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작에 앞서,
나는 대만에 산다.
대만에 한국어를 가르치러 왔고, 남편과 떨어져 지내며 객지에서 일하며 생활하며 고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기러기 가족의 엄마이기도 하다.
나는 지난 20년간 한국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쳐 왔다. 오랜 시간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생활하며, 한국에 살아도 외국인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때도 있었다. 각국의 문화 특색을 제법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는 7-18세의 어린 학생들을 대하며 아이들의 성장 과정과 부모들의 양육방식이나 교육열 등에 대해 배웠고,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백인보다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계 학생들 혹은 주민들과 어울리며 북미에 뿌리 내린 아시아 문화에 대해 알아갔다. 나는 그렇게 비교적 다문화와 이문화의 경계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제법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살아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달랐다.
현재 대만 거주 3년차가 되었다. 해외에 거주한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셈이다. 더욱이 주변에 한국인이 거의 없고, 학생들도 다국적이 아닌 다수가 대만인이다. 다수의 특정 그룹 속에서 ‘나 혼자 한국인’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만행을 결심하기까지에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당시 중학생이었던 아이의 학업은 물론이고, 남편과 나의 직장 문제로 세 가족이 함께 살 수 없는 상황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무엇보다도 대만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고, 영화 몇 편과 책 몇 권만으로 대만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기에는 대만 생활을 몸으로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약 없는 기러기 생활을 결정하고, 아이를 데리고 대만의 남부로 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쉽지 않은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쉽지 않은 생활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녹록하지 않고, 때론 숨만 쉬고 살아가도 삶은 짐이 된다. 낯선 곳에서는 그나마 숨도 잘 안 쉬어진다. 덥고(여름 기온 37도, 체감온도 43도가 12일 동안 이어지는 날이 있고), 습한(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10도만 돼도 춥고) 날씨에, 침대가 위 아래로 들썩이며 몸을 흔들어대는 6.8 강도의 지진과 간판을 종잇장처럼 날려버리는 태풍도 겪었다. 두려웠다. 자연 환경의 차이가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수밖에 없었다.
살고 또 살아야 했다.
서툰 중국어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들고 나가 음식을 사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한시간에 두세 번 오는 36번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을 향하고, 세금신고를 하러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회의에 참석해 가만히 앉아 있다가 누군가가 눈을 세모꼴로 하고는 날더러 의견이 없느냐고 물으면 차라리 과묵해지는 편을 택하기도 했다.
만나고 또 만나야 했다.
한국말을 쓰면 앞에 가던 행인이 몸을 돌려 나를 계속 쳐다보고, 때로는 갑자기 내게 영어로 “Where are you?”(아마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묻고 싶었던 것 같다)로 묻는 이들에게 “我是韓國人。”([워스한궈런]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일본인이에요?”라고 묻는 이들에게도 “我是韓國人。”([워스한궈런]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했다. 캠퍼스 안에서는 내게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안녕”이라 말을 건네는 어린 학생들에게 “안녕하세요?”라며 공손히 인사도 해 주어야 했다.
숨쉬고 또 숨쉴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아이의 등굣길이면 만나는 노부부에게서 잘 익은 구아바를 건네 받았을 때, 그 노부부가 우리에게 갓 찐 옥수수를 건네주며, 식기 전에 얼른 먹으라고 해 줄 때, 아이의 스쿨버스를 놓치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를 때 같은 학교 학부모 한 명이 차를 몰고 와 아이를 태우고 학교를 향해 줄 때, 한 학생이, “성생님, 대만에 오싰서서 감사합니다(선생님, 대만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은 카드를 건넬 때, 나는 안도의 한숨과 기쁨의 탄식을 내쉴 수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그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다.
용기만으로 다른 나라에서 일해서 먹고 살고 아이를 키우기에는 따져 볼 사항들이 너무 많았다. 대만에 와서 살기에는 대만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살아 봤다. 살아 보니 일상이 배움이 되어 내게 살아가는 방법을 넌지시 알려 주었다. 하루를 살다 보면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알게 되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정보나 지식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대만인들을 대하고 이해하는 방식의 열쇠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하여 대만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몸으로 부딪쳐가며 살아왔다며 자책하는 대신 그 과정을 풀어가며 조금씩 대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가기로 했다. 어차피 삶에서는 살아 봐야 알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 아닐까.
나는 대만을 만났고, 대만도 나를 만났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는 함께 살아 보아야 한다. 진심을 다해.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세 구성으로 엮었다.
제1부는 [대만 생활 일반], 제2부는 [대만에서의 중국어], 제3부는 [대만의 한국어 교실]이다.
<0> [시작글] 살아 보니, 대만
<1> 대만 생활 일반
1. 조 선생의 영수증: 대만 남부의 물가
2. 빈말 않는 대만인: 대만인들의 인간관계
3. [ASIA] 대만 문학의 현주소: 문학을 통해 본 대만인들의 생활 방식
4. [자존감 회복 운동]
(1) 도서관 활동 1: 지역 사회 참여 방식
(2) 도서관 활동 2: 카오슝시립도서관의 <조 선생의 한국 책 교실>
(3) 도서관 활동 3 : 부산시-카오슝시립도서관의 만남
5. 메뉴판을 보시죠, 대만의 미용실: 대만의 미용실을 통해 본 고객과 점원 간의 관계
6. 맛있는 대만 음식, 혼자 할래요?: 대만인들의 식습관, 그로 인한 문화 차이
7. 명절의 추억, 외국인 장기자랑: 외국인을 대하는 대만인들의 태도
8. 벚꽃을 보았나요?: 대만의 자연
9. 응답하라 1988: 새치기 안 하는 대만인, 그러나 우린
<2> 중국어 능력과 대만 생활
1. 나는 왜 스타벅스를 좋아하는가: 대만에서 중국어 사용하기의 어려움
2. 왜냐고 물으신다면: 중국어와 한국어의 화법 차이
3. 알고 보면 쓸데있는 귀찮은 동네 사람: 외국어 학습 과정에서 만나는 좌절, 극복
4. 수고했어, 오늘도: 모국어의 영향을 받은 외국어 사용
<3> 대만의 한국어 교실
1. 대만 대학교의 한국어 교육 1: 한국어 학습자 증가 현상
2. 대만 대학교의 한국어 교육 2 : 수강생 초과 사태, 그 대비책은
3. 일장기를 보았다: 대만 내 한국어의 위상, 일본어과 소속의 한국어 과정이란,
4. 할 말 다하는 학생들: 대만 학생들의 자유 발언
5. 외국인들, 왜 한국어를 배울까: 대만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 이유, 그로 인한 부모와의 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