래서 나는 문단이 끝나면 그 단락에 관한 자신의 생각이나 달리 할 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나의 완성된 글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보다 비교적 짧은 한두 개의 문단에 대해서 요약하고 생각하기는 비교적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처음부터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면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말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진행자는 그 점을 고려하여 가벼운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질문으로부터 나오는 답변을 통해 점점 심도 있는 질문으로 발전시켜나가는 편이 좋다.

둘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타인의 말을 귀담아듣고 되도록 말을 끊어서는 안 된다. 생각을 하면서 하는 말 가운데에는 이따금 문맥을 못 잡고 하는 말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고 왜 그러한 말을 했는지 생각하다 보면 그 말의 맥락이나 발언자가 알고는 있으나 잘못 짚은 점을 잡을 수 있고 그 점을 바탕으로 서로 깊이 있는 토론을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것을 귀담아듣거나 잡아줘야만 하는 다른 까닭 중 하나는 한 사람의 모호한 발언 또는 잘못 짚은 발언은 다른 말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와 유사하게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모임의 의미부여는 대체로 그들이 여기서 경험하거나 발언을 포함하여 행동하는 어떠한 행위를 통해 부여된다. 각자가 의미부여를 하게 되는 시점에 우리 모임이 가진 목적이나 방향을 되짚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서양 미술사를 이야기하면서 그 시대의 배경에 대해서 사전 서술하는 것과 상통한다. 시대의 배경에 대한 지식을 미리 인지함으로써 해당 시대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를 더욱 쉽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모임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해 상기시켜주기만 해도 자신이 이곳에 참여하는 까닭에 대해 의문을 지워줄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위의 사항을 잘 알고 있더라도 모임을 진행하는 것은 진행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스타일 가운데 이것을 잘 녹여내는 것이 필요하다. 나 역시 이것을 잘 녹여내는 것이 진행자로서 가져야 할 변함없는 숙제이다. 그리고 그 숙제의 성공은 내가 아닌 참여자들의 평가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참여자들에게 있어서 이 세 가지는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면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고 모임에 애착을 갖게 되면서 각자 의미 부여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운영자 개인의 지적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언정, 모임이 위의 세 가지 조건에 맞지 않는다면 만족스러운 모임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수년간 다양한 형태의 독서 모임을 해 오면서 경험했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며 끝나지 않은 숙제에 대한 노하우이다.

 

20세기 과학사를 뒤흔든 이론 중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만큼이나 유명한 '카오스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흔히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면 뉴욕에서는 폭풍우가 발생한다.’라는 '나비 효과'로 잘 알려진 이론이다. 나비 효과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 강렬하지만, 그것은 비유적인 설명일 뿐이고 카오스 이론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핵심은 '초기 조건의 민감성'에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우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처럼 말하자면, 언뜻 사소해 보이는 초기 조건이 민감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바둑에서 어떠한 형세를 만드는 것은 사소한 바둑돌 하나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때이다. 이 중요한 위치는 바둑의 형세를 전환하지 못하고 끝까지 그 흐름에 따라갈 수밖에 없게 만들기도 한다. 카오스 이론이나 바둑에서의 형세 전환이나 알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어떤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초반에 감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형세는 우리 사회에서 대체로 어떠한 조짐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 만들어지고 굳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조짐에 따라 전체의 흐름이 변화될 수 있다.

형세에서 초기 조건, 즉 처음에 설정한 원칙과 패턴이 굉장히 중요한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모임 역시 처음에 원칙과 기준을 설정하고 분위기를 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모임에서 사소한 부분이라도 초반에 그 현상이 일어났을 때 그 부분을 고민하거나 바로잡지 못한다면 앞으로 그 부분이 굳어져 바꾸기 어렵거나 혹은 다른 커다란 문제로 나타나게 되기도 한다. 초기 조건의 민감성은 거대한 자연이나 주식 시장뿐 아니라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어디에서나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모임을 만드는 데에도 참여자들이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만한 원칙들을 정한 까닭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부분의 카오스뿐 아니라 긍정적인 부분의 카오스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한 방향과 원칙 아래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풀어준 부분 역시 분명히 필요하다. 자유로운 생각을 고취하도록 하는 것, 긍정적인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 등이 바로 그러한 긍정적 나비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장치였다.

 

모임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얻어갔을는지 모르겠다. 아쉬운 것 하나를 굳이 들자면, 출석에 대한 원칙을 크게 두지 않고 개인의 자율에 맡기거나 출결에 대해 민감하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참여 인원에 대한 평균치는 대체로 예상 범위 안이었던 11명 중의 6명~8명가량이었다. 이는 토론 인원으로는 적은 편이 아니었고 비교적 골고루 돌아가며 이야기할 수 있는 수치이기도 했다. 행여 모두가 매일 참석했더라면 오히려 효율적인 토론과 어떠한 주제에 대해 비교적 긴 논의는 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다만, 모두가 열심히 참여하지 못할 것을 참작하여 충분한 인원을 뽑는다는 것이 때때로 서글플 따름이다.

여하튼 간에 참여했던 모든 인원이 모쪼록 부정적인 느낌보다 긍정적인 느낌과 의미를 받았으면 싶다. 그것이 자유로운 모임의 분위기를 통해서든, 서양 미술사 책과 작품을 통해서이든, 그 안의 사람을 통해서이든 상관없다. 모든 것들은 의미로 담을 수 있으며 그 의미가 자신의 가치 있는 삶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모임은 성공한 것이라 본다.

 끝으로, 예술은 바쁜 일상 가운데 자신을 잠시 멈춰 서게 만들고 표면에 드리워진 안개를 걷어 그 안에 담긴 본질을 생각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최고의 선물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바쁜 나머지 이 세상 그 누군가가 주신 그 선물을 열어보지 못할 때가 많다. 이 모임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예술의 목적에 한 단계 앞으로 가는 것이다. 예술가가 만들어낸 그들의 정수를 우리가 함께 따라감으로써 우리를 미소 짓게 하고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예술을 보는 이유이며 내가 여러분과 모임을 하고자 한 본질적인 이유이다. 나는 우리가 함께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눈 이 모임을 통해 우리가 조금 더 인간다워질 수 있기를 바라며 조지프 콘래드의 글 가운데 한 문단을 뽑아 여기에 남긴다.


세상사로 바쁜 손길을, 한 번의 호흡을 하는 순간이나마 멈추게 하고, 요원한 목적의 광경에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로 하여금 주위를 둘러싼 형태와 색채, 햇빛과 그림자의 비전을 잠시 보게 하는 것, 하던 일을 멈추고 한 번 보게 하며, 한숨을 한 번 쉬게 하고, 미소를 한 번 짓게 하는 것, 이것이 어렵고도 덧없는 예술의 목표인데, 이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성취할 수 있도록 예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자격이 있거나 운 좋은 사람들에 의해 이 목표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가 성취될 때 - 보십시오! - 삶의 모든 진실이 그곳에 나타납니다. 비전의 순간이, 한숨과 미소가 - 그리고 영원한 안식으로의 회귀가 말입니다.

《조지프 콘래드『나르서스호의 검둥이』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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