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벤도 이렇게 키울 걸 - 2
서울도서관에 있는 개 관련서는 세 부류로 나뉜다. 동물, 에세이, 해부학. 동물 코너엔 반려견의 입양과 육아, 노견 간호, 유기견에 관한 책들이 꽂혀 있다. 에세이 분야엔 반려견과의 소소한 추억을 담은 단행본들이, 그리고 해부학 영역엔 개들이 어떻게 똬리를 틀 수 있는지 등을 쉽게 설명한 해설서가 눈에 들어온다.
벤과의 5600일을 기록하기 시작한 올해 4월부터 개가 등장하는 책을 여러 권 봤다. 생각나는 목록은 대강 이렇다.
장 그르니에의 어느 개의 죽음
김훈의 개
마루야마 겐지 개와 웃다
뉴스킷 수도원의 강아지 훈련법
세사르 밀란의 도그 위스퍼러
내 강아지 행복한 노견 생활
개는 어떻게 말하는가
코타로와 나
개는 무엇이 다를까(개와 사람의 몸을 비교한 쉽고 친절한 해부학)
펫로스 반려동물의 죽음
웹매거진 Life and Dog
10여권 모두 제 나름의 이유로 권할 만한 양서다. 다만 이 책들을 보면서 매번, 치수가 다른 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다. 저자 모두 개를 끔찍이 아낀 아빠이자 엄마들이라 나와 벤의 시간은 그들과 저 멀리 떨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반려 생활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런 생각은 짙어졌다.
그런 와중에 내게 꼭 맞는 책 한권을 만났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 호주와 일본, 노르웨이의 반려견 스쿨에서 훈련사로 활동한 저자는 혹시 오줌을 아무데나 싸고 주인을 깨물고, 한밤 중에 짖는 개를 심하게 나무라고, 하루 한 번 이상 산책을 시키지 않는지부터 묻는다. 만약 그렇다면 책의 제목처럼 개를 돌보지 않는 게 좋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유는 많다. 반려견의 본능을 존중하고 '커밍 시그널(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동작)'을 이해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 저자가 (개 주인이 될 자격으로) 꼽는 항목 중 자신있게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건 고작 두어개밖에 안됐다.
주인 역량이 안 되는 주인들이 넘쳐나는 까닭에 국내에서만 한 해 5만마리가 유기견이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걸 읽고 있자나 내가 참 뭘 모르고 녀석을 키웠구나 싶었다.
지난 십수년간 어떻게 변변한 애견서 한 권 안 봤나 싶다. 얇은 개론서라도 봤더라면 벤이 소파에 쉬를 싸고 새벽에 하울링을 해도 '아 녀석이 사회화(생후 14주 동안 어미와의 관계에서 익히는 훈련) 과정도 없이 생이별을 해서 그렇지' '분리불안 증세가 있구나'와 같은 생각을 했겠지.
한 번은 벤의 '나쁜' 버릇을 고치려 훈련사를 고용해 하루간 특훈을 받았다. 뭘 알았더라면 절대 그 아저씨를 부르지 않았을텐데, 그 훈련사는 개들은 겁으로 다스려야 한다며, 누나와 아빠가 보는 앞에서 벤을 거칠게 다뤘다. 짧은 식견이라도 있었다면 그 아저씨의 팔을 잡아챘을텐데. 역시나 뭘 몰라서, 보고만 있었다.
오늘(11월 18일) 만난 장강명 작가는 지난달 자신의 페북에 이 책의 리뷰를 짧게 남겼다.
"강형욱의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를 읽었다. ‘왜 개를 키우려 하는가’를 묻는다. 저자는 줄곧 “개는 움직이는 봉제인형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한편으로는 읽는 내내 인간이 과연 다른 동물을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가 들기도."
개를 키우려면, 개를 키우고 있다면, 꼭 봐야할 책. 내일은 벤과 이별한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다.
벤과의 5600일 - 프롤로그
벤과의 5600일① 대낮의 실종
벤과의 5600일② 녀석의 간식들
벤과의 5600일③ 벤과의 러닝
벤과의 5600일④ 털 손질
벤과의 5600일⑤ 오줌 소탕작전
벤과의 5600일⑥ 사진 수집을 게을리한 개 주인의 푸념
벤과의 5600일⑦ 벤의 소리들
벤과의 5600일⑧ 개와 목줄
벤과의 5600일⑨ 타이오와의 만남
벤과의 5600일⑩ 타이오와의 이별
벤과의 5600일⑪ 베를린의 개들
벤과의 5600일⑫ 헬싱키의 개들
벤과의 5600일⑬ #개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