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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May 05. 2024

[죽음]이 계속 나에게 묻다.

생명의 열쇠, 문제를 풀어라.


일반 인간이 논제로 꺼내기 싫어하고 꺼리는 단어가 ‘죽음(Death)’ 이다. 희망이 아닌 절망과 어둠을 지향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죽음이 찾아 왔을때 나는 처음 맞는 죽음에 대해 이런저런 내 느낌과 심경을 말하고자 하는데 위문온 사람들 모두가 입에 올리는 자체를 질색을 한다. 뭔 말을 못하게 막는게 생각조차 싫어다. 단순히 나오는대로 수다를 떨어보려 해도 넌 살수있다고 그런말 하지 말라고 말도 못 꺼내게 한다. 그냥 죽을수도 있지 뭘 그렇게 정색까지..


다들 죽음에 대해 의무적으로 호들갑 떨어야 한다고 생각 하는것이 영화나 드라마들 너무 봤다. 대본쓴 작가들 배우 감독들 전부 죽어본적 없는 사람들이다. 다들 남들 써논거 참고로 복사 재생산 하니 판에 박은듯 다 그게 그거인거다.



드라마 영화에서 보여주듯 대다수 인간들에게 있어 죽음은 곧 이 세상에서 퇴출된다고 하는 공포이고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겪어야 하는 고통의 끝을 의미한다. 죽음의 고통을 몇년간 주기적으로 겪어본 입장에서 경험담을 말해본다면 불시의 사고가 아닌이상 모든 죽음은 육체적 고통의 한계에 내몰려 결국 버팀이 의미가 없음을 알게될때 자발적 승인하에 이루어 진다.


한국영화‘신세계’에서 후배 건달들이 제끼러 찾아오자 “ 담배한대 정도는 피고 가도 되지? ” 죽음을 맞는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공감가는 행동과 대사다. 작가가 뭘좀 안다. 조만간 죽는다는 의사말 처음 들었을때 나도 병원문 나와서 담배한대 물고 “니네 장난해? “ 하늘보고 어이없어 그냥 웃고 말았다.



죽음은 감당할 그릇이 안되면 함부로 마주서지 않는게 현명하다. 어설픈 객기 부릴 상대가 아니다. 마주볼때 두려움이 될수도 함께할때 친구처럼 될수도 있다.


계속 물어뜯는 극한의 고통앞에서 죽음은 상황에서 탈출할 유일한 위안이자 평안이 된다. 이제 고통은 그만 됐어.. 육체의 끈을 놓아버림에 빠져드는 그 편안함에 대한 유혹은 그 상황에선 거부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공포를 넘어서 결국 평안을 주는 선을 넘는 그것이 죽음이란 것이다. 단지 그동안 미운정 고운정 들었던 이 세상과의 작별이란 것이 넘어가기 전까지의 아쉬움과 서글픔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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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서부터 배꼽을 괸통해 몸통을 갈라서 내장들을 도려낸디음 앞판 전체를 호치키스로 박아놨다. 위장 비장 췌장이 사라졌고 대징과 소장 일부가 잘려나가 뱃속이 텅 비었다.


장이 터져서 죽음이 코앞까지 차 왔는데 연로하신 부모님 두분도 동시에 쓰러져 돌아 가신다고 입원하시고둘러보니 어지럽혀진 방안을 청소하지 못했고 이것저것 너저분하게 펼쳐진 상황들도 걸리고 당장은 맘편히 죽을수 있는 여건과 상황이 아니라 판단했다.


결국 1차 수술로 임시 봉합한채 깨어나자마자 정신없이 집안일 뒷 수습 하느라 정작 내 죽음은 챙길 여력이 없었다. 보호자도 없었기에 운전하고 혼자 항암 치료 받으러 다닐때도 제대로 환자노릇 한번 해보지도 못했다.


병원에서는 계속 죽는다고 하는데 ‘이러다 나는 언제 죽냐 내몸도 좀 챙기고 싶다’ 정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부모님 두분 병원 뒷바라지에 정작 가장 중환지였던 내가 보호자로서 정신없이 뒷바라지 하며 돌아 다녀야 했다. (부모님 두분다 위기를 넘기고 안정화 되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암 세포가 뱃속에서 터지고 뭉쳐서 장기들과 떡진 상태에서 1차 수술로 임시 봉합한채 장루 매달고 6개월 버티다 2차때 소화장기들 위장 비장 췌장 대장 소장 (명칭에 ‘장’ 들어가는 장기는 다 잘라냈다.)암과 함께 죽이된 축구공만한 내장 덩어리를 통째로 뱃속에서 다 도려냈다. 그러고도 보호자가 없었던지라 병원비 마련하고 서류 꾸미느라 병원안에서 거의 기어다니면서 일처리를 해야만 했다.


장기들이 터지고 뱃속을 다 도려내는 고통앞에서는 죽음을 승인 안하는것이 더 힘들다. 내장들을 다 도려내는 총 4번의 수술을 받는동안 몸통 절반을 갈랐다 붙였다 해서 간신히 아물었는데 같은자리 또 가르느니 (칼 비린내 너무 싫고 아퍼) 그냥 지퍼를 달면 어떨까 생각도 했다.



어차피 시체처럼 아무일도 못하던 몇달간은 천편이 넘는 원피스 애니메이션에 몰입해 다른 생각 할것없이 훌떡 지났다. 침대 눞는것이 불가능해서 3년간 리클라이너 의자에서 지냈다. (지금도 대형 쿠션 등 베개로 거의 앉아서 잔다.)


뱃속이 (다섯명의 의사들에게) 온통 칼질당해 온몸 안 아픈데가 없는데 가장 편안하다고 여길때가 혼수상태인지라 매번 눈뜨지 않기만을 빌었다. 현실로 정신이 돌아올때 마다 야 이런게 지옥이구나 하다보면 나중엔 고통에 익숙해 지기까지 한다. 치사량 따질것 없이 마약성 진통제 무제한 맞아가며 그 상태로 몇년을 버텼다. 2017-2021 정도까지의 내 브런치 글들이 모두 그런 반 시체상태서 기록된거다.


마약성 진통제를 몇년간 하도 맞아서 중독에서 벗어나는것도 꽤나 힘들었다. 겪은 고통으로 따지자면 나도 어디가서 안 꿀릴 자신 있다.


* 진통제 극복하기 기록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도 였지만 마약정보 뒤지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부작용으로 인해 전부 발행취소 할수밖에 없었다.


174-48kg 마름을 감출수 없는 여름이 또 온다. 몸매를 감출수 없을땐 얼굴을 가린다. 몸이냐 얼굴이냐 둘중 하나는 가려야 어색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내가 내색을 안 하니 다들 내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무도 눈치를 못챘다. 말해도 내가 워낙 평상시와 다름없이 말하고 생활함에 농담으로 받아 들이거나 안 믿는다. 곧 죽는다고 후배한테 연락받고 새벽에 병원으로 임종을 보러 뛰어온 친구말에 의하면 내가 앰블런스에서 짐짝처럼 내려지는 반 혼수상태에서도 “어 너 왔네? ” 그러고 방긋 웃고 있더란다. (물론 나는 요단강을 건너는 와중 이었던지라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집안일 처리할 사람이 나밖에 없고 사람이 살아가려면 기본 업무와 관계는 유지해야 겠기에 그 와중에도 계속 찾아주는 사람들 만나고 일상에서 아픈내색 전혀 안내고 잘 지냈다.


https://brunch.co.kr/@yemaya/351


배 갈라놓고 항암주사 맞는 와중인데도 주사 뽑고 나와서 만나자고 조르던 눈치 꽝인 친구도 있었고 결국 얼굴 보자는 지인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해 장루와 항암 주사 바늘통 주렁주렁 패딩안에 숨긴채 운전도 하고 시내도 돌아다니고 했다. (아프기 전에도 어릴때부터 원래 내 별명이 그래서 괴물이다.)


https://brunch.co.kr/@yemaya/910

https://brunch.co.kr/@yemaya/913


텅빈 몸이지만 다시 정상 사회생활을 해보려 후배 가게를 맡아 시동을 걸어보는 중에 일 끝나고 한잔 시도하다 장패색이 오는 바람에 결국 유일하게 멀쩡하던 소장마저 잘라내는 수술을 또 해야만 했다. 결국 소화장기는 모두 제거당하고 하나 남았던 소장 마저도 짜깁기한 상태가 됐다. 그야말로 뱃속이 텅 빈채 심플한 껍데기 몸이 된거다. ( 세상 밖으로 나가려던 나를 주저 앉히고 ‘다시 아물때까지 아무짓도 하지말고 시체처럼 글이나 쓰고 있어’ 가 당시 유일하게 내게 허락된 자유였다.)


https://brunch.co.kr/@yemaya/925


인간으로 태어나 신들의 정원에 당당히 신들과 동석으로 올라선 사내 카이사르다.


지금 돌아봐도 40대 중반을 향해가던 어느날 갑자기 몰아닥친 나의 불행은 그 정도가 좀 과했다. 왼만해야 좀 울기라도 하고 퉁 칠텐데 어이가 없을 지경이라 매번 장난하나? 웃음밖에 안 나왔다. 수년간 운명이란 놈은 조금의 틈도 내주지 않고 숨쉴틈 없이 내 목을 조여왔다. 나를 죽음앞에 던져 놓기까지 계속 쫒아 다니며 말도 안되는 행패를 부렸다. 마치 이 세상에서 우주에서 기필코 퇴출 시키겠노라 작정한듯 나를 구석으로 몰아갔다.


하루 아침에 사업과 주변 모든것을 박살내고 오갈데 없는 길냥이로 내몰았으며 집안까지 휘저어 멸문지화란 말을 실감케 했다. 구석으로 몰아가다 선택권 없이 이태리로 내 쫒았고 거기서도 소매치기를 당해 여권도 잃어버리고 빈털터리 국제미아로 밀라노 길거리에 내동댕이 쳤다. 그야말로 하늘아래 비빌데 단 한군데 없이 세상에 달랑 혼자 임을 느꼈다.


그것도 모자라 끝까지 내가 버티니 몸뚱아리를 한방에 주저앉게 만들어 죽음의 문안으로 강제로 밀어넣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내 맘대로 못하는 ‘무기력’ 숨쉬는 시체 그 자체가 된거다. 바닥에 또 바닥을 뚫고 갈데까지 가보자 작정한듯 물어 뜯었다. 이왕 버린몸, 그래 죽이고 싶다면 죽여 보거라 이판사판 공사판이다. 그래도 나는 일어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고 와인을 마시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https://brunch.co.kr/@yemaya/350

https://brunch.co.kr/@yemaya/485



그렇게 몇년간 죽음이 계속 내 뒤를 따라 다녔다. 틈날때 마다 물어뜯으며 질문을 던지고 나는 그에대한 내 생각을 말한다. 갈데 가더라도 뒤끝은 남기고 싶지않다. 의문이 남아 있는한 나는 너에게 주권을 넘길 생각이 없는바 내가 가진 생각과 답변이 정당하고 옳다면 당연히 나는 살것이고 틀렸다면 진것이다. 내가 진다면 순순히 내 너를 따라 가겠노라..


https://brunch.co.kr/@yemaya/268


이리저리 아무리 살펴봐도 내가 죽어야할 별다른 이유를 찾을수 없는데 그만큼 괴롭혔으면 이제 생명의 열쇠를 내 놓아라. 나약한 나 인간이 사신에게 당당히 요구할 자격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아직도 풀어야할 문제가 더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보낸 세월이 어느덧 9년차다. 세월 참..



술 먹는 시간대신 브런치에 글로 기록을 남긴것도 세월이 흐른만큼 한 가득이다. 생명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나의 브런치 기록들이 전부 살기위해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대함 이고 죽음이 질문함에 내놓은 나의 답변들이다. 옳다면 생명의 키를 내달라 사신을 향한 그간의 나의 정당한 요구였음이다.


https://brunch.co.kr/@yemaya/1459


신이 아무런 목적없이 멀쩡히 착하게 잘 사는 사람한테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무작정 끌어내리고 괴롭힘이 가당키나 한말인가. 이 우주가 그런 쓸데없는 소모적 낭비를 할 이유가 없음이다. 마지막 Chapter 의 장을 끝낼때가 오고 있는거다.



https://brunch.co.kr/@yemaya/2140


결국, 나의 기록은 죽음이 곧 생명의 열쇠를 건네주는 천사의 모습으로 변하는것을 목격 하고 기록함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방대하게 쏟아낸 그동안 나의 기록들에 숨겨진 보석과 키들이 각자 임자들을 찾아 갔으리라 믿는다. 여태껏 내 말했던게 하나도 틀린말이 없고 기록과 세월이 그것을 증명하니 이제 슬슬 마무리를 져도 괜찮을듯 싶다. 백점은 아니어도 70점 정도 기본은 한거로 친다. (누구맘대로? 내맘대로)


대중들 향해선 할말 거의 다 한듯 하고 종장 다 와간다. 할말 다 하고 아쉬울게 없음 된거다. 더 깊이 들어가면 아인쉬타인의 공식처럼 대중들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글이 되 버린다.그저 가끔 소박하게 일상 소소한 기록들로 생활의 위안이나 삼는것도 나쁘진 않다. 두루뭉실 어울려 살아 간다는게 그런거 아니겠는가.. 고양이와 놀고 마징가를 탐하는 유치함이 올 여름 나를 또 다시 행복하게 하리라.


https://youtu.be/KoyNlVQbUPc?si=oG9wzSs0peNX4p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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