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알고 다루기
[분노, 알고 다루기] 목차
1. 분노의 정의와 이론적 관점 (brunch.co.kr)
2. 분노는 어떨 때 생기는가? (brunch.co.kr)
3. 분노가 일으키는 반응 (brunch.co.kr)
4. 분노를 터트린다는 것 (brunch.co.kr)
5. 분노를 억누른 다는 것 (brunch.co.kr)
6. 분노 표출 행동의 선택 (brunch.co.kr)
7. 분노를 적절하게 드러내는 것의 필요성 (brunch.co.kr)
8. 분노와 공격의 관계 그리고 남녀의 차이 (brunch.co.kr)
9-1. 일어난 분노를 조절하기(인지행동 중심) (brunch.co.kr)
9-2. 일어난 분노를 조절하기 (이런저런 방법들) (brunch.co.kr)
(참고) 분노와 분노 표현에 대한 심리학 연구 개관(요약) (brunch.co.kr)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분노는 확실히 충동적으로 생기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그대로 표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돌아보면 우리들이 분노를 느꼈을 때 그것을 표출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분노를 느낄 때마다 상대방하고 부딪치면 아마 평온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연구 결과들을 보면 분노를 느낀 사람들 중 82.8%가 언어적 공격의 동기부여가 되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행한 사람은 53.7%였습니다. 3명 중 1명 정도입니다. 또 신체적 공격에 이르면 44.0%가 공격을 하고 싶다고 느끼지만 실행한 사람은 6.5%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조사 결과는 아닙니다만 한국 사람은 좀 더 높은 비율로 분노를 실제 표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분노를 감지할 때의 인지적 요인과 분노를 표출할까 말까를 판단할 때의 인지적 요인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피해가 크고 더욱이 가해자의 책임이 크다고 판단했을 때에도 반드시 분노가 표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분노의 표출 단계에는 어떠한 요인이 영향을 미칠까요?
[분노 못참는 한국사회 - 과학 TALK/조선일보 2016. 9. 11, 일부 발췌]
전문가들은 특히 한국인의 문화심리학적 특성과 심리학의 좌절-공격 이론이 결합하면서 최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진단한다. 한국인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존재감과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미래에 뭔가 이뤄낼 수 있다는 비현실적 낙관성이 있기 때문에 쉽게 좌절을 느끼고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이다.
이번 토론회에서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인과 일본인, 서양인 등의 사회심리학적 연구를 살펴보면 한국인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주장이나 영향력을 남에게 관철시키려는 주체성이 강하다”며 “주체성이 높은 한국인들은 최근의 경제 위기나 양극화 현상, 이른바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사회 환경에 만족하지 못하는 좌절감으로 분노가 사회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과도한 좌절감과 억울함, 주체성을 깎아내리는 무시받는 느낌은 살인 사건 등 극단적인 현상으로 이어진다. 허 교수는 “실제로 국가 과학수사연구원의 과학적 범죄분석 시스템에 따르면 2006년부터 올해까지 발생한 917건의 살인 사건 중 절반 이상이 어떤 이유에서든 무시당한다는 느낌으로 인한 분노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11/2016091100332.html#csidx78e50dba1b6443d9b3bea98f7fafc27
여기서는 분노 표출을 규정하는 인지적 요인으로서 자기 효력/자기 효능감(Self-efficacy)과 결과 예측(Outcome expectations)의 두 가지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심리학에서 자기 효능감(自己效能感, self-efficacy)은 어떤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이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앨버트 밴듀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개념이다. 자기 효능감이 해야 할 일을 아는 것과는 같지 않다. 자기 효능감을 측정할 때, 개개인은 그들의 기술과 이러한 기술들을 실행으로 옮기는 그들의 역량들을 평가한다.
반두라(Bandura, 1977)는 분노 표출 판단 과정을 자기 효력과 결과 예측으로 나누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이라는 것은 행동을 초지일관 수행할 수 있다는 신념입니다. 한편 결과 예측은 행동을 실행한 후에 생길 결과에 대한 예측입니다. 즉 자기 효능감은 어떤 상황하에서 행동을 실행할 단계까지의 예측이고 결과 예측은 행동 후의 예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기 효능감이 높고 긍정적인 결과 예측을 한 경우는 그 행동이 일어나기 쉽게 되지만 반두라는 자기 효능감이 낮은 경우 결과에 관한 예측은 행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라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가하면 반격을 당한다는 부정적인 결과가 예측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기 효능감이 높은 경우 그 부정적 결과가 위협으로 느껴져 공격행동은 억제됩니다. 그러나 자기 효능감이 낮은 경우 그다지 위협적인 결과가 생길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공격행동은 억제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점에 착안하여 자기 효능감과 결과 예측을 실험적으로 조작하여 분노 표출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예측과 같이 자기 효능감이 높은 경우에만 부정적인 결과 예측이 분노 표출을 억제한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자기 효능감과 결과 예측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분노표츨이 억제된다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그림. 자기 효능감과 결과 예측이 분노 표출에 미치는 영향 참조>
자기 효능감과 결과 예측 이외에 실은 하나 더 분노 표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반두라의 이론을 발전시켰던 크릭과 닷지(Crick & Dodge, 1994)는 사회적 정보처리 모델(Social Information Processing Model)이라는 이론에서 행동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서 자기 효능감, 결과 예측에 더하여 반응평가라고 하는 요인을 제시했습니다.
반응평가라는 것은 특정의 반응에 대한 ‘좋다’ ‘나쁘다’라는 평가 축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폭력은 일반적으로 ‘나쁜 반응’이라고 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것은 ‘좋은 반응’이라고 합니다. 다른 조건이 전부 같다고 하면 우리들은 ‘좋은 반응’을 하기가 쉽습니다.
이 반응평가와 관련된 개념으로서 분노의 ‘정당성 평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분노에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것은 ‘나쁜 반응’ ‘정당하지 않은 반응’이라고 하기 쉽습니다만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이런저런 간섭을 할 때 자신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을 것이고, 역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화를 낼 때에도 상황에 따라서는 ‘저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 무리가 아니고 그럴 수 있다’라고 느낄 경우는 없습니까? 이것이 바로 정당성 평가입니다.
또 분노라고 하는 감정 자체가 분노의 표출을 정당화하고 있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애베릴(Averill, 1993)은 분노를 포함한 감정을 통제 불가능하고 수동적인 것으로 다루는 사회적 신념을 ‘분노 착각(錯覺, Illusions of anger)’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감정이 Action(행위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능동이라는 의미 포함)이 아니라 Passion(격정, 수동이라는 의미 포함)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은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고 행위를 정당화할 수가 있습니다. ‘뚜껑이 열려버려 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나중에는 어떻게 되어도 몰라!’라는 식입니다.
느끼는 분노가 강할수록 분노 표출의 충동적 측면은 확실히 강해지지만 거기에 더해서 이러한 신념이 실제 이상으로 분노를 통제불능이고 정당한 것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분노를 느꼈을 때 쉽게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우선 자기 효능감이 높고 결과 예측을 긍정적으로 하는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강인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달변인 사람은 분노 표출에 성공하기 쉽고 나아가 상대방의 반격도 못하게 하기 때문에 당연히 분노를 표출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의 공격적 행동을 자주 목격하는 사람, 특히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는 장면을 쉽게 목격하는 사람은 쉽게 공격적으로 되기 쉽다는 것이 반두라(1965)의 모델링 실험에 의해 밝혀져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행동 관찰도 자기 효능감을 높여 결과 예측을 긍정적으로 하는 하나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반응평가에는 어떠한 개인차가 영향을 미칠까요? 즉 자신의 분노 표출을 정당하다고 느끼기 쉬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기애 성향입니다.
자기애 성향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의 집중과 자신감, 우월감 등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감각, 나아가 그 감각을 유지하고 싶다는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기애 성향이 높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외현적 자기애(overt narcissism)와 내현적 자기애(covert narcissism)]
Freud의 이론에서 인간의 심리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 자기애(Narcissism)는 Freud 이후의 정신분석 이론과 임상 실제에서도 그 중요성이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자기애라는 개념은 이론가마다 조금씩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어 그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자기애 성향이 자기 과장적이며, 자기 몰두적이고, 웅대한 자기 개념을 갖고 있으며,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이론가들이 동의하고 있다(김진순, 2008). 그런데 자기애 성향은 자기 과대화나 웅대한 자기 개념과 같은 외현적인 모습 외에도 두려움과 취약함, 우울이나 열등감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자기애 성향에 따라 이론가들은 자기애를 외현적 자기애(overt narcissism)와 내현적 자기애(covert narcissism)로 구분하며, 많은 경험적 연구에서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Hendin & Cheek, 1997; Rathvon & Holmstrom, 1996; Wink, 1991).
자기애 성향이 정당성 평가에 미치는 영향에는 직접적 영향과 간접적 영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직접적 영향은 나르시시스트에 특별히 나타나는, 자기 자신을 특별시하는 경향이 자신의 반응 평가에도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통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분출하는 것은 피하려고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은 특별한 존재이므로 무엇을 해도 괜찮아’라는 거만함으로 분노의 표출을 정당하다고 느끼기 쉬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간접적 영향이라는 것은 강한 자기애 성향이 피해상황의 인지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정당성 평가를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우마이스터 등(Baumeister et al., 1996)에 의하면 자기애 성향이 높은 사람은 자기 평가가 굉장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쳐주는 명확한 이유나 근거가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찮은 일이 자존감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고 자아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즉,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으로부터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신경을 쓰지 않을 행동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피해나 책임을 크게 인지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느낀 분노도 강해지고 분노의 표출을 정당화하기 쉬워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