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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윤 Sep 22. 2017

아이비리그 학생도 못 푸는 수능?

"우리는 도대체 뭘 공부하는 걸까요?"

지난 6월 동아일보에서 미국 스탠퍼드, 영국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해외 유명 대학에 합격한 한국 학생들을 앉히고 우리나라 수능 시험지를 주고 시험을 보도록 한 기사를 읽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모두가 만점이라 놀라운 것이 아니라 단 한 명도 1등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옥스퍼드에 합격한 학생들이 수능 영어에서 1등급이 나오지 못한 걸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취재에 응한 학생들의 인터뷰였다. "수학뿐만 아니라 과학도 왜 이렇게 암기나 계산 문제가 많으냐? 한국과 외국의 과학교육이 추구하는 목표가 전혀 다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해외에서 경험한 과학 입시문제는 '두 개의 다른 종의 생물이 만났을 때 진화하는 과정을 추론해보라'와 같은 진짜 과학자들이 할 법한 추론들을 요구하는 문제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수능은 주기율표를 외우고 분자량을 계산하는 능력을 중요시한다. 우리는 사고력과 창의력을 요구하는 시대가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암기와 계산을 중요시하며, 미국인도 풀지 못하는 영어문제를 풀고 있다. 

이런 걸 '교육'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현실이 나는 답답하다.


협업심의 부재도 우리 교육제도가 안고 있는 큰 문제이다. 친구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서로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교육에서 '협업'이란 찾아보기가 힘들다. 중학교 3학년 체육 기말고사에서 실수를 한 적 있다. 소프트 볼 경기 었는데 나는 2루를 밟고 있었다. 친구의 안타에 내가 충분히 홈으로 들어올 수 있었지만 3루를 돌면서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실수를 저질렀고 이는 우리팀의 패배로 이어졌다. 넘어진 내게 가장 먼저 뛰어온 친구의 한 마디는 "괜찮아?"가 아닌 "너 때문에 외고 떨어지면 책임질 거냐?"였다. 단체전에서 졌기 때문에 이긴 팀에 비해 낮은 점수를 받을게 뻔했고, 외고를 준비하던 그 친구에게는 내 실수는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이다. 물론 그때는 경황이 없어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이게 정말 좋은 교육문화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학교 다닐 때 경쟁하는 친구들끼리 노트는 안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가끔 친구들의 노트를 찢거나 태우는 일도 있었다. 전교 1등의 노트는 모든 이의 표적이고, 성적에 따라 선생님의 사랑이 달라진다. 

왜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친구를 떨어트려야 내가 더 좋은 대학에 가니까!'


요즘은 다시 잠잠해진 듯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 카톡방이 뉴스에 자주 소개가 됐었다. 카톡방에선 여학우의 몸매를 평가하는 등의 성희롱 발언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이 명문대에 재학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을 안겨줬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너무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친구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니까. 공부만 잘 하면 중, 고등학교 내에서 이런 일탈은 그냥 넘어가니까. 가끔 있는 성평등 교육은 사실 자습시간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내 학창 시절은 그랬다. 공부 잘하는 애는 친구를 때려도, 쉬는 시간 교실 티브이에 야동을 켜도, 여자 선생님께 성희롱적인 발언을 해도 "대학만 잘 가면 괜찮아, 혈기왕성할 땐데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갔다. '성희롱 카톡방 사건'은  이런 문화들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있다가 터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모든 남자 대학생들이 이렇지는 않다.)

우린 도대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 걸까?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걸까?


지금의 교육제도는 여러모로 손 델 곳이 많다. "자사고를 폐지하네, 안 하네"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입식 교육 보단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 경쟁보단 협업이, 점수보다 가치 중심의 교육제도로 개선되어야 한다.

얼마 전 빨간펜으로 틀렸다는 표시가 쫙 그어진 어느 초등학생의 시험지를 보았다. 

'헤헤, 맡있겠다. 나 혼자 먹어야지.' 시험 문제는 이 문장에서 틀린 낱말을 바르게 고치라는 것이었고, 초등학생은 '맡->맛'이라고 표기하는 대신, '나 혼자'를 '같이'로 고쳐 썼다. 물론 틀린 낱말을 고치라고 했으니 틀린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가르쳐야 할 것은 어쩌면 철자가 아닌 상상력, 가치,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닐까.

어느 초등학생의 오답에서 대한민국 교육제도의 방향을 본다.

프롤로그 "정치는 볼드모트가 아니야!" https://brunch.co.kr/@youthpolitica/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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