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이야기를 마치며
2만1407자, 열일곱 편, 일곱 개 도시… 지난 7개월간 써온 '5600일'을 숫자로 풀어봤다. 벤이 배경이 된 도시가 7곳, 꼭지가 17개, 이걸 자수로 세어보니 2만여자. 두 차례 온라인 출판에 응모했지만 아쉽게도 회신은 없었다. 최근 웹매거진 한 곳이 연락해왔고 기고를 준비 중이다.
지난 4월 첫 글을 내놓고 대략의 목차를 떠올렸다. 녀석과 긴 여행 한 번 못했지만 강원도에서 5년, 수백km 떨어진 경기도에서 10년, 우리집 거실에서, 강변에서, 내 차 조수석에서 벌어진 소소한 얘깃거리를 엮으면 제법 묶음이 될 것 같았다. 당초 계획은 30편이었는데 절반밖에 못 썼네.
프롤로그를 쓰던 올 봄과 에필로그를 적는 지금, 내 생각은 같다. 이래야 녀석의 빈 자리를 정리할 것 같다. 장 그르니에가 '어느 개의 죽음'에 적은 것처럼 나 역시 '값싼 의식'을 치뤘다.
5600일이 내게 남긴 것 몇 가지.
1. 2000년 4월, 2002년 5월, 2015년 8월의 시간
매해 함박눈이 나리면 벤과 어지러운 발자국을 남기고 녀석을 뜨신 물에 씻겼다. 10여년 전 강릉 단오장이 열리던 남대천변을 함께 걸었다. 2015년 8월 어느날 정오 집 나간 녀석을 찾으러 두 시간을 뛰었다. 재작년 방콕의 한 호텔에서 애견 콘테스트 방송을 보니 벤이 오버랩됐다. (…) 지난 15년 7개월을 달리 채운다 한들 녀석과 보낸 시간만큼 밀도가 있을까. 벤이 없었다면, 그 시골에서의 내 유년은 그저 성긴 시간이었겠지. 녀석이 즐겨먹던 소시지 하나, 닭고기 통조림 하나가 내겐 희미한 그 해의 곳곳을 채운다.
2. (다른) 개를 키울까 망설이는 내게 벤이 알려준 것
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사료를 채우고 털을 깎이고 욕조에 더운 물을 받는 것 만을 뜻하진 않는다. 잦은 산책과 먹이 조절(줘선 안되는 음식, 가령 양념 바른 치킨을 올려다보는 녀석을 달래기의 어려움이란)은 필수다. 나는 지난 11월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 라는 책을 읽고서 너른 거실에 개가 누워 있는, 그런 장면은 더 이상 떠올리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개를 15년 키우고 든 생각이 고작 '개를 키우지 말아야 겠다'라니. 어두컴컴한 현관을 지킬 녀석 생각에 퇴근을 서두르는 아빠의 모습이 내겐 없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녹원마을에 잠든 녀석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너와 함께여서 나의 십대, 이십대와 삼십대의 몇 해가 덜 외로웠어. 빠이.
벤과의 5600일 - 프롤로그
벤과의 5600일① 대낮의 실종
벤과의 5600일② 녀석의 간식들
벤과의 5600일③ 벤과의 러닝
벤과의 5600일④ 털 손질
벤과의 5600일⑤ 오줌 소탕작전
벤과의 5600일⑥ 사진 수집을 게을리한 개 주인의 푸념
벤과의 5600일⑦ 벤의 소리들
벤과의 5600일⑧ 개와 목줄
벤과의 5600일⑨ 타이오와의 만남
벤과의 5600일⑩ 타이오와의 이별
벤과의 5600일⑪ 베를린의 개들
벤과의 5600일⑫ 헬싱키의 개들
벤과의 5600일⑬ #개스타그램
벤과의 5600일⑭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
벤과의 5600일⑮ 도쿄의 개들